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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유주 "많이 팔려야 하나? 백살까지 쓰고 싶은 것 쓰고파"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5-09-14 19:00 송고 | 2015-09-14 21:40 최종수정
한유주 소설가가 14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의 작업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News1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오늘 왕의 입은 고요하고 왕의 필경사는 왕의 명령을 기다린다. 나의 왼손은 왕, 나의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오늘 왕은 피곤하고 왕의 필경사는 제 낯에서 피로를 감춘다. 나의 왼손이 드물게 말하므로 나의 오른손은 드물게 받아쓴다."(단편집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문학과지성사)에 실린 '나는 필경……'의 일부)

시인지 소설인지 불분명하다. 음악처럼 변주된다. 현실인지 꿈인지 조차 모르겠다. 무엇을 위해 한 장 한 장 벽돌처럼 문장을 쌓아올린 것인지는 다 읽고 나서야 어렴풋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답보다는 질문이 남는다.

14일 망원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만난 소설가 한유주(33)는 소년처럼 무뚝뚝하면서 솔직하고, 엉뚱하면서도 강단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읊조리는 듯한 시적 문장과 기존 서사를 해체하는 파격적 형식이 그의 작품의 특징이다. 

한유주는 이인성 소설가, 정과리 문학평론가 등이 만든 단체 '문학실험실'이 수여하는 제1회 김현문학패 수상자로 지난달 선정됐다. 문학패 수여식은 22일 오후 5시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릴 예정이다.

문학실험실은 한유주 소설가가 “거짓 기억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라는 것의 허위성과 치열하게 싸우며 그 이야기들을 지워가는 독창적 글쓰기를 선보임으로써 새로운 문체를 창출하고 한국어의 표현 가능성을 확장시킨 점”을 높이 평가했다. 

한유주의 책을 펼치면 다소 난감한 느낌이 제일 먼저 든다. 하지만 문장의 리듬에 올라타고 작가가 이끄는 대로 가다보면 어느 순간 슬픔과 공포, 허무함이 살을 저미듯 느껴진다. 그것이 그의 작품의 힘일까. 딴청부리듯 이 얘기 저 얘기 하면서 서서히 핵심으로 끌어들이는…. 모르겠다.

그의 작품을 잘 읽기 위한 열쇠를 찾아서 작가와 일문일답을 나눴다.

▶음악처럼 몇 마디를 계속 변주하는 식으로 문장을 쓰는 것이 특이하다. 그런데 다소 작품이 어렵다는 말을 듣지 않나.

-사실 내 책을 읽는 사람들 중 일반적인 독자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들은 내게 어렵게 쓰는 거 아니냐 하는데, 시각예술이나 음악하는 분들은 도리어 재밌고 쉽게 읽힌다고 말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분야의 분들이 쉽다고 말하는 게 신기하다고 느꼈다.

▶어떤 한 장르나 범위나 경계를 넘어서는 '메타적'인 소설인건가. 전형적인 소설이 아니라 다른 장르에 영감과 영향을 주기도 하는 실험적인 소설일 수 있겠다.

-나는 내가 실험을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면 이야기가 많이 들어간 작품을 썼겠지만 그냥 이렇게 써지니까 이렇게 쓴 것에 불과하다. 다만 그래도 이 작업이 실험으로 보인 것은 '앞으로 나아가서'일 것이다. 실험정신이 없다면 옛 것을 답습하는 것이 될텐데 그렇게 되면 진부한 작품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나아간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하게 문장을 쓰는 것은 어떤 효과를 주는가.

-장편소설인 '불가능한 동화'(문학과지성사) 1부에선 초등학생이던 아이가 허구 속에서 자신의 친구를 죽이는 게 나온다.  그런데 2부에서 2013년 문학 강의를 하던 ‘나’를 만나기 위해 아이는 문을 열고 강의실로 들어온다. 화자인 '나'에게 아이는 어렸을 때 있었던 것이 진짜 있었던 일인지 허구였는지 물으면서  “저한테 왜 그랬어요? 말하세요”하고 따지고 든다. 이런 결말은 자신이 쌓아올린 것을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극적인) 효과를 준다. 하지만 역시 답을 주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내 소설은 충분한 것 같다. 

▶여러가지 직업을 가졌던 것으로 안다.

-대학교 때 등단했지만 글쓰기로 먹고 살 돈을 벌기는 잘 안돼서 카페 서빙 같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1인출판사를 하기도 했다. 당시엔 집에서 일했는데 집이 5층에 있어 책 500권을 찍어도 실어 나르는 일조차 힘들었다. 그래서 사무실 겸 공동 작업실을 얻었다.

▶굉장히 씩씩해 보인다.

-씩씩하지만 게으르다. 1인출판사 '울리포프레스'도 1년에 1권 내는 게 목표였는데 쉽지 않았다. 예전에 어떤 인터뷰에서 '취미가 책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가 욕을 많이 먹었다. 남들한텐 생업인데 너는 취미냐고. 내 경우 돈을 모아서 책을 내고 적자를 보고 또 돈을 모아 내고 싶은 책을 내고 또 적자를 본다.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자체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책내기가 취미라는 말이다. 삶이 따분하고 지루해서 출판이든, 보드게임이든 시간을 '버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물론 좋은 글도 쓰고 싶다.

▶많이 팔리는 글을 쓰고 싶거나 문학적으로 화제를 모으고 싶은 욕망은 없나.

-나는 초판만 겨우 소화되는 정도의 작가다. 김현 문학패 수상자로 선정된 후에도 내가 받을 자격이 있나 하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문단에서 중심인물이나 화제를 중심으로 기사나 이야기가 오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글쓰기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일 수 있다. 화제와는 상관없이 '나는 여기서 내 글 쓸게요' 하는 생각을 한다.  

▶표절과 문학권력 문제로 문단이 시끄러웠다. 젊은 작가로서 하고싶은 말은 없나.

-표절문제로 문인들이나 관련되는 분들이 많은 피로를 느꼈을 테고 나도 (논쟁과 소란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문학권력에 좌지우지되느니)100부만 갱지에 찍어 도서관에 돌리거나 하고 독자들은 인터넷을 통해서 만나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되게 오래 살고 싶다. 100살까지. 지금은 경험도, 읽은 것도 적지만 70~80살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면 좋은 게 나오지 않을까.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글을 쓰고 싶다. 글쓰기는 길게 봐야 하는 작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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