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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등에 키스해"…'성희롱' 몹쓸 병 걸린 제약업계

남성위주 위계질서로 여직원 성추행 잇따라…직장상사한테 당해도 분위기상 '쉬쉬'

(서울=뉴스1) 이영성 기자 | 2015-07-31 06:19 송고 | 2015-07-31 13:39 최종수정
뉴스1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뉴스1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나 이 회사 넘버 투야. 날 믿는다는 의미로 손등에 키스해.”

국내 제약업계는 산업 특성상 영업부의 역할이 중요하고 시간 대비 업무 효율을 앞세우다 보니 위계질서가 뚜렷한 산업 중 한 곳으로 꼽힌다.
특히 활동력이 높은 남성 위주의 문화는 제약업계 특징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여성 직원에게 보호막이 없는 경우가 많고 회사 내 여성을 위한 정책이 하나 둘 나올 경우에는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이는 아직 특별한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여직원들에 대한 성추행 의혹 사례들이 잇따르면서 진화된 사내 문화의 정착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관측이다.

국내 중견제약 A사에서 근무했던 정모씨(28)는 지난 3월 충격적인 일을 겪고 나서 결국 7월 10일 퇴사했다.

31일 그에 따르면 3월 2일 신입 영업사원 교육이 끝나고 지역발령을 받은 뒤 가진 회식자리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날 회식에서 1~2시간이 흐른 뒤 회사의 영업마케팅 본부장이 정씨를 자신의 옆자리로 오라고 불렀다. 정씨는 처음엔 거절했다가 옆자리로 옮겼다. 본부장이 정씨에게 자기를 믿는다는 의미로 악수를 하자고 한 뒤 다시 손등에 키스를 하라고 말했다는 것이 정씨의 설명이다.

정씨는 <뉴스1>과 전화 인터뷰에서 “본부장이 A사 회장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라는 점을 말하면서 악수를 한 뒤 손을 놓지 않고 키스를 하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밝혔다.

정씨는 이미 본부장이 자신의 어깨와 허리, 머리, 얼굴을 만진 뒤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본부장은 정씨가 키스를 하지 않자 본인이 직접 정씨의 손등에 키스를 했다. 그 때 정씨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사건이 알려지면서, 회사는 관련 사안에 대한 인사위원회를 열었다. 본부장에게 근신 1개월과 교양서적 10권 읽기가 징계 내용이었다.

정씨는 징계 내용이 턱없이 허술하다고 판단, 경찰에 고소했다. 그는 “교양서적 읽기에 대해 말도 안 된다고 판단했고 3월 말께 결국 경찰에 형사고소를 하게 됐다”며 “회식 사건 이후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었는데 결국 4월 1일 출근해 병가를 신청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다시 회사에 출근하기 시작했던 4월 17일 자신에게 “잘 쉬고 왔냐. 괜찮냐”고 물었던 회사 직원들의 분위기가 어느 날부터 완전히 뒤바뀌기 시작했다고 정씨는 전했다.

정씨는 “어느 날부터 ‘어떻게 고소를 할 수 있냐’ 등 몇몇 직원들이 나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다"며 "부당하게 의지와 무관하게 부서이전 발령도 받았다, 본부장의 근신 1개월이 끝나는 5월부터 다른 부서에서 일을 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그 충격에 무단결근을 했고 회사는 7월 10일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정씨는 “무단결근을 길게 하긴 했지만 징계위원회는 형식적이었다"며 "아무리 3월 회식 건 때문에 힘들어서 그렇다고 해도 그 부분은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일 오후 사직서를 제출해 현재 무직 상태이다.

현재 해당 사건 조사는 경찰에서 검찰로 넘어갔다. A사 관계자는 “관련 사안에 대해 특별히 전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충격이지만 말 하지 못해...숨겨진 성희롱 의혹들

A사 사건은 경찰 고소로까지 이어졌지만 묻힌 사건도 있다.

다른 중견제약사 B사의 한 임원급 상사도 여직원들에 성희롱을 했다는 게 해당 회사 직원의 설명이다.

업계 특성상 제약사들은 의사를 초청한 제품 심포지엄을 호텔에서 진행하는데 심포지엄을 마친 뒤 이어진 뒤풀이 회식이 문제였다.

B사 직원에 따르면, 해당 상사는 호텔 로비에 위치한 바(Bar)에서 심포지엄 행사를 마친 영업부 여직원들을 내려오게 했다. 그러고 여직원에게 듣기 거북한 농담을 전했다. “교수한테만 눈웃음치지 말고 나한테 해”가 그 내용 중 일부다.

당시 일을 겪은 여직원은 수치심을 느껴 이러한 속사정을 동료들에게 털어놨다. 그러나 어쨌든 상사와의 일이기 때문에 관련 내용을 직접 얘기하지 못해 결국 사안은 묻히게 됐다. B사 직원은 “직원들 사이에서만 얘기하고 누군가가 나서서 솔직하게 지적을 하지는 못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C사 영업부 여직원 역시 위계질서상 말하지 못할 상황을 겪었다. 한 선배가 다른 직원에게 휴대전화 메신저를 통해 해당 여직원을 지칭하며 성희롱을 넘어선 내용의 문자를 남겼던 사실을 뒤늦게 들었다.

이 여직원은 화가 나서 선배에게 따졌지만, 모르쇠를 일관하다 보니 더 이상 추궁할 수도 없었다. 선배이다 보니 더 이상 해당 문제를 끌고 갈 수도 없었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아직 제약산업이 보수적인 측면이 남아있다 보니 남성 위주의 문화가 깊은 상황”이라며 “사내 위계질서 혹은 갑을 관계로 피해를 보는 여직원들이 적잖지만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관련 교육 등을 회사가 직접 추진하면서 성희롱이나 성추행 문화를 스스로 문제로 삼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바꿔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lys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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