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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생존자들 "한 발짝도 못 움직이고 떨기만 했다"

"순식간에 무너진 사원, 눈앞에서 고등학생들 사라지기도"
전기·전화 끊기고 물도 없어…영사관 사고 대응도 미흡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황라현 기자, 손미혜 기자, 주성호 기자 | 2015-04-28 05:27 송고 | 2015-04-28 08:14 최종수정
지진이 발생한 네팔 카트만두에서 돌아온 여행객 및 체류객들이 28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가족들과 재회하고 있다. 2015.4.28/뉴스1 © News1 손형주 기자
지진이 발생한 네팔 카트만두에서 돌아온 여행객 및 체류객들이 28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가족들과 재회하고 있다. 2015.4.28/뉴스1 © News1 손형주 기자

"갑자기 꽝 소리가 나더니 땅이 크게 흔들렸어요. 산에서 폭발물이 터진 줄 알았습니다."

"밖으로 뛰쳐 나가보니 겁에 질린 사람들이 거리에서 울며 소리 지르고 있었어요. 거리에 공포가 가득했어요."

지난 25일 네팔 수도 카트만두를 강타한 규모 7.8의 강진을 눈앞에서 본 사람들의 눈에는 아직도 지진에 대한 공포가 서려 있었다.

지진 발생 사흘 뒤인 27일 카트만두를 출발해 다음날 오전 1시쯤 대한항공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네팔 지진 생존자 260여명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공항에서 이들을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들은 출입국장에 들어선 생존자들을 보자 안도감과 반가움에 울고 웃으며 볼을 쓰다듬기도 했다.

◇"순식간에 무너진 사원, 눈앞에서 고등학생들 사라지기도"

남편과 함께 트래킹을 하려고 네팔을 찾았던 박미경(37·여)씨는 지진 발생 당시 숙소에서 쉬고 있었다. 박씨는 "갑자기 건물이 굉장히 심하게 흔들려 침대 밑에 들어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떨기만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박씨는 "사원 바로 앞에 있었던 남편은 사원이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주변이 흙먼지로 뒤덮이고 눈앞에 있던 고등학생들이 사라지는 걸 지켜봐야 했다"고 설명했다.

지진 발생 당시 친구들과 안나푸르나에서 트래킹을 하던 중이었던 이기영(67)씨는 "갑자기 꽝 소리가 나더니 땅이 크게 흔들렸다"며 "산에서 폭발물이 터진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지진 여파로 담벼락이 무너지면서 얼굴과 오른손 등을 다친 박종권(40)씨도 "오전 11시55분쯤부터 시작된 진동이 15~20분 정도 계속됐다"며 "한 걸음 떼기가 어렵고 선 채로 몸을 가누기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출장차 네팔을 찾았던 회사원 박찬중(58)씨는 "눈앞에서 건물이 무너져 처참한 광경을 보면서도 머물던 호텔이 여진에 계속 흔들리는 데도 호텔 바깥에 나갈 엄두를 못 낼 만큼 무서웠다"고 말했다. 

© AFP=뉴스1 2015.04.27/뉴스1 © News1
© AFP=뉴스1 2015.04.27/뉴스1 © News1
네팔 카트만두에서 온 시민들도 이번 같은 지진은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네팔 카트만두 출신인 파베쉬 다트마(26)씨는 "당시 가족들과 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며 "평범한 지진인 줄 알고 집 안에 있다가 1-2분 동안 강한 진동이 계속되니 공포가 밀려와 결국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평생 이렇게 강한 지진은 처음이었다"며 "지구 종말이 오는 줄 알았다"고 혀를 내둘렀다.

네팔 카트만두 출신인 팀시나 디팍(26)씨는 "카페에서 친구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테이블이 흔들려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며 "밖으로 나가니 겁에 질린 사람들이 울며 소리 지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전기·전화 끊기고 물도 없어…영사관 사고 대응도 미흡 

이날 이들은 안전한 곳으로 왔다는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동시에 현지에 남은 이들에 대한 염려도 했다. 

의료 봉사차 네팔을 방문했던 한의사 김정식(68)씨는 이번 지진으로 5월28일로 예정돼 있던 출국 날짜를 한 달 앞당겼다.

김씨는 "갑자기 비행기 표를 구하기가 어려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지진 때문에 공항에 나타나지 못한 사람이 많아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며 "지진 피해를 입은 사람 대신 비행기를 탄 셈이라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박종권씨는 "카트만두 시내 전체에 전기와 전화가 거의 끊어진 상황이라 시민들은 자가 발전기 등을 통해 겨우 전기를 끌어다 쓰고 물도 지하수를 끌어다 쓰고 있다"며 "병원 건물도 벽에 금이 많이 간 상태로 주차장에 천막을 쳐놓고 임시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미경씨는 "무엇보다 바깥소식을 제대로 듣지 못하니 불안함이 가중됐다"며 "겨우 인터넷이 연결될 때 가족들과 하루에 한 번 정도 연락이 닿았다"고 말했다. 

혼자 트래킹에 나섰다 운 좋게 살아났다는 한 40대 남성은 "지금 타말 거리의 가게들은 모두 폐쇄됐고 시장도 닫혀 있는 상황"이라며 "건물도 부서지고 기울어져 있어 거리를 지나다니는 것 자체가 무섭고 힘들다"고 전했다. 

이어 "네팔로 출발할 때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이쪽으로 연락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는데 막상 지진이 일어나니 영사관은 제대로 연락도 닿지도 않고 사고에 대한 관리체계가 없어 화가 났다"며 "결국 각자 살아남아야 했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25일 네팔을 강타한 규모 7.8의 강진으로 27일까지 3700여명이 숨진 것으로 공식 집계됐다. 부상자도 6500여명에 이른다. 일각에서는 네팔 지진으로 인한 사상자가 1만명이 넘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letit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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