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이창호의 야구, 야구인]'개막전의 사나이' 장호연을 기억해야 할 것들

(서울=뉴스1스포츠) 이창호 기자 | 2015-03-27 08:12 송고 | 2015-03-27 11:25 최종수정

2015 KBO 리그가 28일 부산 사직구장 등 전국 5개 구장에서 개막한다. 사상 첫 10구단 체제로 열리는 개막전의 열기는 어느 해보다 뜨거울 것이 분명하다.

10구단은 26일 한화를 마지막으로 개막전 선발 투수를 모두 예고했다. 외국인 투수가 9명이고, 토종 투수는 KIA 양현종이 유일하다. 한국 프로야구의 현실이다.

KIA 양현종이 28일 열리는 2015 시즌 개막전에 유일하게 토종 에이스로서 등판한다. 외국인 투수 9명과 자존심을 건 대결을 펼쳐야 한다.  © News1DB
KIA 양현종이 28일 열리는 2015 시즌 개막전에 유일하게 토종 에이스로서 등판한다. 외국인 투수 9명과 자존심을 건 대결을 펼쳐야 한다.  © News1DB


▲ 26년 전인 1988년 4월2일, 부산 사직구장.

화창한 봄날 주말을 맞아 부산의 야구 팬들이 이른 시간부터 삼삼오오 야구장에 모여 들었다. 햇살은 따가웠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선수들과 팬들이 하나가 되는 날이었다. 가족 단위 관중들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홈 팀 롯데와 원정 팀 OB가 시즌 개막전에서 맞붙었다. 27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치않은 것은 원정 팀은 3루, 홈 팀은 1루 더그아웃을 쓴다는 것이다. 이날도 롯데 선수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1루 더그아웃 바로 위와 옆 그물망 앞부터 좌석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시나브로 내외야의 빈자리가 채워지더니 전광판 시계는 오후 2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롯데 개막전 선발은 최동원의 그늘에 가려 황제가 될 수 없었던 탓에 ‘고독한 황태자’란 별명으로 불리던 윤학길이었다. MBC 청룡의 사령탑을 역임한 어우홍 감독이 고향 팀 롯데의 지휘자로 돌아와 데뷔전을 갖는 날이었다.

전광판 좌우에 있는 출전선수명단을 알려주는 곳에 노란 불이 켜졌다. 선공에 나서는 김성근 OB 감독은 선발 투수로 ‘능글능글하고 별 말이 없어 속을 모르겠다’는 ‘짱꼴라’ 장호연을 내세웠다. 김 감독은 장호연을 충암고 때도 지도했다.

김 감독의 머리 속에서 일찌감치 장호연이 신인이었던 1983년 4월2일 MBC와의 개막전에서 하기룡을 상대로 2만9564명의 서울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완봉승을 올렸던 기억까지 참고한 선택이었다.

OB는 1번 지명타자 박노준, 2번 2루수 김광수, 3번 1루수 신경식, 4번 좌익수 양세종, 5번 중견수 박종훈, 7번 3루수 구천서, 8번 유격수 유지훤, 9번 포수 김경문을 스타팅 멤버로 내세웠다.

이에 맞서는 어우홍 롯데 감독은 1번 지명타자 홍문종, 2번 2루수 박영태, 3번 3루수 한영준, 4번 좌익수 김용철, 5번 1루수 김민호, 6번 우익수 유두열, 7번 유격수 정영기, 8번 포수 김용운, 9번 중견수 김재상으로 맞섰다.

어느새 사직구장에는 2만여명의 팬들로 가득 찼다. 7회 이후 공식 집계한 총 관중수는 2만7334명이었다.

´개막전의 사나이´로 이름을 남긴 OB 투수 장호연 © News1DB
´개막전의 사나이´로 이름을 남긴 OB 투수 장호연 © News1DB


오후 2시, 플레이볼이 선언되자 1루 관중석을 중심으로 윤학길과 롯데를 외치는 응원의 함성이 점점 커져 갔다. 낮 경기인 탓에 집중력은 다소 떨어졌지만 ‘야구의 계절’이 돌아왔음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OB가 1회초 1점을 먼저 뽑았다. 장호연은 기분 좋게 1회말 수비를 위해 마운드에 나갔다.

1번 홍문종부터 차근차근 승부했다. 장호연은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아니다. 빠른 공이라고 해야 시속 130km 후반 정도를 찍는다.  그러나 ‘팔색 변화구’를 던진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다양한 공과 완급 투구로 타자들과 상대하는 스타일이다.

이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정면 승부보다는 살살, 요리조리 롯데 타자들을 꼬드기면서 애를 먹였다. 장호연의 투구 패턴에 말려들면 누구나, 어느 팀이나 무척 애를 먹는다. 반면 초반에 기를 꺾어 놓으면 쉽게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러나 롯데는 장호연의 투구에 꼼짝 못하고 말려들었다. ‘어어’ 하다가 5회를 넘겼고, ‘이게 아니라’며 덤벼들다가 9회말 공격까지 무안타 무실점으로 끝냈다.

루상에 나가 본 선수는 3명이었다. 홍문종, 박영태, 김민호가 볼넷 2개와 몸에 맞는 공 1개로 나갔을 뿐이다. 전광판 롯데의 이닝 스코어 칸에는 계속 0이 찍히는 사이 OB는 1회에 이어 4회에 1점, 7회에 2점을 보태 4-0으로 승리했다.

‘짱꼴라’ 장호연은 99개의 공을 던지면서 단 1개의 ‘K'도 그리지 않고 사상 첫 개막전 노히트노런이란 대기록을 부산 사직구장에서 완성했다. 그 후 지난해까지 26년 동안 개막전에서 노히트노런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단 1명도 없다.

장호연은 1983년 신인 최초로 개막전 완봉승을 올린데 이어 1988년 개막전 노히트노런, 1990년 LG와의 개막전 완투승 등을 기록하면서 ‘개막전의 사나이’라는 또 다른 별명을 얻었다. 개막전 선발로만 1985년부터 1990년까지 6년 연속 등판하는 등 총 9경기에 나가 6승2패를 남겨 명실상부한 개막전의 사나이로 기억되고 있다.

장호연의 개막전 관련 기록은 아직도 유효하다. 정민태와 송진우가 6년 연속 개막전 선발 등판만 타이 기록을 세웠을 뿐 나머지 기록들은 여전히 무너뜨리지 못하고 있다.

처음은 늘 부담스럽다. 해마다 열리는 시즌 개막전이지만 어떤 투수를 예고할지, 어떤 투수가 첫 단추를 잘 꿸지 팬들은 물론 모든 관계자들이 시선이 쏠린다.

개막전 선발은 곧 에이스의 다른 이름이다. 1선발로서 시즌 내내 제 몫을 다 해달라는 당부이자 무거운 책임감을 안겨주는 것이다.

장호연은 이런 부담감을 즐겼을까. 장호연의 1995년 은퇴 이후 순천 효천고 감독, 삼성과 롯데 코치, 신일고 감독을 역임한 뒤 2004년 이후 소식은 알려진 것이 아주 드물다. 선수 때의 모습에서 크게 빗겨가지 않는다. 불미스런 일로 떠난 이유도 있지만 자신의 일상이 대외적으로 알려지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웠다.

때때로 OB 구단에서 ‘선수들의 정신과 근육의 피로를 빨리 회복시키는데 효과가 있다’며 클럽하우스에 설치한 뒤 권장했던 ‘정종 목욕’을 가장 즐긴 선수였다는 이야기와 스토브리그가 오면 스키를 즐기는 여행을 위해 알프스에 다녀오곤 했다는 개인적인 이야기 정도만 알려줬을 뿐이다.

장호연은 사상 처음이자 영원히 깨질 수 없을 것 같은 개막전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1988년, 시즌 내내 만족스런 피칭을 이어가지 못했다. 결국 8승12패 1세이브를 남기는데 그쳤다.

메인 공식 개막전이 열리는 대구구장에선 삼성 피가로와 SK 밴와트, 잠실구장에선 두산 마야와 NC 찰리, 목동구장에선 넥센 밴헤켄과 한화 탈보트, 광주 챔피언스 필드에선 KIA 양현종과 LG 소사, 부산 사직구장에선 롯데 레일리와 kt 어윈이 맞붙는다.

‘개막전의 사나이’ 장호연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10명의 개막전 선발 투수들이 한결같이 만족스런 피칭으로 팬들을 즐겁게 해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뉴스1스포츠 국장>


chang@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