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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반려견 가족에게 추억을 선물합니다"

사진작가 서찬우, 재능기부로 '노령견과 가족사진' 프로젝트 진행
내년쯤 작품 전시회 열어 유기견 없는 '아름다운 동행'에 동참 호소

(서울=뉴스1) 이병욱 기자 | 2015-11-03 09:50 송고 | 2015-11-04 11:19 최종수정
서찬우 사진작가가 1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중앙공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5.11.1/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찬우 사진작가가 1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중앙공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5.11.1/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단풍이 짙게 물든 11월의 첫날 분당중앙공원. 조금은 작고 왜소하지만 우아한 기풍은 살아 있는 코카스파니엘 한 마리가 주인 곁에 조용히 앉아 있다.

쌀쌀한 날씨지만 가을의 끝자락 한 장의 추억을 깊이 새기고자 이곳에 온 '돈순이(15세 추정·코카스파니엘 암컷)'는 박은영(31·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씨와 함께 카메라 렌즈에 시선을 맞췄다.
남한산성에 버려졌던 돈순이는 12년 전 우연히 박씨의 반려견이 되었다.

그동안 박씨 곁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눈 그런 친구였지만, 10년 넘는 세월 동안 짙은 갈색 털은 옅어지고, 백내장으로 하얗게 변한 눈동자와 관절염 때문에 휘고 약해진 다리를 갖게 됐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돈순이와의 이별을 앞둔 박 씨는 둘만의 아름다운 기록을 남기고 싶어 카메라 앞에 섰다.
박 씨처럼 노령견을 키우는 가족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물하는 이가 있다.

포토그래퍼 서찬우(43) 작가는 지난여름부터 '노령견과 가족사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노령견이나 시한부견을 키우고 있는 이들에게 마지막 가족사진을 찍어주고 서 작가가 받는 수고비는 '감동'이다. 직장생활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이지만 주말마다 시간을 쪼개 재능기부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가족처럼 생활하다 버려진 뒤 그곳에서 자신을 버리고 떠난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강아지 사연을 그린 카툰을 본 뒤 우리 사회의 유기견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사람들이 키우던 반려견을 끝까지 책임지는 그런 모습이 진정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에 이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서찬우 사진작가가 1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중앙공원에서 반려견 사진찰영을 하고 있다. 2015.11.1/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찬우 사진작가가 1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중앙공원에서 반려견 사진찰영을 하고 있다. 2015.11.1/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 작가는 첫번째 프로젝트로 만난 단비(15·요크셔테리어 암컷)를 아직까지 잊지못한다.

노화와 신부전으로 죽음을 목전에 둔 단비는 매일매일 상태가 심각해지는 노령견이었다. 동물병원에서조차 다발성장기부전으로 더이상 희망이 없다며 안락사를 권할 정도였다.

단비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서 작가는 그날 밤 늦게 단비의 집을 찾아가 단비엄마와의 마지막을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촬영 다음날 단비는 결국 가족의 곁을 떠났다.

지난 4개월 동안 서 작가를 찾아온 황혼의 반려견들 사연은 다양했다.

심장 비장 간 종양에 이첨판폐쇄부전증(심장병)을 앓고 있던 흰둥이(15·몰티즈), 눈도 안보이고 귀도 들리지 않는 뭉치(14·코카스파니엘), 선천적 소아마비로 관절기형에 척추측만, 어깨 탈골, 부정맥 등으로 혼자서는 앉지도 걷지도 못하는 보호소 출신의 어린 루비(2·믹스견) 등.

어느 것 하나 안타깝지 않은 사연이 없을 정도로 서 작가는 프로젝트 대상을 선택할 때가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의 작은 희생으로 노령견 가족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면 다음 가족과의 만남이 손꼽아 기다려진다고 했다.

노령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서 작가 역시 사랑하던 반려견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다.

까미(슈나우저)와 망치(슈나우저)를 키워오다 5년 전과 3년 전에 각각 떠나보내고 화장한 뒤 유골을 탄천에 뿌려줬다.

"까미와 망치가 떠난 뒤 사진첩을 뒤져보다가 아이들 사진은 많지만 막상 함께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어요. 그래서 가족 같은 반려견을 떠나보낸 뒤 저처럼 나중에 후회되지 않도록 노령견들과의 가족사진을 촬영해 드리고 있어요. 어린 강아지들과 찍고 싶다고 사연을 보내주는 분들도 많은데, 그 아이들에게는 아직 기회가 많이 남아 있으니 나중에 촬영하라고 말씀드리죠."  

서 작가는 내년쯤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한번 입양한 반려견의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아름다운 동행'에 동참하는 이들이 늘어나길 바라서다.

"사진 데이터 원본은 가족들께 모두 보내드리고 있는데, 사진 작업 후에는 출판 또는 전시를 생각하고 있어요. 거기서 생기는 수익은 전액 유기견 관련 단체에 기부할 계획이고요. 저의 이런 뜻을 이해해 주시고 촬영하신 분들이 흔쾌히 허락해주시고 있답니다."

그저 귀엽고 언제나 아기 같던 강아지가 어느새 노령견이 되어 우리의 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몇 장의 추억이지만 서 작가의 카메라 셔터소리가 반려견과 가족들에게 아름다운 이별을 차분히 준비할 수 있게 해준다.

서찬우 사진작가가 1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중앙공원에서 반려견 사진찰영을 하고 있다. 2015.11.1/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찬우 사진작가가 1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중앙공원에서 반려견 사진찰영을 하고 있다. 2015.11.1/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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