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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훼손 소송 급증' 대한민국…처벌 강화추세에 우려 목소리

국제적 조류에 역행…UN 자유권규약위원회 '비 범죄화' 권고
전문가들 "명예훼손 형사처벌 국가 거의 없어" "손해배상액 높이는 쪽으로…"

(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2015-11-25 06:00 송고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일본 산케이신문 기자에서부터 '종북논란' 황선씨, '물대포 부상자 조롱' 일베 회원, 강용석 변호사까지….

최근 명예훼손 소송이 급증하면서 사회적으로 '명예훼손 소송의 남발'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는 현재의 추세는 국제적 조류에 맞지 않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제한할 수 있다는 걱정도 보인다.

이와 관련, UN 자유권 규약위원회는 6일 '최종 의견'을 통해 우리 정부에 명예훼손을 '비(非) 범죄화' 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같은 날 경찰은 국정교과서 집필진 등 관련자들에 대한 인터넷상 명예훼손 등을 엄단할 방침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전문가들은 '명예훼손'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자세가 국제적 조류와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명예훼손을 형벌로 처벌하지 않는다.  더욱이 '공적사안'에 대해서는 다소 거친 표현 마저 허용하며 다양한 의견들이 표출되도록  유도하고 그 의견들을 수렴하므로써 '사회적 공감대' 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 명예훼손  소송 증가 추세… 일반인도 명예훼손 소송 활용

최근 정치인과 연예인 등 유명인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직접 고소하는 등 명예훼손 관련 소송이 증가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0년~2014년의 기간 동안인 최근 5년간 '명예훼손의 죄'와 관련된 소송건수는 2010년 2883건, 2011년 2981건, 2012년 3401건, 2013년 3801건, 2014년 4425건 등 지속적인 증가추세에 있다.

이 가운데 구금된 사람은 2010년 25명에서 2011년 43명, 2012년 47명, 2013년 68명, 2014년 111명으로 늘고 있는 상황이다.

'명예훼손죄' 관련 소송 증가의 원인으로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의 보편화,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의 등장 등이 거론되어 왔다.

'사법연수원 불륜사건' 당사자는 사건 보도 이후 관련 루머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A씨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강용석 변호사와의 불륜 스캔들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블로거 B씨는 자신에 대해 악의적인 글을 게시하거나 댓글을 남긴 네티즌 수십명을 서울 강남경찰서와 성동경찰서 등에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제 대중은 비방에 따른 불쾌함을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인식하게 됐다. 이런 현상들이 명예훼손 소송 증가의 또 다른 원인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인터넷상의 명예훼손을 더 무겁게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는 현행 법제도 때문에 명예훼손 처벌이 강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반 명예훼손의 경우 2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7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지만 인터넷을 이용해 명예훼손을 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인터넷상의 명예훼손이 증가하면서 처벌이 강화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파성'을 기준으로 형량을 정했기 때문에 전파성이 강한 '인터넷'상 명예훼손이 증가세에 있기 때문이다.

◇ "인터넷상 명예훼손성 게시글 제재해야" vs "정부·정치인 비판 원천 차단"

'명예훼손'에 따른 폐해가 심각해 명예훼손성 게시물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반면 인터넷 게시물에 대한 제재 강화를 빌미로 정부 정책이나 정치인에 대한 비판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달 2일 인터넷상 명예훼손성 게시물에 대해 명예를 훼손당한 본인이 아닌 제3자의 요청이나 직권으로도 명예훼손 여부를 심의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심의규정 개정안을 입안 예고했다. 

즉 명예훼손성 게시물이 발견되면 명예훼손을 당한 사람이 요청하지 않아도 '방심위가 알아서 심의'하고 '방심위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시정요구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방심위의 시정요구는 '권고적 성격'을 띤다. 따라서 강제성은 없다. 하지만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방심위가 시정요구를 하면 따르는 것이 관례"라고 말한다. 즉 방심위가 법률이 아닌 심의규정만으로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해 시정요구를 해도 관련 게시물은 손쉽게 삭제되거나 표출이 제한되는 셈이다. 

방심위 관계자는 인터넷상 명예훼손성 게시물에 대해 직권 심의에 나서려는 이유에 대해 "이용자의 권리구제 기회 확대와 권익 제고"라고 답했다.

하지만 방심위의 설명과 달리 시민사회단체 및 200명 이상의 법률가 등은 "정치인, 연예인 등 공인에 대한 인터넷상 비판 여론을 차단하는 데 남용돼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될 위험이 있다"는 입장이다.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 등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표현하면 방심위가 직권으로 또는 제3자의 요청에 따라 게시물의 명예훼손성을 평가해 해당 의견을 삭제하거나 외부로 표출되지 않게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방심위의 심의권한 확대노력의 진정성은 의심 받는다. 

개정안에 대한 의견수렴기간 동안 국민 600여명이 방심위에 개정 반대의견을 제출했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이번 의견 제출에는 "일반 시민들의 명예훼손 방지를 위해 개정안을 시행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명예훼손은 법원이 판단해야하고 방심위가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내용 등이 담겨있다.

◇심의·처벌강화 추세…국제기구는 처벌조항 폐지 권고 

우리나라는 명예훼손을 형사벌로 처벌한다. 거짓말로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사실을 지적한 표현조차 명예훼손으로 처벌한다. 

지난달 6일 UN자유권 규약위원회는 우리 정부가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명예훼손을 ‘비 범죄화’ 할 것을 권고했다. 

세계 대다수 국가가 명예훼손 처벌규정을 형법에 정하고 있지만 사실상 사문화(死文化)돼 명예훼손으로 형사처벌을 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우리와 같이 ‘사실을 지적하는 표현’조차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는 경우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 밖에도 대다수의 국가들이 ‘의견(Opinion)’은 아예 처음부터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로 "'의견'은 처벌하지 않는다"는 '의견특권론(Opinion Rule)'을 따른다. 하지만 사실을 지적한 경우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규정이 있고, 현실적으로 '의견표현'과 '사실 적시'를 구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경우 실제 처벌까지 이어질 확률이 매우 높다. 

이런 상황 때문에 간접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의견을 표현하는 것을 명예훼손으로 형사처벌하면 국가정책이나 정치인의 행동 등에 대한 '정당한 비판'도 '명예훼손'으로 몰려 설자리를 잃게 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장철준 단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명예훼손은 사실상 개인간의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특별히 물리적 피해가 발생하는 기본권침해가 아닌 상황이므로 국가권력이 형벌로써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명예훼손으로 개인이 큰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명예훼손 피해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액을 지금보다 대폭 상향해 명예훼손 발생을 억제하고 궁극적으로는 당사자들이 자율적으로 해결할 기회를 넓히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명예훼손'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juris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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