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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산역 벽화' 일방적 철거는 위법…작가에 배상"(종합)

"국가소유 미술작품, 일방적 폐기는 예술의 자유 침해" 대법 첫 판결

(서울=뉴스1) 구교운 기자 | 2015-08-27 12:41 송고 | 2015-08-27 14:14 최종수정
도라산역 벽화. (대법원 제공)© News1 
도라산역 벽화. (대법원 제공)© News1 

작가 이반(75)씨가 경기 파주시 경의선 도라산역에 그린 벽화를 정부가 철거한 것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국가 소유의 미술작품을 작가의 동의없이 일방적으로 폐기한 행위는 예술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하므로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대법원 최초의 판결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27일 이씨가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이씨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저작물의 종류와 성격, 설치장소의 개방성과 공공성, 국가가 선정하고 설치한 경위, 폐기 이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객관적 정당성이 없다면 폐기 행위를 위법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이 벽화는 국가 스스로 의뢰해 통일염원의 의미로 공공장소에 설치·전시했다"며 "작가에게 아무런 통보 없이 반복·재현이 불가능한 벽화를 조급하게 철거하고 소각한 행위에는 객관적 정당성이 결여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국가는 이씨에게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배해상의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2006년 3월 이씨에게 도라산역 통일문화광장에 "남북교류협력의 현실과 통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해달라"고 의뢰했다.

이씨는 역사 안 벽과 기둥에 벽화 14점을 그렸다. 이 그림들은 합치면 폭 2.8m에 길이 100여m에 달하는 대형벽화였다.

하지만 통일부는 2010년 2월 "도라산역 관광객 사이에서 '색상이 어둡고 난해하며 무당집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여론이 있다"며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벽화를 교체하기로 했다.

같은해 4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체·보완' 의견이 80%가 나오고 전문가들도 '밝은 정서와 평화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5월 철거했다. 이듬해 6월에는 벽화를 불에 태워 없앴다.

이 때문에 당시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흔적 지우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이씨는 "통일부가 벽화의 내용과 형식의 동일성유지권을 깨뜨려 저작인격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냈다.

동일성유지권이란 저작자가 저작물 내용과 형식 등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로 저작물을 이용하는 자는 원칙적으로 저작물에 변경을 가할 수 없다.

통일부는 "소유권자는 자신이 소유한 저작물을 처분하거나 사용·파괴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맞섰다.

1심 재판부는 "저작물의 소유권을 넘기고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받은 예술가라면 이후 발생 가능한 저작물의 운명은 점유자의 손에 맡긴 것"이라며 "통일부의 소유권 행사인 벽화 파괴가 정당한 이상 이를 두고 예술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할 수 없다"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2심 재판부도 "이씨가 대가를 받고 소유권을 넘긴 이상 통일부의 처분행위를 제한할 법적근거는 없다"며 동일성유지권에 대한 이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벽화 철거가 어떤 공익적 목적을 위한 것인지 불분명하다"며 "벽화를 소각한 것은 정부미술품 보관관리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이씨에게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또 "특정 예술작품을 국가가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예술에 대한 국가의 감독으로 이어질 수 있어 예술의 자유를 정면으로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kuk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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