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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거산' YS도 뜻대로 못했던 '서울'

주요 선거서 DJ에게 분루…성수대교·삼풍참사로 상처

(서울=뉴스1) 장우성 기자 | 2015-11-26 16:49 송고
22일 오전 0시 22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병으로 서거했다. 1987년 통일민주당 대선후보로 출마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부산 수영만 유세에서 두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 기록관) 2015.11.22/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22일 오전 0시 22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병으로 서거했다. 1987년 통일민주당 대선후보로 출마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부산 수영만 유세에서 두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 기록관) 2015.11.22/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26일 국가장을 통해 국민에게 아쉬운 작별을 고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경남 거제와 부산에서 9선 국회의원에 오르는 등 부산·경남지역의 최대 맹주였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본거지인 호남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괜찮은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은 곳은 항상 '서울'이었다.

1987년 이후 치른 주요한 선거에서 서울은 속시원하게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대통령 재임기간에도 서울에서는 대형참사가 이어졌고 그가 지지한 서울시장들도 운이 없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개헌을 통해 직선제로 치러진 13대 대통령선거는 양김의 분열로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에게 승리를 안겨줬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국득표에서는 2위를 차지했지만 서울에서는 김대중(183만표)·노태우(168만표) 후보에게 모두 밀려 3위 득표(163만표)를 하는데 그쳤다.

14대 대선에서는 평생의 라이벌 김대중 후보에게 득표율 42.0% 대 33.8%로 비교적 낙승을 거뒀지만 서울에서만은 패배했다. 224만표 대 216만표였다. 호남을 제외하곤 유일하게 뒤진 지역이었다.

같은해 앞서 치른 14대 총선에서도 YS가 이끌던 민주자유당은 서울에서 24석을 차지한 민주당보다 적은 16석을 얻는데 그쳤다. 다만 1996년 신한국당이 완승한 15대 총선에서는 서울에서 27석을 차지해 18석을 수확한 새정치국민회의를 앞서는 기쁨을 맛봤다. 오랜만의 승리였다.
그러나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 서울 민심은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에게 262만표를 몰아줬다. 239만표를 얻은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가 분루를 삼키고 최초의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전국득표에서 39만표 남짓의 근소한 차이였지만 서울에서만 23만표 차이가 났다.

대통령 재임시절에도 서울시와는 궁합이 잘 맞지 않았다. 취임과 동시에  제26대 서울시장으로 46세의 김상철 변호사를 파격적으로 발탁했지만 그린벨트 형질 무단변경 의혹 탓에 취임 4일만에 사퇴하고 말았다. 지금까지도 역대 최단명 서울시장이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가 1990년대 서울 시정, 유통과 소비, 도시 인프라와 교통, 시민 생활 등을 쉽게 볼 수 있는 사진집 '시민과 함께하는 서울'을 발간했다고 27일 밝혔다. 이 사진집은 2002년부터 발간된 '사진으로 보는 서울' 시리즈 제7권으로 총 1,100여장의 사진이 수록됐으며 1991~2000년까지 지방자치시대의 서울 역사를 담고 있다. 사진은 94년 성수대교 붕괴 현장. (서울시사편찬위 제공) 2013.1.27/뉴스1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가 1990년대 서울 시정, 유통과 소비, 도시 인프라와 교통, 시민 생활 등을 쉽게 볼 수 있는 사진집 '시민과 함께하는 서울'을 발간했다고 27일 밝혔다. 이 사진집은 2002년부터 발간된 '사진으로 보는 서울' 시리즈 제7권으로 총 1,100여장의 사진이 수록됐으며 1991~2000년까지 지방자치시대의 서울 역사를 담고 있다. 사진은 94년 성수대교 붕괴 현장. (서울시사편찬위 제공) 2013.1.27/뉴스1

뒤를 이은 관선시장들도 불운이 이어졌다. 이원종 시장은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참사로 사고 당일에 경질됐다. 후임 우명규 시장조차 서울시 부시장 재직시절 성수대교 붕괴위험을 보고받고도 묵살했다는 의혹에 휘말려 11일만에 옷을 벗어야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최고의 업적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1995년 지방선거 전면부활도 서울시에서만큼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했다. 자신의 대선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정원식 전 문교부 장관을 여당 서울시장 후보로 기용했지만 조순 민주당 후보는 물론 박찬종 무소속 후보에게도 뒤진 3위를 기록하는데 머물렀다.

서울시장을 내준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인 그해 6월29일에는 삼풍백화점 붕괴참사를 맞았다. 최병렬 시장과 조순 시장의 교체기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서울에서 계속되는 참사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리더십은 큰 상처를 입었다.

퇴임후 서울시장에는 고건 시장을 끝으로 이명박, 오세훈 시장이 연이어 당선되면서 신한국당을 이은 한나라·새누리당이 9년을 집권했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논란 끝에 중도 퇴진하는 뜻밖의 사태가 벌어졌다. YS는 재보궐선거에서 나경원 새누리당 후보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으나 결과는 박원순 무소속후보의 당선이었다.  박 시장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도 YS가 46년을 살았던 상도동이 있는 동작구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를 누르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 역시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인 1994년 참여연대를 창립해 사법개혁, 재벌개혁, 공직사회 부정부패 척결운동을 주도하면서 시민사회 리더로서 부상하기 시작했다.  YS의 개혁을 때론 지지하고 지지부진할 때는 '눈엣가시' 역할을 하면서 초기 참여연대를 이끈 박 시장도 묘한 인연을 가진 셈이다. 박 시장은 김영삼 대통령서거 소식을 접한 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민주화, 문민, 개혁'을 위한 88년의 삶. 큰 산, 큰 별이 졌습니다. 어른을 잃었습니다. '대도무문' 고인이 우리에 남긴 큰 뜻, 남은 사람들이 무겁게 행동해 가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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