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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저녁 사가고 투어 가이드까지..고달픈 제약사 영업사원들

허니버터칩까지..리베이트 근절에 제약사 의사마케팅 노동형 감성방식으로..
실적 나쁘면 가차없이 인사조치.."좋은 대학나와서 이게.." 자괴감 커져

(서울=뉴스1) 이영성 기자 | 2015-04-02 17:20 송고
뉴스1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뉴스1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김OO씨, 저 영업사원 좀 불쌍하지?”
“근데 언제 저녁을 사왔데?”

한 대학병원에서 모 제약사 영업사원이 교수를 포함한 레지던트, 간호사 등 스텝들을 위한 저녁식사를 사오자 간호사들끼리 전한 귓속말이다. 이날 스텝들 중 한 명이 수술방에 들어가기 전 무심결 던진 '배고프다'는 말을 영업사원은 잊지 않고 수술 끝나는 시간에 맞춰 패밀리레스토랑용 저녁 식사를 포장해왔다. 

다른 영업사원은 거래처 대학병원 교수로부터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유럽 의과대학 동료 교수의 서울 구경을 시켜줄 수 있냐는 요청에 선뜻 주말 투어 가이드로 나서기도 했다. 바쁜 교수를 대신해 교수의 자녀들을 자기 차에 태워 휴일에 스키장을 가거나 최근 인기가 많았던 과자 '허니버터칩' 몇 봉지를 어렵게 구해 교수에게 깜짝 선물을 한 영업사원들도 있다.

이는 최근 각 해당병원 직원들로부터 전해들은 의약계에서 통용되는 '감성 마케팅' 사례들이다. '돈 마케팅'이 금지된 요즘, 영업사원들이 가장 많이 택하고 있는 영업방식 중 하나이다. 감성 마케팅은 과거에도 존재했던 영업사원들의 전략이었지만 돈 영업이 없어진 현 상황에서 생존법으로도 일컬어질 만큼 중요해졌다. 이러한 외적인 부담과 함께 회사 내부의 실적 압박이 더해지면서 영업사원들이 받아들이는 심리적 스트레스는 최근 들어 더욱 가중되고 있다는 게 일선 영업현장에서의 목소리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과거의 경우 리베이트는 영업실적과 비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만큼 지금보다 영업이 쉬웠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부가 리베이트 투아웃제 카드를 꺼내들면서 상당수 제약사들이 영업사원들에게 클린영업을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연말 영업실적 평가에서 하위 성적을 낸 영업사원들에게는 가혹한 인사조치가 내려지고 있다. 이중 채찍질이 날아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회사의 실적 압박에 따른 인사조치는 요즘처럼 의사들이 돈을 안 받는 것은 고사하고 만나주지도 않는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영업사원들에겐 어느 때보다 최대 부담거리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국내 모 제약사에서 근무 중인 한 영업사원은 "클린영업으로는 제네릭 위주의 치열한 경쟁시장에서 사실상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감성 마케팅이라도 해야 하는데 영업사원의 원래 역할을 생각하면 한 숨 밖에 안 나온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회사는 영업사원의 실적이 낮으면 가차없이 인사조치를 하기 일쑤다. 회사 입장에 서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요즘같은 상황에선 늘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느낌"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영업실적 낮으면 무차별 인사조치...실적하위 팀장 좌천도



실제 인사조치가 이뤄졌던 국내 중견제약 A사를 보면, 이 회사 영업팀장은 지난해 실적 하위 10%에 속한다는 연말 평가를 받고 팀장직을 빼앗겼던 것으로 나타났다. 영업부 사원도 아닌 팀장이었지만 결국 직책강등 조치를 받았다. 경쟁사와 달리 클린영업을 해오다 실적이 낮아진 탓일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회사측은 종합적인 평가를 토대로 내린 결과라고 전했다.

상위제약 B사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하위 평가를 받는 직원은 별도의 인사조치 없이 스스로 회사를 나가도록 분위기가 종용된다는 게 B사 영업사원의 설명이다. 
 
B사 영업사원은 “좋은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부푼 꿈을 꾸고 입사했지만 요즘처럼 의사들이 영업사원도 잘 안 만나 주는 상황에서 회사는 실적만 내라고 한다. 정규직이지만 커지는 압박 속에서 늘 기분이 붕 떠있다”라고 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어 “실적이 안 좋다고 회사가 직접 권고사직 조치를 내리진 않는다. 대신 스스로 나가게끔 야단을 치는 등 분위기를 만든다. 회사가 권고사직을 통해 퇴직금을 챙겨줘야 하는 부분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C사도 영업사원 실적이 하위 30% 이내에 속할 경우 지방 발령 등의 인사 조치를 한다. C사 관계자는 “절대평가는 아니지만 하위 실적 30%에 들면 여러 종합 평가를 거쳐 영업환경이 더 어려운 곳으로 인사발령이 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더 이상 제약업계에 몸 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성토도 나온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영업환경이 어려워지면서 내외적으로 압박과 부담이 더 커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시대적 흐름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적응하기 쉽지 않아 다른 산업으로 이직을 생각하는 동료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실적이 좋은 영업사원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나름 많은 영업사원들이 열심히 공부한 고스펙자들로 지금껏 열심히 일해왔는데 지금과 같은 과도기에선 회사 차원의 배려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lys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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