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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재구성]'26년 전 공기총 잔혹살해' 그는 왜?

30만원 때문에 범행…공기총 6발 머리에 조준사격
위조여권으로 일본行 신분세탁 후 25년간 타인 삶
"내가 쏘지 않았다" 혐의부인…국민참여재판 신청

(경기=뉴스1) 최대호 기자 | 2016-01-09 09:01 송고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탕, 탕, 탕, 탕, 탕, 탕'.

1990년 5월의 어느 날 어둠이 내려앉은 시각. 적막했던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의 청미천 방죽에서 6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둔기로 무언가를 내려치는듯한 둔탁한 소리가 이어졌다.

이후 소리의 근원지에서는 머리에 심각한 총상을 입은 2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바로 26년 전 이천 공기총 살인사건이다.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그것도 총기에 의한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의 주범은 이제야 재판을 받게 됐다. 

◇공범 검거했지만 주범은 해외도피
사건은 1990년 5월7일 오후 9시께 발생했다. 당시 경찰은 즉각 수사에 나섰지만 범인에 대한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했고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 듯 했다.

그러던 중 경찰은 사건발생 3개월만인 같은 해 8월 차량절도범 김모(48·당시 23세)씨를 검거해 조사하던 중 공기총 살인사건과 연관이 있음을 확인했다.

경찰은 김씨를 추궁했고 결국 살인사건 범행에 대한 자백을 받아냈다. 그러나 공범 김씨는 범행에 가담은 했지만 총을 쏜 당사자가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

공범 김씨를 통해 주범이 김모(55·당시 30세)씨라는 것을 파악한 경찰은 추적에 나섰으나 해외로 도피한 상태였다.

공범 김씨는 같은해 9월 검찰에 구속기소됐고 살인 및 사체유기죄가 인정돼 법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주범 일본行…신분세탁 후 25년간 도피생활
주범 김씨는 범행 직후부터 밀항을 준비했다. 지인에게 "일본에 취직시켜주겠다"며 여권신청서를 작성토록 한 뒤 자신의 사진을 붙이는 수법으로 여권을 발급 받아 일본으로 밀항했다.

일본 밀항에 성공한 그는 또 다른 사람으로 신분을 세탁, 무려 25년 간 타인의 삶을 살았다. 일본에서의 김씨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20여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사건은 점차 잊혀져갔다. 그러던 중 2012년 경기지방경찰청에 인터폴 추적 수사팀이 꾸려졌고 공기총 살인사건은 다시 수사 선상에 올랐다.

해외도피 시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규정에 따라 김씨의 살인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는 만료되지 않은 상태였다.

경찰은 지난해 초 김씨가 지인 등과 전화연락을 한 단서를 확보했고 인터폴에 공조수사를 요청했다.

공조 요청을 받은 일본 경찰은 전담팀을 구성, 지난해 3월24일 김씨를 검거했다.

김씨는 일본에서 불법체류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뒤 일본 입국관리국에 강제 수용됐다.

◇범행 25년만에 한국 송환…혐의 부인
경찰과 검찰은 일본을 상대로 긴급인도구속 청구 절차에 착수했고 일본 사법당국은 같은해 8월 김씨에 대한 긴급인도구속 결정을 내렸다.

이는 2002년 한·일 법죄인인도조약 체결 이래 최초의 긴급인도구속 사례가 됐다.

김씨는 지난해 12월3일 국내로 송환돼 당시 범행에 대한 경찰 조사를 받았다. 국내 송환 이틀만에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도 발부됐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 받은 검찰도 4차례에 걸쳐 김씨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김씨는 "총을 쏜 당사자는 공범 김씨이고 자신은 목격자에 불과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30만원 때문에 범행…총기살해 후 둔기폭행도 '잔혹'
사건 발생 당시 경찰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김씨 일당은 받지 못한 차량대금 30만원 때문에 범행했다.

피해자 A(당시 22세)씨에게 콩코드 차량을 판매하고 잔금 30만원을 받지 못했던 것. 게다가 A씨가 자신이 구매한 차량이 자신들이 훔친 장물임을 알고 협박까지 하자 범행을 모의했다.

김씨 일당은 범행 보름 전 총포소지허가를 받고 총기를 구입해 범행지를 2차례나 사전 답사하는 등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고향으로 놀러가자"며 A씨를 범행현장으로 유인했고 A씨가 고기를 구워먹는 틈을 타 미리 준비해간 총으로 A씨를 쐈다. 총상을 입은 A씨가 쓰러지자 김씨는 A씨의 머리를 겨냥, 5발을 추가로 발사했다.

김씨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6발의 총탄으로 의식을 잃은 김씨의 머리를 야구방망이로 수차례 가격했다. 김씨 일당은 숨진 A씨를 모래에 암매장한 뒤 범행현장을 떠났다.

◇재판 앞두고 사설변호사 고용해 국민참여재판 신청
검찰에 의해 재판에 넘겨진 김씨에 대한 첫 공판은 지난 7일 수원지법 여주지원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범죄사실을 부인하며 사설변호인을 선임했다. 이로 인해 첫 공판은 이달 28일로 미뤄졌다.

하지만 변경된 기일에도 재판은 열리지 않게 됐다. 김씨가 8일 변호인을 통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26년 전 잔혹했던 총기살인 사건의 전모를 밝힌 재판은 수원지법으로 이송된 이후에나 진행될 예정이다. 

국민참여재판에서는 살인죄로 15년을 선고받아 복역한 뒤 새 삶을 살고 있는 '공범'과 해외로 도피해 타인 삶을 살다 붙잡힌 '주범'간에 진실공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검찰 관계자는 "철저한 공소유지를 통해 이 사건의 죄질 및 피해정도에 상응하는 엄정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sun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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