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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베노믹스]집중치료실 퇴원한 똘똘이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2015-05-04 11:27 송고 | 2015-06-17 09:55 최종수정
편집자주 이른둥이를 낳고 키우면서 겪는 좌충우돌 일상을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풀어봅니다. 일종의 '육아가계부'라고 불러도 좋겠네요. 아줌마 기자가 쓰는 육아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건양대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인큐베이터© News1 2014.03.13/뉴스1 © News1
건양대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인큐베이터© News1 2014.03.13/뉴스1 © News1


똘똘이가 신생아 집중치료실(NICU)을 한 달여 만에 졸업할 때는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했다. 먼저 한 달 동안 큰 수술 없이 잘 자라준 똘똘이에게 무척 고마웠고 기뻤다. 하지만 아직 엄마 뱃속에 있어야 할 아기를 보고 있자니 두려움에 죄책감까지 들었다. 이제 막 출산한 엄마라면 다들 불안하겠지만 이른둥이(미숙아) 엄마들은 심적 부담이 훨씬 더 하다. 많은 이른둥이들이 만삭아만큼 건강하게 성장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른둥이들은 미숙아 망막증부터 뇌성마비에 이르기까지 장애를 가질 위험이 만삭아에 비해 더 크다.

엄마 뱃속에서 31주6일만에 1.81kg으로 태어난 똘똘이는 입원 당시 NICU에서 비교적 건강한 편에 속했다. 하지만 똘똘이 역시 이른둥이로 태어났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한번은 똘똘이가 담즙 역류로 금식을 한 적이 있다. 담당의사는 담담하게 이 소식을 전했지만 엄마에겐 청천벽력 같은 얘기였다. 장기가 덜 자란 이른둥이들은 장괴사, 장천공, 장폐색 등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질환에 노출돼 있다. 분유도 못 먹는 아기가 그나마 마시던 물 몇 cc도 마시지 못한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다행히 담즙 역류는 곧 멈췄고 똘똘이는 분유를 먹기 시작했다. 입원한 지 한 달쯤 되니 퇴원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똘똘이가 집으로 돌아올 날이 다가올수록 나는 더욱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똘똘이가 최첨단 장비를 갖춘 NICU에서 24시간 간호사 선생님들의 보호를 받다가 아무런 보호 장비도 없는 집에서 초짜 엄마의 돌봄을 받아야 하다니. 똘똘이와 나는 사실상 생면부지나 다름없었다. 2주간의 산후조리 기간 동안 하루 두 차례 20분씩 있는 면회는 대부분 아빠 몫이었다. 그나마 나머지 2주 동안 면회를 갔지만 하루 40분 면회 시간 동안 주로 하는 일은 인큐베이터 너머 똘똘이를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퇴원 직전 며칠 동안 똘똘이를 직접 안고 젖병을 물려 본 적도 있지만 기껏해야 몇 번뿐이었고 그때마다 영 어색했다. 똘똘이가 병원에 좀 더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NICU에서 만난 다른 엄마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엄마는 아기가 재입원하거나 또 다른 질병을 앓을까봐 걱정이라며 마치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정은 외국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연구진은 국가건강보험(NHS) 지원으로 현지 병원의 NICU에서 '가족통합치료(FIC·Family Integrated Care)'라는 제도를 조만간 시범 운영할 예정이다. FIC는 이른둥이 부모들이 아기가 입원한 NICU에 하루 8시간 이상 머물며 아기를 돌보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면회 시간에 잠깐 아기와 눈인사만 할 게 아니라 부모가 주도적으로 아기를 돌볼 수 있도록 시간을 내주는 게 목적이다.

아기가 퇴원할 때까지 부모가 가능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유대감을 높이는 게 아기와 부모에게 모두 도움이 된다는 임상적 판단이 배경이 됐다. 캐나다 10개 병원과 호주·뉴질랜드의 10개 병원의 임상실험 결과 NICU에서 부모들의 돌봄을 받은 아기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몸무게가 25% 더 빨리 늘었다. 또 간호사들이 돌본 이른둥이들은 감염률이 11%나 됐지만 부모들이 챙긴 아기들은 0%에 가까웠다.

NICU 침상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에선 이런 제도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NICU에서 퇴원한 이른둥이들이 미흡한 응급처치로 재입원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모들에 대한 퇴원교육이나마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이른둥이 지원사업도 개선돼야 한다. 정부의 관련 예산은 임신 37주 미만 또는 2.5kg 이하로 태어난 신생아 가운데 24시간 안에 집중치료가 필요해 NICU에 입원한 경우에만 적용된다. NICU에서 일단 퇴원하면 정부 지원금은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아기 건강에 대한 우려와 막대한 치료·입원비용 부담까지 더해져 NICU를 떠나는 이른둥이 부모들은 속을 태울 수밖에 없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이른둥이 부모들의 마음을 헤아릴 정책과 병원의 대비가 절실하다.


kirimi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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