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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전설'의 아성, 끝내 넘지 못했지만…차두리에게 차범근이란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2015-04-01 10:10 송고
축구대표팀 차두리가 31일 오후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뉴질랜드의 축구대표팀 평가전 하프타임에 가진 대표팀 은퇴식에서 부친 차범근 해설위원에게 꽃다발을 받고 있다. 2015.3.31/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축구대표팀 차두리가 31일 오후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뉴질랜드의 축구대표팀 평가전 하프타임에 가진 대표팀 은퇴식에서 부친 차범근 해설위원에게 꽃다발을 받고 있다. 2015.3.31/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이놈의 축구를 아무리 잘해도 아버지의 근처에도 못가니까, 조금 밉기도 했다."

지난달 31일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에서 국가대표 은퇴경기를 펼친 차두리(35)는 아버지 차범근(62)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차두리의 말대로 차범근은 축구를 너무나 잘한 선수였다. 한국 축구를 논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전설'과도 같은 존재였다.

차범근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통산 308경기를 뛰며 98골을 기록했고, 1985-86시즌에는 34세의 나이로 시즌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독일 '키커'지가 선정한 1980년대 가장 위대한 선수, 독일 축구역사가 혀보히에서 뽑은 20세기 최고의 아시아 선수 등 그 기록을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업적을 쌓았다.

차두리에게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는 떼놓을 수가 없었다. 차두리가 잘 할때나, 못 할때나 언제나 비교대상은 아버지였다.

차두리는 "축구를 하는 내내 항상 아버지의 명성에 도전했다. 아버지보다 잘 하고 싶었고, 그럴 수 있다고 믿어왔다"면서 "그러나 어느 순간 현실의 벽을 느꼈다. 그때부터는 즐겁게, 행복하게 축구하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차두리에게 차범근은 아버지 그 이상의 존재였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감독이었고, 인생의 선생님이었으며, 때로는 친구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차두리는 "아버지는 저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셨다. 축구선수로서의 롤모델이었고, 경기장 밖에서는 날 가장 잘 알고 어떻게 해야할 지를 지시해줄 수 있는 감독이었다. 항상 제가 힘들 때마다 저를 보듬어주셨고, 제 일과 사생활과 연관된 모든 것을 아버지와 함께한다"고 말했다.

차두리는 이날 하프타임에 있었던 은퇴식에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팬들의 메시지가 담긴 영상을 보면서 한 번, 아버지의 품에 안겨 또 한 번 울었다.

그는 "대표팀 마지막 경기에서 아버지를 보니까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이제 큰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아 홀가분했고,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아성에 도전했는데 실패한 것에 대한 자책감도 들었다"고 말했다.

31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초청 대한민국과 뉴질랜드의 축구국가대표 친선경기에서 차두리가 돌파를 하고 있다. 차두리는 이날 경기를 끝으로 국가대표팀을 은퇴했다. 2015.3.31/뉴스1 © News1 양동욱 기자
31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초청 대한민국과 뉴질랜드의 축구국가대표 친선경기에서 차두리가 돌파를 하고 있다. 차두리는 이날 경기를 끝으로 국가대표팀을 은퇴했다. 2015.3.31/뉴스1 © News1 양동욱 기자

스스로도 말했듯 차두리는 아버지의 아성을 넘지는 못했다. 차범근이 워낙 대단한 선수인 탓도 있었지만, 폭발적인 운동능력에 비해 다소 부족한 세밀함이 선수 경력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정작 차두리는 이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며칠 전에도 댓글을 봤는데, '신체능력은 아버지인데, 발은 어머니를 닮았다'고 하더라. 그러면 안 되는데 왠지 공감이 됐다"면서 웃어보였다.

그는 "나는 기술이 뛰어난 선수가 아닌 건 확실하다. 하지만 다른 데 장점이 있는 선수"라면서 "유럽에서는 한 가지 재능이 있으면 그것을 극대화 시켜서 팀에 맞게 발전을 시킨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선수가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사실 완벽한 선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구)자철이나 (남)태희, (기)성용이가 공 차는 것을 보면 깜짝 놀란다. 축구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저들보다 잘 하는 게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서 "그게 팀에 보탬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잘 살려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차두리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120% 살리며 대표팀에 공헌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10 남아공 월드컵, 세 번의 아시안컵 국가대표로 뛰며 언제나 팀의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난 1월 호주 아시안컵에서의 '마지막 불꽃'은 차두리의 국가대표 경기 중에서도 '하이라이트'에 꼽힐 만했다. 차두리는 주전은 아니었지만 경기에 나설 때마다 자신의 기량을 맘껏 뽐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는 특유의 스피드를 발휘해 손흥민에게 두 개의 '골 배달'을 하기도 했다.

차두리는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배운 경기였다. 처음에 대표팀에 소집 됐을 때 선수들에게 '개인의 욕심을 버리고 팀을 위해 희생하자'고 했는데 그 말을 지킨 것 같아 기뻤고,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어 기뻤다"고 설명했다.

차두리가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비록 아버지의 전설을 넘지는 못했지만, 차두리는 또 다른 '전설'이 돼 한국 축구사에 이름을 새겼다.

축구대표팀 차두리가 31일 오후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뉴질랜드의 평가전 종료 후 그라운드를 돌며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15.3.31/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축구대표팀 차두리가 31일 오후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뉴질랜드의 평가전 종료 후 그라운드를 돌며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15.3.31/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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