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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에게 국민투표란…자존심이냐, 돈이냐 선택

이념적 소신 혹은 경제적 지원 놓고 찬반 엇갈려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2015-07-01 15:17 송고 | 2015-07-01 15:44 최종수정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민들이 반긴축 시위를 벌이고 있다. © AFP=News1 2015.06.30/뉴스1 © News1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민들이 반긴축 시위를 벌이고 있다. © AFP=News1 2015.06.30/뉴스1 © News1

카라 마란티도우(40)는 30일 그리스 아테네 의회 앞 신티그마 광장에서 구제금융을 지지하는 집회에 참석한 수많은 시민들 사이에 우산을 들고 선 채 온통 혼란스러웠다. 이틀 전에만 해도 거의 비슷한 규모의 시민들이 바로 이 자리에서 구제금융 반대하는 집회를 벌이며 '오히(Oxi, 아니오)'를 외쳤다.
두 명의 자녀를 둔 프리랜서 디자이너 마란티도우는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를 뚫고 '네(Nai, 예)'를 외치는 그리스인들을 보면서 그리스에 드리워진 불확실성만 확인했다. 그녀는 "두 개의 문 가운데 하나를 열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지만 문 뒤에 과연 무엇이 있는 지 누구도 말해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마란티도우를 포함한 그리스인들이 혼란에 빠졌다며 국제채권단의 구제금융안에 대한 반대 혹은 찬성을 묻는 5일 국민투표를 앞두고 이념과 경제, 자존심과 긴축고통의 사이에 놓여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고 전했다.

28일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구제금융에 대해 반대보다는 찬성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지신문 '투비마'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구제금융에 대한 반대는 33%, 찬성은 47%였다.

하지만 해당 여론조사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국민투표를 발표하기 이전에 나온 것이며 이후 찬반 사이 격차가 역전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찬성 진영은 대부분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중산층일 가능성이 높고 반대 진영은 극우 혹은 극좌에 있는 가난한 유권자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난하다고 구제금융을 반대하고 부유하다고 찬성하는 것만은 아니다.

벤처기업 헬레닉페트롤리엄에서 인사책임자로 일하는 게오르게 크리스티아노스(40)는 채권단의 구제금융안을 거부한다고 그리스가 유로에서 탈퇴하는 것이 아니라며 이번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스 정부가 긴축을 완화하는 새로운 협상을 진행할 교섭력을 높이기 위해 두둑한 탄약을 제공하는 편이 낫다고 그는 말했다.

크리시티아노스는 아테네에서 무정부주의자들이 주로 활동하는 엑사시아 광장의 한 카페에 앉아 자신이 "특권층의 거품"을 누렸다고 인정했다. WSJ에 따르면 크리시티아노스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가족이 소유한 주택에서 살면서 안정적인 봉급을 받고 있다.

타키스 안토노폴로즈(66)는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산층 은퇴자로서 구제금융안에 대체로 찬성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딜레마에 빠졌다. 몇 년 동안 이어진 긴축 조치로 연금은 반토막 났고 주택과 예금에 매겨진 세금은 크게 올랐다.

28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 소재 내셔널뱅크의 한 지점 외부에 있는 현금인출기(ATM)에 시민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채권단이 구제금융 연장을 연장해달라는 그리스 정부의 요청을 거부하면서 그리스 내에서는 자본통제가 시작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 News1 
28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 소재 내셔널뱅크의 한 지점 외부에 있는 현금인출기(ATM)에 시민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채권단이 구제금융 연장을 연장해달라는 그리스 정부의 요청을 거부하면서 그리스 내에서는 자본통제가 시작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 News1 
하지만 안토노폴로즈는 일단 구제금융에 대해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며 구화폐인 드라크마로 돌아간다면 과거 전후 시절 경험했던 연료부족과 식품배급에 허덕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유로존에 잔류하면 개인적으로 더 고통스럽겠지만 드라크마 복귀는 국가적 재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는 의약품, 연료 등을 포함한 주요 생필품을 수입하고 있어 드라크마 시대로 복귀한다면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릴 수 있다.

또 다른 연금수령자인 콘스탄티나 파스챨리디(80)는 21세기에도 전후 시절 못지 않은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리스가 2010과 2012년 두 차례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파스챨리디는 두 차례 연금을 삭감당해 월 650유로(약80만원)로 생활하고 있다.

그녀는 만성질환을 앓는 53세 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31세 손녀와 함께 살고 있다. 파스챨리디는 "드라크마를 다시 사용한다 하더라도 나에겐 유로와 별 차이가 없다"며 "돈을 가진 이들은 유로를 지지하겠지만 나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법학도인 소피아 오르파누(19)는 유럽 내에서의 그리스 미래를 위해서 긴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르파누는 "우리가 더 아파야 하겠지만 유로에 머물러 힘든 일을 해내면 장기적으로 볼 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폐가 드라크마에서 유로로 변경됐을 때 나는 겨우 6살이었다"며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다니는 대학교가 유럽 지원금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 뿐이다"고 덧붙였다.


kirimi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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