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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소설가 전성태, 종이배 띄우듯 어린시절 이야기 담아 보냈다

산문집 '세상의 큰형들'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5-06-15 08:00 송고

소설가 전성태가 12일 서울역 근처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가졌다.© News1


소설가 전성태(46)의 어머니는 어른인데도 유난히 신발이 잘 벗겨졌다. 작가는 어머니에 대해 "농부로, 주부로, 6남매의 어미로 늘 쫓기는 사람처럼 바빴다. 흰 고무신이 벗겨졌는데도 곧장 내달리는 바람에 뒤따르던 내가 주워준 적도 있었다. 무슨 다급한 일이라도 벌어졌는가 싶어 쫓아가보면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고작 아버지에게 농기구를 전해준다든가, 학교가는 형들을 붙잡아 도시락을 안겨주었다." 고 회고했다.

어린 전성태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늘 닦달하여 들로, 부엌으로 달려다니게 했다고 믿었다. 아니면 손거들어 줄 딸을 여럿 못 낳고 아들만 다섯을 낳아 그런가 하고도 생각한다. 어쨌든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주 싸웠다. 그리고 그렇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대판 싸우고 화해를 하지 못하고 가을이 왔다.

아버지의 도움없이 겨울나기 땔감을 손수 모아야 했던 어머니는 산에서의 무섬증을 달래려고 아들을 데리고 야산으로 간다. 어머니가 나무를 하는 동안 아들은 시야가 트인 묫자리나 산길에서 어머니를 기다린다. 아들은 갈큇소리가 멀어지면 그늘 깊은 뒷간에 앉은 아이처럼 소리쳐 어머니를 찾았고, 반대로 어머니가 정적을 못이겨 아들 이름을 부르곤 했다. 그러던 중 어머니는 아들이 심심할까봐 눈을 뒤룩거리는 새 한마리를 잡아준다.

"이름이 뭐댜?"
"……자X 물어갈 새제 뭐겄냐."
"뭐라고?" (아들은) 귀를 의심하며 어머니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대답을 반복하고는 나무를 모으러 다시 돌어간다. 

아들은 새를 쥐고 있다가 새가 순해지자 가만히 고무줄 바지를 내렸다. 그리고는 소리를 빽 지르면서 자지러졌다. 그 서슬에 새가 날아가버리고 아들은 울면서 아랫도리를 보고 또 보았다. 어머니가 숲에서 뛰어나왔다.
"참말로 꽉 물어부렀다."
아들은 울먹이며 말했고 어머니는 바지를 훌떡 끌어올려주며 등짝을 맵게 내질렀다.
"워매, 썪을 놈! 뭔 지랄한다고 고걸 새한테 내보이냐!"('세상의 큰형들' 중 '어머니가 잡아준 새' 일부)

'세상의 큰 형들'(난다)에 실린 전성태의 산문은 능청스럽고 웃기면서 아름답다. 그립고 정겨운 시절의 이야기를 작은 드라마나 소설처럼 응축해 담아낸다. 소설가 한승원이 이 산문집을 보고 "아깝다! 소설로 썼어야지."라고 말했을 정도로 생명력있는 인물들이 황당하고 웃기고 가슴저린 이야기들을 이끌어간다.

하지만 12일 서울역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성태는 '주운 이야기'일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94세까지 산 할머니에게 찾아온 방문객들이 풀어놓는 이야기를 어깨 너머로 들은 것, 다른 집 사정을 시시콜콜 다 알게되는 전통적인 농촌에서 자라며 들은 이야기를 옮긴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1970년대 전남 고흥군에서도 20가구 안팎이 사는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그리고 그는 '유년기 경험을 담는 것이 자신의 작업의 본령은 아니'라며 이 산문집 발간이 '종이배를 띄우듯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떠나보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News1


'세상의 큰형들'은 5년전 '문예중앙'과 '좋은 생각 웹진'에 연재했던 산문을 엮어낸 '성태 망태 부리붕태'(좋은생각)를 재출간한 것으로 작가 스스로는 '구닥다리'에다 수명이 짧을 것이라 재출간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좋은 생각에서 출간되기 전부터 눈독을 들이다 기회를 놓친 학교후배이자 출판편집자인 김민정 시인이 "절판됐으니 다시 내자"고 제안해 다시 나오게 됐다. 산문집엔 45편의 이야기와 화가 윤종석씨(45)의 삽화가 어우러졌다.

이 산문집의 세계는 몇 달 전 낸 작품집 '두번의 자화상'과 그 전의 작품집에서 보여준 성장소설 및 고향이야기와 맥이 닿아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정체불명의 정서와 문학적 허세가 난무하는 문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역시 작가 자신은 "등단 당시 X세대, 오렌지족이 유행이고 동년배 작가들은 삼풍백화점이나 서태지 같은 문화적 체험을 갖고 글을 쓰는 데 나는 땅굴을 파고 놀고 개구리 잡아 파는 시골 소년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컴플렉스였어요. 도회지 감수성으로 무장한 작가들 속에서 흰쌀 속 검은 쌀 한톨이 섞인 듯한 느낌으로 주눅들어 지냈지요."하고 말했다. 

하지만 소설가 황석영은 '한국명단편101선'(문학동네)에서 전성태 작가의 단편 '존재의 숲'을 "문체와 말이 오래 묵힌 장맛처럼 깊고 맛깔스러우며 읽기를 마치고 나서도 그 아득한 여운이 오래 남는다. 마치 백석의 시가 소설로 돌아온 것만 같다.(...) 이런 단편을 어느 먼 나라 이역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인가. 참으로 절창이다."라고 극찬한 바 있다. 이것 아니어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걸쭉한 그의 입담은 김유정과 채만식, 이문구의 계보를 잇는 것으로 문단 내에서 정평이 나 있다.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도 매력적이지만 사회문제를 개인의 차원으로 구체화해 풀어내는 탁월한 능력도 장점이다. 1994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전성태는 "대학다닐 땐 집단창작도 했고 평생 운동을 한다는 개념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30을 막 넘긴 나이엔 한국작가회의의 사무국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했고요. 하지만 사회주의가 실패하고 저 스스로도 '우리가 원하는 좋은 사회가 되면 욕망의 문제까지 해결될 것인가?'하는 의문을 품으면서 이전에 비해 글이 유연해졌죠."하고 설명했다.

작가는 이번엔 또 다른 시도를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최근 계간지 창비에 연재하기 시작한 '늙은 햄릿'에선 지금까지의 글쓰기로도 '소거(해결)되지 않은 부분'을 담아내려 하고 있어요." 대기업 회장의 연설문작성자의 이야기인 이 작품에서 그는 미워했던 아버지와의 문제, 죄책감 등을 정면에서 다룰 것으로 보인다. 전성태 작가는 실제로 딱 15일간 모 대기업 연설문 작성자로 일한 적이 있다. 연설문 4개 쓰고선 회사 신체검사에서 간염이 발견돼 직장을 그만뒀지만 말이다.

전성태 작가는 작가로서의 자부심이  크다. 그는 "자기 것을 물리고 굽신거리고 양보해야 하는 다른 직업과 달리 작가는 그러지 않아도 되고, 계속 성찰을 해야만 하는 구도자적인 직업이라는 면에서도 좋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인생에서 가볼 수 있는 것을 갈데까지 가볼 수 있는 티켓을 받은 느낌, 인간이 갈 수 있는 바닥까지도, 제일 높은 곳까지도 가보라는 허가를 받은 직업이 작가인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ungaung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