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선풍기선 뜨거운 바람"…'살인더위' 나는 서울의 쪽방촌

주민 대다수 노장년층…그나마 선풍기조차 없는 집도 많아
구룡마을 주민 "집안은 사우나, 매일 잠못이루는 밤 맞아"

(서울=뉴스1) 권혜정 기자, 김윤호 인턴기자, 김태헌 인턴기자 | 2015-07-31 16:47 송고 | 2015-08-01 11:58 최종수정
(자료사진) © News1 손형주 기자
(자료사진) © News1 손형주 기자


"오늘같이 더운 날에는 정말 힘들어. 선풍기도 없고, 더우면 찬물로 씻을 수밖에. 이렇게 있다가 하나님이 부르면 가야지. 더이상 미련도 없어"
푹푹 찌는 찜통 더위에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려웠던 31일 오후. 서울의 한낮 최고 기온이 31.5도까지 오르는 등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혔지만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쪽방촌 주민들은 집이 아닌 거리에 나와 있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쪽방촌의 좁은 거리에 나와 작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던 한 할머니는 흰 머리가 휘날릴 정도로 강하게 부채질을 해댔다. 그러나 할머니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도무지 마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집 안에서 선풍기를 틀어봤자 뭐하냐"며 "선풍기를 틀면 뜨거운 바람이 펄펄 나온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그는 "방안에 한 번 들어가봐라. 얼마나 꿉꿉하고 더운지, 사우나가 따로 없다"며 "어디가 안이고, 어디가 밖인지 모르겠다. 안에 있는게 더 덥다"고 혀룰 내둘렀다.

구룡마을 쪽방촌에 거주하고 있는 또 다른 이모(85) 할머니의 집은 유독 작았다. 한평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이 할머니의 집 안으로 들어가자 숨막히게 더운 공기가 취재진을 덮쳤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방에 모든 전등조차 꺼버렸다는 할머니는 "이렇게 더운 날에는 밖에 나가지 않는다"며 "쓰러질까봐 무서워 집에만 가만히 누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선풍기와 텔레비전조차 없는 집 안에 누워 있던 할머니는 "더우면 찬물로 씻을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있다 하나님이 부르면 가야지. 이제 미련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 빨리 가고 싶을 뿐이다"고 체념한 듯 읊조렸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예전에는 가끔씩 사람들이 찾아와 선풍기도 주고 그랬는데, 요즘엔 그런 것도 없어졌나보다"며 "선풍기라도 생기면 잠시시원한 바람이라도 쐴 수 있을텐데…"라며 소박한 소망을 내비쳤다.

땡볕 아래에서 자전거를 끌며 마을 입구로 들어서던 김모(76) 할아버지 역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기에 바빴다. 김 할아버지는 "아프면 죽는거다"라며 "아프면 집에 누워있다가 이렇게 더운날 죽어도 아무도 모를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마디 내뱉는 것도 지치는지 "이야기 다했으면 얼른 가봐라"라며 서둘러 햇볕을 피해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 푹푹 찌는 방을 피해 거리에 앉아 있던 정모(53·여)씨는 "많이 덥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당연히 덥지. 왜 안덥겠냐"고 답했다. 그는 "이렇게 더운 날에 선풍기를 틀어봤자 나오는 것은 더운 바람"이라며 "너무 더우니까 말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정씨는 "낮에는 그래도 이렇게 밖에 나와 있기라도 하지. 밤이 되면 더워서 잠도 못자고, 새벽까지 뒤척이다 잠을 설치는 날이 많다"고 덧붙였다.

종로구 창신동에 위치한 쪽방촌의 상황 역시 비슷했다. 한 손에는 부채, 한 손에는 파리채를 든 주민들은 사우나와 다름 없는 방을 피해 거리에 나와 있었다.

일부 주민들은 잠시나마 더위를 날리기 위해 거리에 있던 수돗가에 엎드려 몸에 물을 끼얹고 있었지만 이 역시 무더위를 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런닝셔츠 차림의 한 할아버지는 길바닥 위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찜통 더위 속에서 오지 않는 낮잠을 억지로 청하고 있기도 했다.

쪽방촌 주민 한모(72) 할머니의 방에 들어가자 무거운 습기와 더위가 단번에 느껴졌다. 물기 하나 없이 말라버린 비누와 빨래 등은 최근의 무더위를 증명하는 듯 했다. 그는 "더위가 주춤하는 오후 5,6시쯤 동네 한바퀴를 도는 것 외에는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며 "그냥 방안에 가만히 있는 것이 제일 좋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이모(54)씨는 전등 하나 켜지 않은 어두운 방 안에서 상의를 벗은채 취재진을 맞았다. 그는 "선풍기가 없어 더울 때는 그저 물을 마시고 누워서 쉰다"며 "그래도 무더위 덕분에 밖에 걸어 둔 빨래는 잘 마른다"며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쪽방촌 거주자 조모(55)씨 역시 "오늘이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인 것 같다"며 "햇볕이 그렇게 세지는 않지만 날이 습해 기분 나쁜 더위가 이어지고 있다"며 연신 부채질을 해댔다.

쪽방촌에 대한 지원 등을 맡고 있는 동대문쪽방상담센터 관계자는 "쪽방촌 주민들을 상대로 '무더위 속에서 2시간 이상 일을 하면 안된다'라는 등의 안내사항이 적힌 홍보물을 배포하고 있다"며 "또 수시로 순찰을 돌며 응급환자는 없는지 확인하고, 센터 1층에 무더위쉼터를 만들어 잠깐이라도 주민들이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jung9079@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