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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강수연의 뼈있는 한마디

(부산ㆍ경남) 오영경 기자 | 2015-08-27 14:00 송고 | 2015-08-27 19:35 최종수정
부산경남본부 오영경 차장 © News1 / © News1


최근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베테랑'에서 형사 역할을 맡은 배우 황정민은 극중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영화를 보고 이 대사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러다 며칠 전 부산국제영화제의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가 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서 "영화 '베테랑'의 그 대사는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이 사석에서 종종 하는 말"이라고 한 것을 듣고 짐작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기자가 영화속 대사를 직접 들은 건 지난 7월 부산국제영화제의 새 식구가 된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이 부산지역 기자들과 만나 인사를 나눈 뒤풀이 자리에서였다.

그날 자리에서는 영화제에 대한 이야기들이 허심탄회하게 오갔다. 그러던 중 예년보다 절반으로 줄어든 예산으로 영화제를 준비하기가 힘들고 벅차다며 기자들에게 하소연하는 영화제 관계자들의 말을 들은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이 이 한마디로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웠었다. "애들아,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니?"라고.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가 수십년간 거친 영화 바닥에서 지금껏 버텨올 수 있었던 근간엔 국내 최초로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여배우라는 명예와 최고라는 자부심이 깊숙하게 내재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아시아 대표 영화제를 넘어 세계 3대 영화제로의 도약을 꿈꾸는 부산국제영화제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이틀 전인 25일 여러 악재 속에 드디어 올해 순항을 위한 돛을 달았다. 영화제는 서울과 부산에서 각각 기자회견을 열고 10월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간 열리는 축제의 이모저모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부산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는 지역 언론 매체 기자 40여 명이 참석했다. 단상에는 새 식구인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과 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서병수 부산시장, 올해 영화제의 풍파를 홀홀단신 홀몸으로 견뎌온 이용관 공동집행위원장 이렇게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기자회견 현장에 일순 긴장감이 감돈 건 영화제에 대한 소개가 끝날 때 즈음이었다. 질의응답 시간에 한 기자가 올해 절반 정도로 깎인 예산으로 영화제를 준비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느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 서병수 시장은 "영화제에 투입하는 정부 예산을 서서히 줄여 영화제가 자생적으로 예산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변화하는 과정"이라며 "정부 예산에만 기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중앙정부와도 계속적으로 협의하고 그외의 방법을 통해서도 예산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서 시장이 답변을 마치자마자 옆에 있던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다시 마이크를 들고 "추가적인 설명을 드리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답변이 부족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순간 서 시장의 표정이 굳는 것 같다고 느낀건 기자뿐이었을까.

이 집행위원장은 "사실 부족한 예산으로 영화제를 준비하느라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았다"며 "협찬을 추가로 확보했다. 부산시 관계자와 시장님의 협조도 있었고 영화인들의 협찬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또 "영화제 전반에 긴축 재정을 도입해 장기적으로 준비해오던 사업을 중단하는 등의 방법으로 올해 영화제에는 지장이 없도록 했다. 하지만 이같은 방법들은 일시적인 임시방편이기 때문에 내년이 걱정이다. 영화제 규모를 줄일지 등 다른 방법에 대해 고민하겠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돈보다 명예나 자존심, 체면이 중요하다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돈은 슬프게도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영화제도 마찬가지다. 부족한 예산으로 빠듯하게 치르는 축제에선 오롯이 예술을 예술로 즐기는 데 한계가 있다. 협찬을 늘렸다고 한다면 관객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선 협찬사의 광고 쓰나미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씁쓸한 상황이다. 

예산 문제에 있어서 이처럼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와 집행위원회는 하루 빨리 서로간의 입장을 조율하고 양측 모두 수긍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예산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예산은 돈과 명예보다 중요한, 영화 예술을 사랑하는 영화인들을 위해 쓰여야 한다. 


amour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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