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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에 너를 맡겨, 홍대 '라이브 클럽데이' 현장을 찾아서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2015-04-27 06:00 송고
'라이브 클럽데이' 행사당일인 지난 24일 저녁 7시30분. 2호선 홍대입구역 9번출구 계단은 인파로 막혀 버렸다. 사람들은 평소 30초면 올라가는 출구로 3분 넘게 인파에 밀려 서서히 올라가야 홍대 거리로 나올 수 있었다. 젊은이와 외국인 관광객으로 이뤄진 이들은 거리 곳곳에서 버스킹(무명 뮤지션의 길거리 즉흥연주)을 구경하느라 걸음을 멈추고 모여 있었다.
홍대 피카소 거리의 티켓박스 앞으로 예매티켓을 교환하려는 긴 줄이 이어졌다. 관객들은 홍대 주변의 클럽을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자신이 원하는 공연을 보면 된다. 노란색 팔찌티켓으로 교환한 젊은이들은 어느 클럽에 갈지 동선을 짜느라 심각했다. 38개의 인디밴드가 새벽 2시까지 공연을 펼친다. 같은 시간대의 공연을 모두 보고 싶다면 재빨리 발길을 옮겨야 한다. 클럽 간의 이동 시간은 도보로 5분 ~ 20분 정도로 동선을 잘 짜지 않으면 좋아하는 공연을 놓치기 쉬웠다.

그들은 들뜬 표정으로 홍대 주변의 클럽으로 속속 흩어졌다. 저녁 8시 '라이브 클럽데이'에 참가한 재즈클럽 '에반스'를 비롯 'FF', '에반스라운지', '프리즘홀' 등 10여곳의 클럽에서 공연이 시작됐다.

라이브 클럽데이인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 클럽 벨로주에서 밴드 잠비니이가 공연을 하고 있다. 2015.4.26/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라이브 클럽데이인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 클럽 벨로주에서 밴드 잠비니이가 공연을 하고 있다. 2015.4.26/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저녁 8시 클럽 벨로주(Veloso). 그룹 잠비나이의 멤버 이일우(기타·피리·태평소·생황), 김보미(해금·트라이앵글·실로폰), 심은용(거문고)과 객원 옥지훈(베이스), 류명훈(드럼)이 무대에 올랐다. 다들 평범함 복장으로 회사에서 퇴근해 지인들과 맥주 한 잔 마시러 홍대를 찾아온 직장인처럼 보였으나 국악과 헤비메탈을 접목시킨 강렬한 음악을 들려줬다.

고요함 속에 애잔함을 드러내는 피리와 거문고의 독주와 드럼과 해금이 폭발하는 격렬한 협주는 한 순간도 긴장을 놓칠 수 없게 만들었다. 눈을 감고 음악에 집중하자 신기한 환청이 들렸다. 노래를 부르는 보컬이 없음에도 부모을 잃어버린 어린아이 혹은 애인에게 버림받은 젊은 여자의 넋두리가 들렸다. 연달아 연주된 3곡이 끝날 때마다 밖에서 대기하던 관객을 입장시켜 클럽은 사람들로 꽉 채워졌다.
리더 이일우는 공연 도중 인삿말에서 "클럽데이라면 춤추며 부비부비하는 날이라 다들 생각했다. 부활한 클럽데이는 라이브로 음악을 연주하고 감상하는 날로 태어났다"고 말했다. 공연 후 김보미는 "많은 관객들 앞에서 오늘 너무 재밌게 연주했다. 앞으로도 더 많은 분들을 라이브 클럽데이에서 만났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라이브 클럽데이인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KT&G에서 힙합 듀오 가리온이 공연을 하고 있다.. 2015.4.26/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라이브 클럽데이인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KT&G에서 힙합 듀오 가리온이 공연을 하고 있다.. 2015.4.26/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밤 9시 KT&G 상상마당. 듀오 'MC 메타'(본명 이재현)와 '나찰'(본명 정현일)로 구성된 힙합그룹 가리온이 등장했다.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이끄는 대표적 그룹인 가리온은 인기와 실력을 갖췄음에도 힙합정신을 지키기 위해 주차장 알바 등 궁핍한 생활을 하며 메이저의 구애를 그동안 거부해왔다. 나찰은 "외국인 관광객도 홍대를 많이 찾는데 우리(뮤지션)는 와도 갈 곳이 없다"며 힙합전사다운 인삿말을 던졌고 MC 메타는 "나찰이 원래 좀 쎄다"며 웃으면서 양해를 구했다. 가리온이 힙합을 들려주자 팬들은 열광하며 두 팔을 들고 스탠딩으로 그루브를 즐겼다.

밤 10시5분. 다른 클럽으로 옮기는 도중에 공연을 마친 비틀즈 트리뷰트 밴드 '타틀즈'와 길에서 마주쳤다. 각각의 밴드에서 활동하던 전 레논(보컬·기타), 조 카트니(보컬·베이스), 조지 중엽슨(기타), 링고 영수타(드럼)가 2010년 클럽 打(타)에 모여 결성했고 비틀즈에게 헌정하는 의미로 그들의 음악만을 연주하는 트리뷰트 밴드이다. 타틀즈의 무대의상은 공연도중에 흘린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조 카트니는 "원래 홍대 라이브씬이 지금보다 훨씬 더 융성했다. 홍대가 인디밴드로 유명해지자 대자본이 들어왔고 상승한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뮤지션들이 홍대 바깥으로 밀려나는 과정에서 명맥이 끊겼다"고 라이브 클럽데이의 배경을 설명하며 "이렇게 다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니까 기분이 좋다. 특히 올해는 더 열심히 연주해서 방한하는 폴 메카트니를 보러 가겠다"고 대답했다.

라이브 클럽데이인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클럽에서 관객들이 공연에 열광하고 있다. 라이브 클럽데이에는 티켓 한 장 구매로 홍대 일대 클럽을 드나들며 밴드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2015.4.26/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라이브 클럽데이인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클럽에서 관객들이 공연에 열광하고 있다. 라이브 클럽데이에는 티켓 한 장 구매로 홍대 일대 클럽을 드나들며 밴드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2015.4.26/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밤 10시10분. 봄바람이 쌀쌀했지만 라이브 클럽데이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클럽 코고스2 출입구에는 네미시스 공연의 입장순서를 기다리는 여성관객이 유난히 많았다. 클래식 컬 팝 록을 추구하는 네미시스(Nemesis)는 노승호(보컬), 하세빈(기타), 전귀승(기타), 정의석(드럼), 최성우(베이스) 등으로 이뤄진 5인조 그룹이다. 강렬하고 무게감 있게 연주하다가도 때론 밝고 가벼운 음악이 교차됐다. 여성관객들이 스마트폰을 머리 위로 올려 네미시스의 실황을 녹화했다. 그들을 뒤로 하고 고고스2를 재빨리 나와야했다.

'야마가타 트윅스터'가 공연하는 클럽 프리버드와 '로다운30'의 프리즘홀을 번갈아 찾았다. '야마가타 트윅스터'(Yamagata Tweakster)는 하드코어한 무대 퍼포먼스와 사회적 목소리로 유명하며 이날 공연도 명불허전이었다. '돈만 아는 저질'과 '딱 좋은 나이~ 딱 좋은 몸인데~'등을 연주했다. '로다운30'은 윤병주(보컬, 기타), 김락건(베이스), 김태현(드럼)으로 구성된 3인조 밴드다. 관객들이 많아서 계단에서 '너무 긴 여행'과 '노을' 등의 연주를 들어야했다.

라이브 클럽데이인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 클럽 레진코믹스에서 밴드 크라잉넛이 공연을 하고 있다. 2015.4.26/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라이브 클럽데이인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 클럽 레진코믹스에서 밴드 크라잉넛이 공연을 하고 있다. 2015.4.26/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밤 10시50분. 뒤늦게 '크라잉넛'이 연주하는 레진코믹스브이홀을 찾았으나 공연을 놓쳤다. 라이브 클럽데이의 단점이라면 좋아하는 밴드가 동시간대에 공연해서 듣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레진코믹스 브이홀에서는 붕가붕가레코드의 간판스타인 '술탄 오브 더 디스코'가 공연하는 시각에 클럽 벨로주에서는 해외에서 주목받는 국악록밴드 '잠비나이'의 공연이 펼쳐진다.

밤 11시20분. 클럽에서 나오자 홍대 거리에서는 지인들끼리 실랑이를 벌이는 광경을 쉽게 목격했다. 다른 공연도 끝까지 보자는 의견과 지하철 끊기기 전에 돌아가자는 의견이 부딪혔다. 다른 클럽으로 움직이는 사람들과 귀가하는 사람들 그리고 목을 축이겠다며 술집으로 들어가는 무리들이 뒤섞인 홍대입구역 일대는 불타는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시간대를 넘어갔다.

오전 1시. 우리 일행은 40대라는 체력의 한계와 청춘을 초과한 이물질을 불편해하는 시선에 지쳐서 클럽이 아닌 근처에서 이야기 자리를 마련했다. 뮤지션이자 '홍우주 협동조합' 정문식 이사장은 "홍대음악의 산실인 클럽들이 연대해서 음악씬을 활성화하려는 이번 행사는 환영할 일"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출연진과 클럽의 구성에서 보완할 점을 지적했다. 그는 "스타급 뮤지션 위주의 홍보는 홍대 인디음악의 자생력과 잠재력을 살리지 못하는 방식"이라며 신진 밴드 발굴과 참여 클럽이 더 늘어나야 "홍대 인디음악을 대표하는 행사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상업화된 홍대 입구는 여전히 젊음을 발산하는 대표적 공간이며 젊은 세대에게 친숙한 '크라잉넛', '장기하와 얼굴들' 등의 스타급 인디 밴드가 '라이브 클럽데이'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인 에디 쿤래드(40, Eddie Conrad)는 한국의 인디밴드와 재즈밴드는 이미 세계적 수준이며 라이브 클럽데이가 기획력을 좀더 발휘해 뮤지션과 관객을 묶는 대표적 축제로 자리를 잡는다면 "일본의 신주쿠와 록본기처럼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공간으로 성장할 것"이라 말했다.

오전 5시20분 홍대입구역. 첫 지하철이 출입문을 열자 밤을 새운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다들 지친 모습이었으나 흥분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아직도 인디밴드의 리듬을 따라하며 고개짓으로 박자를 맞추는 사내들도 있었고 팔목에 부착한 노란색 라이브 클럽데이 입장권도 떼어내지 못한 채로 친구에게 머리를 기대며 쪽잠을 청하는 여자도 있었다. 어떤 남녀는 낯설음 탓에 과장된 존댓말로 얘기하면서도 가끔식 서로에게 머리를 다정하게 맞대며 지하철의 출발을 기다렸다. 다음 달 홍대 라이브 클럽데이에서도 그들을 다시 만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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