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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영원한 맞수' 박희태 "비통"(종합2보)

5선 국회의원·법무장관·야당 대표 족적

(서울=뉴스1) 서상현 기자, 김현 기자 | 2015-08-04 16:55 송고
 
민주당 대표를 지낸 박상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4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박 전 대표는 그간 암 투병으로 인해 지난 4월부터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 이날 오전 11시 끝내 숨을 거뒀다.

전남 고흥 출신인 박 전 대표는 서울법대 재학중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 20년간 판·검사 생활을 지냈다.

1987년 지난 13대 총선을 앞두고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정계에 입문했다. 서경원 전 의원 밀입북 사건 때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 전 대통령의 변호인을 맡아 활약했다.

국회에 입성한 뒤 야당 대변인을 거쳐 여야 원내총무 3차례, 국민의정부 초대 법무장관, 새천년민주당 및 민주당 대표, 통합민주당 공동대표 등 주요 직책을 두루 거치며 야권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박 전 대표는 13대~16대까지 내리 4선에 당선되며 정치적 절정기를 달렸다. 박 전 대표는 의원 재임 시절 지방자치법, 통합선거법, 안기부법 개정 등 굵직굵직한 입법을 주도해 '법안 제조기'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새정치국민회의 원내총무 시절인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라이벌이자 절친이었던 박희태 당시 신한국당 원내총무와 담판을 벌여 이회창-김대중 후보간 TV토론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박 전 대표는 직선적인 어투에 논리력이 탁월하며, 불같은 성격이어서 호불호가 분명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박 전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의 말을 자르고 자신의 얘기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사로 꼽혔다.

1992년 대선 패배 후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김 전 대통령이 1995년 정계에 복귀한 뒤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을 추진하려고 하자, 김 전 대통령 등 이른바 16인 모임에서 10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김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표가 신당 추진을 반대하는 이유 10가지 중 7가지 정도를 얘기했을 때 "그만하시라"고 말을 자른 뒤 "당신이 신당이 안 되는 이유를 가장 잘 아니 신당을 가장 잘 추진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신당창당 기획위원장을 맡겼다고 한다.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인수위 시절엔 김 전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 자신이 법무장관이 돼야 하는 이유 5가지를 들어 설득, 김대중정부 초대 법무장관에 올랐다. 김 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으로 법무장관 시절엔 '실세 장관'으로 불리기도 했다.   

2003년 9월 새천년민주당 분당 사태 때 '정통모임'을 만들어 사수파 수장으로서 역할을 했고, 분당 후엔 대표직을 승계해 어지러운 당 상황을 수습하는데 공을 들였다. 

그러나 2004년 4월 17대 총선에선 개혁공천을 선언한 '추미애 선대위'로부터 인적 쇄신의 대상으로 낙인 찍혀 공천이 취소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출마했지만, 열린우리당 후보였던 신중식 전 의원과 옥중 출마했던 박주선 의원간 치열한 3파전 끝에 결국 낙선했다.

낙선 후 야인 생활을 해오다 2007년 4월 군소 정당이었던 민주당 당 대표 경선에서 승리하며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고, 2007년 대선 패배 후 이뤄진 야권 통합의 한 축을 이루며 18대 총선에서 원내 복귀에 성공해 5선 고지에 올랐다. 19대 총선을 앞두고선 총선불출마를 선언하며 사실상 정계를 은퇴, 후배 정치인에게 길을 열어주는 선배 정치인으로서 귀감이 됐다.

박 전 대표는 소신은 강했지만, 의회주의자로 평가받았다. 박 전 대표는 쟁점법안 표결 전 조정절차를 거치고 조정기간엔 합법적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할 수 있도록 하는 필리버스터(합리적인 의사진행 방해 행위)제 도입을 주장했다.

2008년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간 대치로 국회 폭력사태가 발생하자 "법안에 대한 대응에는 찬성이나 반대 이외에 수정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당내 투쟁일변도 대응방식에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박 전 대표는 '중도' 성향으로 분류됐다. 그는 총선불출마를 선언했을 당시 "중도진보주의자를 포함해 진보의 범주를 넓혀달라"며 "선거는 중도성향 유권자들의 향배가 당락을 결정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는 하루 흡연량이 2갑을 넘는 애연가이기도 했다. 담배와 함께 미국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는 것을 즐겨했다고 한다.

박 전 대표는 서울대 법대 동기였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영원한 맞수'로 통했다.

박 전 의장은 이날 뉴스1과 통화에서 "논리와 지성을 갖춘 보기드문 정치인이었는데 참말로 비통스럽다"고 "박 전 대표와는 특별한 인연이었다. 정말 많이 싸웠지만, 우리는 존경하면서 사랑하며서 싸웠다"고 애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유족은 부인 김금자(65)씨와 딸 유선(SBS)·민선(제일모직)씨, 아들 태희(SK텔레콤)씨, 사위 김욱준(검사)·김용철(의사)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12호실. 발인은 6일이며 장지는 경기도 광주 시안 가족추모공원이다. (02)2258-5940

    




gayun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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