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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톡톡] 갈 곳 없는 동성애 국립대생들…“거북하니 눈에 띄지 마”

(서울=뉴스1) 하수영 인턴기자 | 2015-09-07 17:24 송고 | 2015-09-07 17:36 최종수정
(사진=A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사진=A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대구광역시 소재 한 국립대학교 학생 커뮤니티에서 성소수자 학생들이 만든 동아리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목소리가 거세져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4일 대구 소재 국립대 A 대학교 커뮤니티에는 "XX, 살다살다 퀴어 동아리도 생긴 거냐?"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 커뮤니티는 인증 절차를 거친 A대 학생들만 가입할 수 있으므로, 이 글 역시 A 대 학생이 작성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해당 학교 커뮤니티의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는 해당 글은 A대 학생에 의해 캡처돼 온라인 상에서 급속히 퍼지고 있다.

이 글의 작성자는 거친 욕설과 함께 "이제 퀴어(레즈비언 · 게이 ·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를 포괄하는 단어)' 동아리도 생긴 것이냐"며 "(성소수자들이) 저렇게 당당하게 (학교 커뮤니티) 게시판에 동아리 모집 글을 올리는 시대가 온 것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위와 같은 글이 작성된 이유는 이보다 앞서 A대 성소수자 학생 동아리가 학교 커뮤니티에 회원 모집 글을 게재했기 때문이다.

해당 글에 달린 댓글 중 상당수는 A대 커뮤니티에 공개적으로 홍보를 한 퀴어 동아리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익명의 학생 B씨는 "동성애를 하든 말든 그건 자유지만, 대놓고 자랑할 건 아니지 않느냐"며 "솔직히 거북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 C씨는 익명 댓글을 통해 "동성애자들이 호모포비아(동성애나 동성애자들에 대한 거부감, 혐오감을 가지는 것, 또한 그런 사람)를 정신병자 취급하지만 정신병자는 동성애자들 아닌가?" 라며 다소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비난하는 다수의 목소리에 대해 "너희들 논리는 '내 눈에 보기 싫으니 눈에 띄지 말라'고 하는 전형적인 약자에 대한 폭력이다"  "이런 글이 '명예의 전당'에 오다니 내가 A대생인 것이 부끄럽다"고 하는 등 꾸짖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소수에 불과했다.

더욱이 현재 해당 글은 A대 커뮤니티 주간 핫이슈 코너에도 올라 있는데, 이는 점점 더 많은 A대 학생들이 이 글에 대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A대 퀴어 동아리측은 공식 트위터를 통해 "게시글 수준을 보면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인지 A대 커뮤니티인지 도저히 가늠하기 힘들다"면서 "같은 학교 학생으로서 절망적이다"라고 하면서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서울대는 2015년 2학기부터 성소수자 동아리를 학내 공식 동아리로 인정했다. (사진=서울대 성소수자 동아리 'QIS' 공식 트위터)
서울대는 2015년 2학기부터 성소수자 동아리를 학내 공식 동아리로 인정했다. (사진=서울대 성소수자 동아리 'QIS' 공식 트위터)

◇대구 및 부산·울산 국립대 퀴어 동아리들…"우리도 인정해 주세요"

지난 6월 미국 연방 대법원이 '동성간의 결혼'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고 우리나라에서는 그에 호응하는 대규모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기도 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 성소수자들이 설 자리는 좁아 보인다.

특히 대구와 부산, 울산, 경남에 거주중인 성 소수자들은 아직도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 성 소수자 대학생들이 모일 만한 모임조차 변변치 않은 상황이다.

그나마 대구 소재 A 대학교, 부산 소재 D 대학교, 울산 소재 E 대학교 등 각 지역 거점 대학에 '퀴어 동아리'가 개설돼 있기는 하지만 아직 학내 정식 동아리로 인정받지 못했다.

최근에 개설된 울산 E 대학교의 퀴어 동아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신입 회원도 꾸준히 모집하고 학내 대자보도 붙이고 있지만 현실이 그렇다.

이는 서울대와 고려대, 이화여대, 서강대, 중앙대 등의 성소수자 모임이 학내 정식 동아리로 인정받고 당당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이들 3개 대학에서 퀴어 동아리들은 정식 동아리로 인정받지 못한 탓에 곤혹스러운 일을 겪고 있다. 학내에 붙여둔 현수막이나 대자보가 갑자기 사라지거나 훼손되는 일도 허다하다.

부산 D 대학교의 퀴어 동아리 공동대표 F씨는 지난 7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동아리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등 신상정보를 공개해야 해서 현재는 정식 인준을 받기 힘들다"며 "최근 퀴어 동아리를 정식 인정한 중앙대처럼, 퀴어 동아리 회원들의 신상정보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도록 학교와 학생회측에서 도와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최근에는 서울대학교에서도 학내 퀴어 동아리에 '회원 명부 등록'을 요구하지 않고 서울대학명부에 동아리를 공식 등록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런 이유로 대구, 부산, 울산 및 경남 등지의 성소수자 대학생들은 2013년에 개설돼 그나마 자리가 잡힌 부산 D 대학 퀴어 동아리에 모여들고 있다. 부산 D 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측에서도 "우리 동아리는 부산의 모든 성소수자에게 열려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얼마 전 개설된 울산 E 대학 퀴어동아리도 인근의 다른 국립대학교와 함께 연합해서 만든 것이다.

이에 대해 부산 D 대학 퀴어 동아리측은 기형도 시인의 '나쁘게 말하다'라는 시의 일부 구절을 공식 트위터에 게재하기도 했다. "저들은 왜 밤마다 어둠 속에 모여 있는가. 저 청년들의 욕망은 어디로 가는가. 사람들의 쾌락은 왜 같은 종류인가."


suyoung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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