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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가 동성애자?여자? 셰익스피어학회에 물어봐"

[셰익스피어 서거 400년] 셰익스피어 학회 회장 안병대 교수 일문일답①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6-01-15 09:35 송고
16~17세기 영국화가 존 테일러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초상화 © News1

'셰익스피어는 실존인물이 아니다', '동성애자다', '여자다'….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는 세계문학사에 남긴 위대한 족적만큼 작품과 생애를 둘러싸고 다양한 설과 논쟁을 낳았다. 특히 그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일부 학자들은 셰익스피어가 '수상록'을 쓴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라는 주장을 끈질기게 제기하고 있다. 이 주장이 담긴 버지니아 펠로스의 책 '셰익스피어는 없다'는 2007년 국내출간되기도 했다. 

뉴스1은 올해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셰익스피어가 실존인물인지, 당시 연극은 어떤 식으로 공연됐는지, 그가 어떤 의미에서 위대한지 등의 질문을 한국 셰익스피어학회 회장인 안병대 한양여대 영문과 교수에게 던지고 그 대답을 두 차례에 걸쳐 수록한다.

우선 셰익스피어가 누구인가, 작품들은 누가 쓴 것인가에 대해 안 교수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실존인물"이라면서 "대학교육도 받지 못한 미천한 출신의 인물이 어떻게 위대한 작품들을 쓸 수 있었겠느냐는 편견 때문에 저자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장미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향기는 마찬가지'라는 셰익스피어 극중 대사를 인용하며 "셰익스피어 희곡들은 셰익스피어가 쓴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안병대 한국 셰익스피어학회 회장과 이메일로 나눈 일문일답이다.

-셰익스피어에 대해 동성애자이거나 양성애자라는 성정체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 이유가 있는가.

▶일부 연구자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담긴 동성애적 요소를 들며 그가 동성애자였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그가 남긴 154편 '소네트' 중 126편에 그런 요소가 있다. 소네트는 14행으로 이루어진 시 형식을 말한다. 셰익스피어가 남긴 소네트는 젊은 귀족 청년에 대한 이상화된 사랑 또는 육체적 애정의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또 희곡인 '베니스의 상인'에서 부유한 상인 안토니오와 그의 친구 바사니오, 그리고 '십이야'에서 선장 안토니오와 세바스쳔의 관계에 동성애적 요소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셰익스피어가 1582년 18세의 나이에 자신보다 8세 연상인 앤 해서웨이와 결혼해 딸 수잔나와 쌍둥이 남매 햄닛과 주디스를 두었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가족들을 고향 스트랫포드어펀에이번에 남겨두고 런던에서 20여 년 동안 활동하며 하숙을 했기에 동성애자 등의 여러 설이 일어날 환경이었다.

-셰익스피어가 여자, 특히 엘리자베스 여왕이라는 설도 있다. 또, 작품을 누가 썼냐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셰익스피어가 여성이라는 설은 셰익스피어 작품을 누가 썼느냐과 관련한 소위 '셰익스피어 원저자 논쟁'과 맞물려 있다. 셰익스피어의 저작들이 엘리자베스 여왕이 썼다는 주장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그려진 무수한 궁정인의 관계, 예법, 대화, 일화 등에 관한 묘사가 가능하려면 작품의 저자가 뛰어난 자질의 궁정인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근거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셰익스피어에 의해 쓰여 지지 않았다'는 주장은 거의 200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1780년대 영국 옥스퍼드 대학 교수였던 제임스 윌못 교수가 주장하기 시작해 1850년대에 미국에서 공론화되면서 셰익스피어가 실제 저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소위 '반 스트랫포드 파'들은 2007년에 '셰익스피어원저자론연합회'라는 조직까지 결성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셰익스피어라는 주장도 있는데.

▶당시 셰익스피어 작품이 담고 있는 탁월한 문장력을 구사할 수 있었던 사람은 사실상 16세기 최고 지식인으로 꼽히는 베이컨이 유일했다는 판단에 근거한 주장이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정치가이자 아마추어 과학자인 이그나티우스 도넬리가 '위대한 암호: 셰익스피어 작품들에 들어있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암호'(1888)라는 방대한 저작을 쓰면서 이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도넬리는 당대의 지성 베이컨이 자신의 저서 속에 자신이 실제 저자라는 암호를 수없이 담아 놓았다고 주장했다. 

희곡 집필이 귀족이 하기에 명예롭지 못한 일로 간주돼 왔기에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셰익스피어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희곡을 썼다는 설인데, 공교롭게도 셰익스피어가 낙향한 시기도 베이컨이 법무장관에 취임하던 시기와 거의 일치해 이러한 가설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또 극작가 겸 시인인 크리스토퍼 말로, 옥스퍼드 가문의 17대 백작 에드워드 드 비어가 실제작가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모두 충분한 근거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왜 저자 논란이 끊이지 않는가.

▶16세기에는 지금처럼 기록 보존이 잘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반 스트랫포드 파'들은 셰익스피어 생애에 대해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이 충분치 않아 셰익스피어를 실존인물로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사실상 그의 출생, 결혼, 사망, 유서, 글로브 극단의 주주 기록, 연극 출연의 기록 등 당대의 어느 작가보다도 셰익스피어에 관한  많은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자 논쟁가들은 셰익스피어가 실존 인물이고, 배우였고, 글로브 극단의 주주라는 것 등을 인정할 수는 있지만, 그가 극작가라는 증거가 없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셰익스피어 작품 관련 필사본 하나 남아 있지 않고, 그가 유명 작가라면 많은 소장 서적이 있었을 텐데 왜 그의 유서에는 서적 관련 유산 분배 기록이 없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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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대의 유명 작가 말로나 최고 인기작가 였던 벤 존슨의 작품들 역시 필사본이 남아있지 않다. 또한 셰익스피어가 고향으로 은퇴한 후에 많은 저서를 소장하고 있었다고 상상하는 것도 당시 상황에 비추어서는 근거가 약하다.

무엇보다도 저자 논란이 난무하는 가장 핵심적 이유는 셰익스피어의 출신 배경과 학력에 대한 편견 탓이라고 본다. 스트랫포드라는 시골의 장갑제조공의 아들이며, 대학교육도 받지 못한 미천한 출신의 인물이 어떻게 그렇게 천재적이고 위대한 작품들을 쓸 수 있었겠느냐는 논리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하나같이 실체가 아니라 외양에 관심을 두는 속물근성과, 편견의 잣대로 세상과 인물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그렇게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었나.

▶대답은 간단하다. 셰익스피어는 사실 희곡 '템페스트'를 제외하고 그 외의 작품들을 전래되는 이야기나 작품을 바탕으로 해서 썼다.

그랬기에 귀족이나 궁정인도 아니면서 궁정을 배경으로 한 사극들과 비극들을 쓰고, 이탈리아 여행을 했다는 증거도 없는데 베로나, 베니스, 로마, 피렌체, 밀라노, 파두아, 만투아, 벨몬트 등 이탈리아 전역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12편이나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 설화, 산문, 여타 작가의 선행 극작품 등 희곡 집필의 자료들은 무수했다. 

여기에 인간과 세상,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눈과 마법 같은 언어를 창조하는 타고난 능력이 더해지면서 그의 위대한 작품이 나왔다.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진실은 다음과 같다고 믿는다. "장미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향기는 마찬가지다."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 중 줄리엣의 대사)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는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 극작가이자 시인.  그의 작품은 영어로 된 최고의 작품이라는 찬사를 듣는다.  잉글랜드 중부의 소읍 스트랫포드어펀에이번에서 출생했다. 런던의 '국왕극단'의 전속 극작가로 일하며 수많은 걸작 희곡을 남겼다. 

희곡 38편, 소네트 154편, 그리고 장시 2편을 남겼고, 제목만 전해지는 작품도 있다. ‘한여름 밤의 꿈', '말괄량이 길들이기', '템페스트', '십이야', '베니스의 상인', '로미오와 줄리엣', '리어 왕', '맥베스', '햄릿', '오셀로', '줄리어스 시저' 등이 걸작으로 손꼽힌다.
안병대 한국 셰익스피어 학회 회장© 안병대
안병대 한국 셰익스피어 학회 회장© 안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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