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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할례 당한 슈퍼모델의 일대기…책 ‘사막의 꽃’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5-10-29 13:12 송고 | 2015-11-03 17:08 최종수정
© News1


나이 먹은 집시여인이 피가 말라붙은 들쭉날쭉한 면도날을 꺼내고 침을 탁 뱉어 옷에 닦았다. 그리고 곧 내 살이, 내 성기가 잘려나가는 것을 느꼈다.(…)가장 끔찍한 부분이 남아 있었다. (아카시아 나무의) 가시로 살에 구멍을 여러개 뚫은 다음 그 구멍을 희고 질긴 실로 엮어 꿰맸다.(…)오줌을 누기 시작하자 피부가 타들어가는 듯이 따가웠다. 집시 여인은 오줌과 월경이 빠져나올 구멍을 겨우 성냥개비 들어갈 만큼만 남기고 꿰맨 것이다.('사막의 꽃' 76쪽)
여성 성기의 성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제거해 성적인 쾌감을 평생 느끼지 못하게 하고, 남편을 맞이하기 전까지 입구를 꿰매버려 처녀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여성할례. 아프리카와 중동 28개국 뿐 아니라 심지어 뉴욕 이주민 사회에서도 관례라는 구실로 이뤄지기도 한다.

이 어이없을 정도로 폭력적인 관습을 세상에 알리고 이를 막기 위해 애써온 여성이 있다. 소말리아어로 ‘사막의 꽃’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소말리아 출신 유명 모델 와리스 디리(50)다. 최근 국내에서 개정판이 나온 '사막의 꽃'(섬앤섬)은 소말리아의 황야에서 가축을 돌보던 소녀에서 뉴욕, 밀라노, 파리의 런웨이를 누비게 된 슈퍼모델 와리스의 반전 인생을 담고 있다.

이 책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내용은 역시 와리스의 인생에 충격을 안겨주었고 수 십년간 육체적, 정신적인 억압으로 작용했던 여성 할례다. 하지만 이 책이 무거운 주제를 담아 읽기 힘든  책이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책의 개성은 도리어 운명의 여신이라도 움찔하며 뒷걸음질치게 만들 것 같은 와리스의 야생성과 거침없음이다.

강간하려는 트럭 운전수의 머리를 돌로 찍어 위기를 넘기고, '007시리즈'에 단역으로 출연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친구의 여권을 훔쳐 비행기를 타고, 여권을 갖기 위해 아일랜드 노인과 위장결혼하는 죄충우돌의 화끈한 그의 인생이 시종일관 진솔하면서도 유쾌한 필치로 펼쳐진다. 이 이야기들이 매혹적이어서 도덕률, 문명, 가치관 등 우아한 관념들이  검은 아프리카 여성의 거침없음에 밀리는 느낌이다.  
'남동생 알리와 흰 쌀밥과 낙타젖을 먹고 있는데  알리는 게걸스럽게 자신의 밥을 다 먹은 후 내 밥을 퍼먹었다. 나는 옆에 있던 칼을 쥐어 동생의 허벅지를 찔러 복수를 해주었다. 알리는 비명을 질렀지만 곧 칼을 꺼내더니 내 다리의 같은 곳에 칼을 찔러넣었다'와 같은 문화충격이 느껴지는 에피소드가 책의 시작에 나온다.  

와리스는 낙타 다섯 마리에 노인에게 팔려갈 처지에 처하자 집을 나와 사막을 가로질러 무작정 수도 모가디슈로 간다. 모가디슈에서 이모들의 집을 전전하며 수년을 지낸 후 혼자 런던의 이모를 찾아가기 위해 비행기를 탄다. 양변기를 처음 사용한 그가 오수를 어떻게 버리는 지 몰라 작은 컵에 물을 담아 양변기에 채워 희석시키는 장면도 나온다.

이 책에 나오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소말리아 유목민의 삶은 문화충격을 넘어 우리의 문명도 되돌아보게 한다. 아침에 낙타 젖을 먹고 저녁 한 끼로 연명하는 그들의 시간관념은 서구와는 완전히 다르다. 와리스는 "하루의 계획이 미리 짜인 상태에서 하루를 맞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자신의 나이가 몇살인지 정확하게 모르고 아침에 일어나면 그제야 그날 할 일을 정하고 그 일을 다 할때까지, 또는 너무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일생을 산다.

탯줄을 자를 날카로운 도구를 가지고 홀로 아기를 낳기 위해 사막으로 가는 여인들은 잘못된 관습으로 억압과 고통의 일생을 살지만 내면의 강인함을 잃지 않은 여성들을 보여준다.  

2004년 올해의 여성 사회인권상, 2007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고 UN특별사절로 여성성기절제술(FGM)의 반대운동을 해온 와리스의 다음 말에는 수천년간 여성할례로 죽거나 고통받아온 여성들의 고통과 분노가 응축돼 있다. 과격하지만, 그만큼 시원하다.  

"남자들의 성기를 잘라버리면 우리 나라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분비되던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이 없어지면 전쟁도, 죽음도, 도둑질도, 강간도 사라질 것이다. 남자들의 은밀한 부분을 잘라놓고, 피를 흘리다 죽든지 살든지 내버려두면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들이 여성들에 어떤 짓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사막의 꽃' 311쪽)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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