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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문단 원로들 "신경숙 철저히 반성하고, 창비는 다시 태어나야"

현기영·신경림·염무웅 등 문단 원로, "철저한 반성 아래 한국문학 다시 세워야" 한 목소리
창비 정신적 지주 백낙청 교수는 여전히 묵묵부답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2015-06-29 18:51 송고 | 2015-06-29 22:33 최종수정
신경숙 소설가 © News1
신경숙 소설가 © News1


"90년대 이후 창비를 비롯 문학동네와 문학과지성이 신경숙이 한국문학의 전부인 것처럼 압축시킨 잘못을 반성해야 한다" (현기영 소설가)
"우리 모두 초심으로 돌아가자. 지금이 오히려 우리 창비가 다시 태어날 좋은 기회다. 다시 태어나야 독자들이 용서해줄 것이다"(신경림 시인)

"신경숙씨는 지금처럼 어물쩍 넘어가려하지 말고 자신의 잘못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철저히 반성해서 넘어서길 바란다"(염무웅 평론가)

한국문단의 원로들이 유명 소설가 신경숙 씨의 표절 논란과 이를 초래한 '문단 권력'으로 지목된 대형출판사 '창비'에 대해 철저한 반성과 명확한 재발방지대책을 잇달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창비를 통해 문단 내에서 입지를 다져온 인물이어서 향후 문단 내 자정방안 수립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창비의 대주주이자 '정신적 지주'로 불리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표절 의혹이 제기된 지난 16일 이후 2주 가량이 지난 29일 현재까지도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창비 역시 신 씨의 단편 '전설'이 수록된 작품집 '감자먹는 사람들'(구 오래전 집을 떠날 때)을 출간했다가 표절 논란이 일자 지난 23일 출고정지한 이후 후속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현기영(75) 소설가는 29일 뉴스1과 전화 인터뷰에서 "창비와 40여년 인연을 맺어왔다. 이번 사태로 속상하다 못해 뼈가 아프다"며 "창비가 '역사'와 '사회'의 심층부를 꿰뚫는 리얼리즘 문학으로 한국문단의 한 축을 이뤄왔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가 확립되면서 소비사회가 펼쳐지자 창비 본연의 기능을 잃어갔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학에는 관심사가 서로 다른 작가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잘 키워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또 "신경숙씨가 아름답고 고운 문장을 써내려고 노력해왔음은 누구보다 인정한다. 그의 노력을 알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아름다운 표현을 직접 쓰는 것과 표절은 분명히 다르다"며 "신경숙 문학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한국문학의 전부는 아니다. 신경숙씨는 상업적 논리가 숨겨진 상찬 속에서 자신의 문학성을 지켜냈어야 했는데 휩쓸렸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나친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철저한 자기반성은 작가만의 특권일 수 있다.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작가도 사람이다. 그러나 작가는 잘못을 부정하지 않고 반성해야 한다. 그것이 문학이다. 나는 아직 신경숙씨가 작가라고 믿는다. 그가 이번 사태를 잘 이겨내고 다시 글을 쓰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경림(79) 시인은 "소설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싶다. 이해를 부탁한다"면서도 "그러나, '우리 창비'에 대해선 한 마디 하고 싶다. 우리 창비가 한국문학에 기여한 만큼 책임이 크다. 그것을 망각했고 이번 일은 잘못이 분명하다.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가 아니다. 다같이 뉘우치자.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창비가 철저하게 반성하고 고쳐야 한다. 우리 모두 초심으로 돌아가자. 지금이 오히려 우리 창비가 다시 태어날 좋은 기회라고 본다. 다시 태어나야 독자들이 용서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염무웅(73) 평론가도 "언론과 주고받는 한두 마디로 말을 보탠다는 것이 우려된다. 무릇 문인은 자신의 온전한 글로 입장을 밝히는 것이 옳다"고 전제하면서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외형적으로만 팽창한 우리 문학이 이번 사태를 자정의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울러 "신경숙씨는 지금처럼 어물쩍 넘어가려하지 말고 자신의 잘못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철저히 반성해서 넘어서길 바란다. 다시 거듭날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원로들의 의견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신경숙씨는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반성하고 '문단 권력'으로 지목된 창비와 문학동네 등 대형출판사들은 진정성 있는 태도로 한국 문학을 다시 일으키기 위한 자정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표절 논란이 된 신 씨의 소설 '전설'을 발간한 출판사인 창비의 '정신적 지주'로 알려진 문학평론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 5월6일 대담집 '대전환의 길을 묻다'를 펴내고 기자간담회를 갖는 등 적극적 행보를 하면서도 표절 논란이 일어난 지 2주 가량이 지나도록 이번 사태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문단에선 백 명예교수의 책임론도 거세다.

문학평론가 오길영 충북대 교수는 "창비=백낙청"이라며 "창비의 출간물에서 백낙청은 건드릴 수 없는, 건드려서는 안되는(untouchable) 존재"라고 지적했다. 백 평론가의 영향력은 창비의 지분구조 속에도 잘 드러난다. 백 평론가의 지분은 31.1%, 그의 부인인 한지현씨가 7.8%로 두 사람을 합치면 지분은 38.9%다. 창비의 1대주주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은 지난 22일 CBS라디오 방송에 출현해 "창비의 상징이 바로 백낙청 교수"라며 "그 분께서 '표절이다, 아니다'를 분명히 말씀을 하시고, 거기에 대해 말로만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피해보상이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원로 문인인 이시영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은 지난 26일 문학권력 논쟁에 참여해온 문학평론가들과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 지성사를 아우르는 공개 토론회를 제안했다. 그러나, 한국작가회의 홈페이지(hanjak.or.kr)에는 29일 현재까지 '제21회 전국고교생백일장' 안내문을 팝업창으로 안내할 뿐, 이 이사장의 토론 제안을 구체화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한국 문단과 대형출판사들이 이번 표절 사태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해결책없이 어물쩡 넘기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일었다. 그러나 이번 문단 원로들의 잇단 문제 제기로 상황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이번 표절 논란은 소설가이자 시인인 이응준 씨로부터 촉발됐다. 이씨는 지난 16일 온라인매체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올린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이라는 글에서 신경숙의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신 씨와 그의 소설을 출간한 출판사 창비가 처음엔 표절 의혹을 부인했다가 다시 사과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 고발까지 이뤄지는 등 이번 표절 논란은 문단은 물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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