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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국채보상운동 '대구 패물폐지부인회' 108년만에 확인

(대구ㆍ경북=뉴스1) 이재춘 기자 | 2015-11-04 16:18 송고
1907년 3월8일자 대한매일신보에 여성들이 국채보상운동에서 활동한 내용이 나와있는 1907년 3월8일자 대한매일신보/사진제공=대구여성가족재단© News1

남성들에게 가려져 있던 국채보상운동의 여성 주역인 대구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의 실체가 108년 만에 확인돼 대구 여성운동과 국채보상운동이 재조명될지 주목된다.
4일 (재)대구여성가족재단에 따르면 1907년 2월23일 대구 남일동에서 여성 7명이 국채보상운동 취지문을 발표했다.

당시 여성들이 조직적으로 국채보상운동에 나선 것은 처음이며, 이를 계기로 전국에서 유사한 운동이 펼쳐졌다.

7명의 여성은 취지문을 통해 "나라 위하는 마음과 백성된 도리는 남녀가 다르지 않다"고 당당히 선언했다.

재단 측이 연구를 통해 확인한 결과 여성운동을 주도한 7명 중 서채봉(1859~1936)·정경주(1866~1945)·김달준(1877~1956) 여사와 정경주 여사의 세 며느리인 정말경·최실경·이덕수 등 6명의 이름이 확인됐다.
재단 측은 이들이 은반지, 은장도 등을 기부해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함으로써 당시 금연(禁煙) 활동에 그쳤던 초기 운동을 실질적으로 한단계 끌어올리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국채보상운동은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 1300만원을 갚아 주권을 회복하자며 대구광문사 부사장이던 서상돈(1851~1913)이 건의해 1907년 2월 대구에서 시작된 주권수호운동이다.

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는 "각 문중의 족보와 족보도서관을 샅샅이 뒤지고, 족보 주소에 나온 산소와 직계 후손들을 찾아다녔으나 '김수원의 처 배씨'라고만 알려진 나머지 1명의 이름을 끝내 찾지 못해 아쉽다"며 "이들의 이름을 찾은 여정과 이들의 관계 등을 스토리북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lea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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