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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불광천에서 에이허브 선장을 만나다

제11회 세계문학상 대상 김근우 소설가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5-03-11 14:59 송고 | 2015-03-17 00:26 최종수정
김근우 작가가 10일 오후 세계문학상 대상작
김근우 작가가 10일 오후 세계문학상 대상작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의 배경이 된 서울 은평구 불광천을 걷고 있다. 2015.3.10/뉴스1 2015.03.10/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하필이면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 날이다. 작품의 배경인 은평구의 불광천을 사진 배경으로 담기 위해 만난 장소도 개천가다. 금속성 햇살이 바늘처럼 내리꽂히고 오리 대신 비둘기가 날아내리는 황량한 불광천에서 사진기자의 요청에 따라 김근우(35) 작가는 목발을 짚고 산책로를 여러번 오르내렸다.  추위도, 바람도 못느끼는 듯 굳은 얼굴에 목발을 짚은 그의 모습은 흰 고래에게 한 다리를 잃은 에이허브 선장처럼 보였다. 다만 비바람에 얼굴이 강퍅해진 선장이 아닌 얼굴이 통통한 소설가로, 흰 고래를 품은 검푸른 대서양은 가뭄으로 물이 바닥에서 찰랑거리는 불광천으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올해 제11회 세계문학상 대상작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쓴 김근우 작가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하반신 신경계 이상으로 9번이나 큰 수술을 받았다. 그 후 중2때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로 중학교는 졸업했지만 그 이후의 학력은 전무다.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나무옆의자 출간)는 빈털터리 장르소설 작가, 주식하다 완전히 망한 여자가 가족같이 여기던 고양이 호순이를 잡아먹은 범인(犯人), 아니 범압(犯鴨)인 불광천의 오리의 사진을 찍어 오라는 한 노인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빚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여기에 돈을 좋아하는 노인의 손자인 꼬마가 합류하고 이들은 노인이 제시한 성공 보수1000만원을 받기 위해 머리를 짜낸다. 

표정이 너무 굳어보여 작가에게 싱거운 질문부터 던졌다. 혹시 별명은 없나? 호빵이나 거북이? 김근우 작가는 슬그머니 웃으며 "없다"고 말했다. 호빵이 귀퉁이를 살짝 벌려 앙꼬를 수줍게 보여주는 듯한 느낌의 웃음이었다. 

주인공 남자는 본격문학에 진입하지 못하고 홀대받고, 주인공 여자는 서울의 변두리인 은평구를 벗어나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은평구의 반지하 셋방으로 돌아온 인물이다. 이 둘의 열패감과 '변두리 정서'는 이 작품을 관통하는 기본 서정인 것으로 보인다. 작가에게 '변두리 정서'를 가진 것이 맞는지, 왜 갖게 됐는지 물었다.

"7살때부터 여기 은평구에서 살게 됐습니다. 그 전에는 어려서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인천 부평에, 서울 고척동에 살았습니다." 
모두 서울의 변두리거나 서울에서 밀려난(물론 토박이도 있지만) 사람들이 정착한 곳이다.

"소설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장르소설을 좋아해서 시작한 것이지만 제가 작품을 쓰기 시작할 때(90년대 PC통신 시절)만 해도 '판타지 소설' 등은 개념도 없어서 출판사가 '판타지와 매직을 합친 판타직 소설이라고 부르자'고 우기기도 했습니다. 당시 장르문학은 일부 소수만이 즐겼던 문학이라 '변두리 정서'와도 일맥상통하죠." 

1996년 판타지 소설 '바람의 마도사'를 PC통신 게시판에 연재하고 책으로 펴내 10만권을 판매했지만 인세를 제대로 챙겨 받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독자들의 호평을 받으며 김근우 작가는 판타지 소설 붐을 이끈 사람으로 기억됐다. 

"그러다가 3년전부터 문학공모전에 응모하기 시작했죠. 대여섯 번 떨어져서 나중에는 세지도 않았습니다. 최종심까지 간 것도 없고 다 예심에서 탈락했죠." 

하지만 이번 대상으로 큰 상금을 받았는데? 상금을 어디에 쓸 것인지를 물었다.

"7000만원 받았지만 대부분 빚을 갚아야 합니다." 어떤 종류의 빚인가의 질문에, 작가는 "병원비와 생활비죠. 책이 잘 팔리는 작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여기저기 손을 벌리다 보니 빚이 많이 늘었습니다"라고 답했다.

돈이 잘 벌리는 것은 차라리 장르문학 쪽이다. 본격문학 작가들도 책이 잘 안팔려 다른 길을 모색중이고 일부는 등단 작가인 것을 숨기고 네이버 웹소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는데?

"장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소신대로 쓰는 것이 내 바람입니다. '장르소설' 작가가 살림이 편 것은 최근의 일이죠. 웹소설 연재해서 몇 억을 버는 작가들이 있다 해도 대다수의 장르소설 작가들은 여전히 먹고 살기 어렵습니다. 도서대여점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시장이 쪼그라들었고 전자책 형태로 만들면 스캔본이 인터넷에 올라오고…이를 올린 사람을 찾아 고소하면 대부분 애들인데 자살하겠다느니 하며 협박해 처벌도 못하고...저같은 경우는 생활도 불가능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심사위원 박범신 선생은 진짜와 가짜가 모호한 세상에서 진짜를 찾아내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라고 작품을 평했던데 사실상 이 작품 자체는 시종일관 유쾌하고 어찌 보면 만화적인 인물과 사건들을 보여준다. 진짜와 가짜 문제는 어떻게 작품속에 들어가 있나?

"작품 중에 모비딕을 인용하면서 에이허브 선장이 "진짜를 찾으려면 가짜를 때려부숴야 한다"고 외치는 장면이 있어요. "진짜를 찾으려면 마분지같은 가짜 세상을 깨야 한다, 고래는 운명의 심부름꾼에 불과하다, 자신은 고래에 한방 먹이고 싶다"고. 노인은 가족같은 고양이 호순이를 잡아먹은 것이 표면적으로는 오리지만 그 뒤에 무엇인가 진짜가 있다고 믿죠. 운명이 왜 이러는지,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 한방 먹이고 싶다는 겁니다.

점점 다른 인물들도 노인의 분노에 공감하게 됩니다. 그들도 무엇에 휘둘리며 살아왔는지 알 수 없고 어떻게 여기로 흘러들었는지 알수 없다는 점에서 운명에 딴지를 걸고 싶은 거죠. 이 작품이 만화적인 느낌을 준다면 그 이유는 모비딕의 오마주이긴 하지만 약간 성격이 다른 패러디이기 때문일 겁니다. 모비딕은 운명에 짓눌리는 느낌을 아주 잘 표현했지만 저는 작품에서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고 대신 가볍게 읽히도록 틀었습니다. 캐릭터가 만화적인 것은 장르소설을 오래 써서 그 영향이 남아있을 겁니다. 클리셰가 정착된 캐릭터가 장르소설엔 흔하니까..."

여러번 수술도 하고 몸이 불편한데 '극단적 고통'을 느낀 적은 없는지?

"신경과 어긋난 뼈, 근육 등을 교정해주는 수술, 고관절이 탈골돼 다시 맞추는 수술 등 여러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견딜수 있는 정도의 고통이었습니다. 다만 어릴 때 수술받고 열이 높았던 적이 있었는데 병원에서 약은 안주고 몸을 얼음주머니로 덮어버리곤 했는데 수술보다 그게 더 끔찍하게 아팠습니다."

존경하고 닮고 싶은 국내 작가는 누구인가 물었다. "이승우 선생님입니다. 다루는 주제가 평소 제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문장도 의도적으로 반복되는 특유의 문체가 있는데 이렇게도 쓰는구나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요즘 생각하는 것은? "책이 잘 팔려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상을 준 세계일보와 책을 낸 나무옆의자에 부끄럽고 죄송할까봐..." 김근우씨는 수줍게 다시 한번 앙꼬 웃음을 보여줬다.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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