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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에 간 '현대예술'의 젊은 거장을 번역하다

[인터뷰]아르코미술관 '작가를 찾는 8인의 등장인물' 참여작가 이수진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2015-08-18 08:05 송고 | 2015-08-24 15:23 최종수정
이수진 작가  (사진제공 아르코미술관)
이수진 작가  (사진제공 아르코미술관)


"제 작업은 언어로 옮기지 못하는 그 섬세한 것들을 담아내요. 언어로 표현되지 못하는 생각이나 문자로 옮겨지지 못한 말의 특성 등이 제 관심사입니다. 제가 차학경의 '딕테'에 관심을 두는 까닭입니다."

이수진(36) 작가는 의사소통 과정에서 쉽게 증발하는 것에 주목한다. 그는 사람이 말이나 문자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순간에 집중한다. 사람들은 같은 '문장'을 발음하더라도 각자가 살아온 환경이 반영된다. 개인마다 가진 독특한 언어습관은 사투리 억양처럼 귀에 확연하게 차이가 나지 않더라도 문장을 끊어 읽는 지점이 다르고 강세를 주는 지점도 다르다.

이 작가는 오는 9월 6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이어지는 기획전 '작가를 찾는 8인의 등장인물'에 참여하고 있다. 이 전시회에선 문학 텍스트를 미디어아트로 확장한 작가들의 작품을 한곳에서 볼 수 있다. 기획전 제목 역시 이탈리아 극작가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의 저작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에서 그 제목을 차용했다.

지난 15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이수진 작가를 만났다. 그는 차학경의 저서 '딕테'를 둘러싼 인물의 인터뷰 영상과 차학경의 작업과정에서 탄생한 서신, 노트 등의 문서를 함께 전시했다.

차학경의 유작 '딕테(1982)'는 이수진의 문제 제기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저자 차학경이 사망했기 때문에 텍스트가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읽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위치에 따라서 다양한 관점에서 '딕테'를 이해한다.

한국에서는 차학경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미국 휘트니미술관에서 1993년과 1995년 2회에 걸쳐 차학경 유고전을 열었을 만큼 현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세계 10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휘트니미술관에서 한국인 개인전을 열었던 것은 1982년 백남준 개인전 이후 처음이었다. 또한, 미국문학사에서 포스트모던 문학과 이주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항상 거론된다.

이수진은 "미국에서 문학전공자는 차학경을 시인으로 보지만, 미술전공자는 차학경을 미술작가로 본다"며 "또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차학경을 페미니스트로 제한하거나 '한국계 아메리칸'으로 부각해 유작 '딕테'를 해석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어떤 이는 차학경(1951~1982)의 비극적 죽음을 강조해 선정적인 부분만을 다루기도 한다. 차학경은 31세이던 1982년, '딕테' 출간을 불과 며칠 남겨둔 상태에서 사진작가인 남편의 작업실에 찾아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차학경의 유작 '딕테' 낭독회가 지난 15일 아르코미술관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사진제공 아르코미술관)
차학경의 유작 '딕테' 낭독회가 지난 15일 아르코미술관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사진제공 아르코미술관)

이수진 작가는 그 모든 시선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 그는 차학경의 유작 '딕테'의 의미를 'A=B'식으로 규정하기보다 다양한 의미로 확장되는 과정에 주목했다. 지난 15일 아르코미술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차학경 '딕테' 낭독회도 그런 미세한 결을 드러내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속에서 웅얼거린다. 웅얼웅얼한다. 속에는 말의 고통, 말하려는 고통이 있다. 그보다 더 큰 것이 있다. 더 거대한 것은 말하지 않으려는 고통이다. 말하지 않는다는 것. 말하려는 고통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딕테, 'Diseuse'일부)

50여 명이 참석한 낭독회에서는 미리 선정된 10여 명의 낭독자가 한국어·영어·불어로 차학경의 '딕테'를 읽었다. 이 작가는 "'딕테'라는 텍스트의 의미나 읽는 방식을 한정짓지 않고, 관객들의 능동적인 읽기와 해석을 독려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특정 문화의 관점으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려면 '재번역'이 일어난다"며 "여기서 일어나는 번역의 틈, 즉 '다른 문화를 읽는다'는 행위의 불완전성을 언어작업을 통해 표현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한 문화가 한 개인에게 이해되려면 반드시 ‘재번역’이 행해진다. 여기서 일어나는 번역의 틈, 즉 다른 문화를 '읽는다'는 행위의 불완전성을 이번 전시에 표현코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수진은 해외에서 주로 작업해왔고 현재 2014-2015년 금호창작스튜디오 10기 작가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언어에 관한 작업을 꾸준히 해왔으며, 특히 말과 글 사이의 번역에 대해, 언어를 행하는 것 (쓰고·읽고·듣고·말하는 행위) 에 대해서 영상, 퍼포먼스, 텍스트를 통하여 질문하고 있다. 뉴욕 맨하탄 Hunter Project Space Gallery 및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Taiga Space 개인전을 비롯해 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 및 그룹전에 참여했다.

그는 메릴랜드 인스티튜트 칼리지 오브 아트 (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를 졸업하고 뉴욕대 (New York University)에서 퍼포먼스 스터디스(Performance Studies)와 스튜디오 아트(Studio Art)로 석사를 받았다. Millay Colony for the Arts, Blue Mountain Center, Newark Museum, I-Park등에서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Robert W. Simpson 펠로우쉽과 A.I.R. 갤러리 펠로우쉽을 수상했다.

'작가를 찾는 8인의 등장인물' 전시는 무료다.  문의 (02)760-4850~3.

'작가를 찾는 8인의 등장인물' 중 이수진 작가의 전시 전경 (사진제공 아르코미술관)
'작가를 찾는 8인의 등장인물' 중 이수진 작가의 전시 전경 (사진제공 아르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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