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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노인은 왜 남영역선로 위에 누워있었을까

남영역 사고, 코레일·警 "만취해 걸어간 듯"…유족 "위험한 철길 1㎞나 걸어갔을리 없어" 의문제기

(서울=뉴스1) 차윤주 기자 | 2015-12-14 05:30 송고 | 2015-12-14 17:20 최종수정
지난달 29일 서울 남영역 인근에서 KTX 열차에 치어 사망한 이모씨가 서울역에서 CCTV에 잡힌 모습(제공:유족)© News1
지난달 29일 서울 남영역 인근에서 KTX 열차에 치어 사망한 이모씨가 서울역에서 CCTV에 잡힌 모습(제공:유족)© News1

울산에 사는 이모(70)씨는 지난달 29일 오랜 친구를 만나러 5년만에 상경했다. 이씨는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오후 2시부터 한시간 반가량 기분 좋게 소주 한병반을 비웠다. 
 
해가 지기 전 울산에 내려가기 위해 친구와 김포공항에 갔지만 일요일 저녁 비행기는 이미 만석이었다. 이씨가 다시 택시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시각은 5시40분쯤, 좌석이 남은 저녁 7시30분 울산행 KTX 열차표를 끊었다. 
 
취해서 걸음걸이가 다소 비틀거렸지만 평소 주량이 센 편이라 사리분별에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이씨는 배웅한 친구와 오후 6시5분 작별 인사를 나눴다. 친구는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왔는데 더 함께 못 있어 미안하다. 일이 있어 먼저 가니 잘 내려가라"고 인사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한시간 뒤 이씨는 주검으로 발견됐다. 서울역에서 1.5㎞ 떨어진, 남영역 플랫폼 70m 앞 철길 위에서 달리는 기차에 깔려 사망했다.
 
지난달 29일 발생한 남영역 인근 사망 사고의 원인을 조사 중인 코레일과 경찰은 술에 취한 이씨가 서울역에서 길을 헤매다 남영역 선로까지 걸어와 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용산경찰서 관계자는 "술에 취한 이씨가 평소 안 다니는 길로 다니다가 남영역 쯤으로 걸어가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씨가 서울역 플랫폼으로 들어가는 장면까지 있지만 그 이후부터는 CCTV 확인이 안돼 조사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여러가지 정황을 들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씨가 마지막으로 폐쇄회로TV(CCTV)에 찍힌 것은 오후 6시22분, 2층에서 열차 탑승 플랫폼인 1층 3·4번 승강장으로 내려오는 모습이다. 이씨가 플랫폼에서 철길로 내려오거나 선로를 걷는 영상 등은 없다.
  
사고 시각은 40여분 뒤인 7시3분, 서울역 7시 출발 울산행 KTX167호 기관사가 20m 전방 철로에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제동했지만 열차는 70~80m를 밀려갔다. 이 기관사는 "목격 당시 이씨 얼굴이 하늘을 향해 누워 있었다"고 진술했다. 
 
서울 용산역 부근 선로. 자료사진. 2013.12.24/뉴스1
서울 용산역 부근 선로. 자료사진. 2013.12.24/뉴스1

무엇보다 70세 노인이 어두운 밤 술에 취한 상태로 철길 주위를 1㎞ 넘게 걸어가 경부선 하행 선로 위에 누워 있었다는 것이 의문스럽다.
  
아들 이씨(33)는 "아버지는 평생 택시운전을 하면서 짧은 거리도 차를 타고 다니는 습관이 뱄다"며 "등산을 가도 같은 코스만 가는 조심스러운 성격"이라고 했다. 
 
남영역은 KTX와 1호선 전철, 무궁화호 등 기차가 다녀 선로가 6개 이상 깔려 있다.
 
사고 당일 울산행 KTX는 오후 6시30분, 6시50분, 7시, 이씨가 탔어야 하는 7시30분 차가 순서대로 있었다. 이씨를 친 7시 KTX와 10분 차이로 같은 열차가 출발했고, 1호선 지하철도 상·하행선이 6~9분 단위로 운행 중이었다.
 
해가 져 어두컴컴한 시각, 몇분 단위로 열차들이 달리는 위험한 철길을 1㎞ 이상 걸으려면 최소 20분이 걸린다.
 
울산에서 올라와 사고현장을 직접 걸어봤다는 아들 이씨는 "낮에 봐도 선로가 복잡하고 그날은 비도 왔다"며 "노인이 20분 넘게 철길을 걸어 가다 누운 상태로 사고를 당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사고날 바로 넘겨준 유품 신발은 돌멩이가 깔린 철길을 20여분 걸었다고 볼 수 없게 깨끗했다"면서 "왜 거기서 사고가 났는지 너무나 궁금하다"고 했다.
  
열차가 지나간 이씨는 두개골과 갈비뼈, 허리 등이 골절됐고 손과 발 등이 절단됐다.
 
아들 이씨는 "당시 구조대에 따르면 신체 부위가 절단됐음에도 현장 확인 시 피가 별로 없었다고 한다"며 "그전 사고로 심장 및 장기가 손상돼 사망하신 게 아닐지 여러가지 추측이 가능한데도 경찰과 코레일이 제대로 조사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이씨가 왜 거기까지 갔는지, 왜 철길 위에 누워 있었는지는 저희들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경찰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망자에 대한) 보상은 과실에 따라 다른데 선로에 무단 침입해서 사고가 난 것이라면 철도안전법 위반으로 별다른 보상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chac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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