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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원 코너] 가난함 위에 지어진 지상낙원 '세부'…휴양지의 두 얼굴

(세부(필리핀)=뉴스1) 이서희 통신원 | 2015-03-06 11:28 송고 | 2015-03-06 14:10 최종수정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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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서 창밖으로 내려 본 세부의 풍경은 반짝이며 아름답다. 검은 바탕 위에 노란 불빛들이 촘촘히 박혀 누가 봐도 장관이다. 승객의 90%를 이루고 있는 관광객들 역시 그러한 장면을 보며 한껏 기대에 부풀어 비행기에서 내린다.
물론 더딘 일처리와 부실한 에어컨 탓에 입국심사대부터 땀이 주르륵 흐르지만, 그것마저 동남아 특유의 통과의례라 여기며 이국적이고 이색적인 느낌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공항을 나와 택시를 타고 거리로 나오는 순간,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몇 분 전까지 하늘에서 보았던 아름답던 불빛들은 사라지고, 갑자기 한국의 60년대나 있을법한 볼품없는 거리가 펼쳐지는 것이다.

◇ 휴양지의 두 얼굴

세부는 최고의 바다 휴양지라는 명색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암울한 요소들이 너무 많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쓰레기들, 하수시설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지하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퀴퀴한 냄새들, 웃통을 벗어젖힌 채 눈이 풀려있는 사람들과 길바닥에 대자로 뻗어 잠을 자는 사람들. 무엇보다 허름한 양철지붕에 나무 판자대기를 얼키설키 이어 만든 집들은 마치 거대한 난민 수용소를 연상케 한다.
당연히 코코넛 야자수와 초록바다를 떠올리며 여행 온 관광객들은 이러한 살풍경에 아연실색한다. 신혼 여행지를 잘못 고른 건 아닐까. 불안해하는 사이, 순간 눈앞에 휘황한 리조트며 호텔들이 신기루처럼 나타난다. 아름다운 분수가 흐리고, 환한 불빛과 샹들리에가 반짝이는 곳. 술과 열대과일이 있고, 수영장과 바닷가가 멋지게 어우러진 이 지상낙원은 오직 허락된 이들만 들어갈 수 있다.

◇ 가난함 위에 지어진 지상낙원

비슷한 풍경은 사실 한국에도 있다. 바로 강남 호화주거 단지옆으로 뻗어있는 판자촌이다. 서로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들이 대응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랄까. 한국에서는 끊임없이 그러한 모습을 상기하며 이유와 모순점을 찾고 해결하고자 하는 게 사회분위기라면, 이곳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모습에 반기를 품거나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 모든 것은 숨을 쉬는 일만큼이나 당연하고 익숙한 풍경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러는 불쌍한 눈빛으로, 더러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묘한 우월감을 느끼며 크게 인심 쓰듯 1달러라는 어마어마한 팁을 주며 생색을 내기도 한다.

얼마 전 이곳을 다녀온 한 지인에게 필리핀에 대한 소감을 묻자, 그는 리조트 안에서 가공된 평화만을 느끼다 돌아왔다고 했다. 자동차에 폭발물을 검사하고, 소총을 든 무장 경비원들이 있는 걸 보며 리조트 안에서만 평화가 존재하고 있구나. 밖에 보인 저개발의 흔적들을 마주할 기회가 적었지만 마음이 아주 편치만은 않았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밖에 보이는 어린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 일부러 남은 음식을 싸서 아이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는데 천사같이 행복해하는 모습에 왠지 눈물이 났다고 했다.

◇ 손님들의 ‘갑’질

반면 이곳의 생활수준을 본 후, 묘한 우월감을 느끼며 소위 ‘갑’ 질을 해대는 한국인들은 있다. 5성급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한 안내 직원 말에 따르면 얼마 전, 한 손님이 마사지를 받고 일어난 사이 지갑에 돈이 없어졌다며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녀는 무슨 확신이 들었는지 자신을 담당한 관리사를 지목했고, 관리사는 아니라며 이에 반박하는 사태가 생겼다. 다행히 돈을 가져간 건 관광객 일원 중 한명이었고, 오해한 한국인이 급히 사과하는 걸로 일단락 됐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의심받아야 했던 마음의 상흔은 오랜 잔상으로 남을 것 같다.

이런 일도 있다고 했다. 식사하고 난 후 지갑이 없어졌는데, 결국 그가 머물었던 호텔 레스토랑 테이블에서 발견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지갑을 보관하고 있던 레스토랑 직원은 고맙다는 인사보다 지갑 안에 없어진 게 없냐는 말을 먼저 들어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앞에서 돈을 세어 보이기까지 했으니 이만하면 갑질 중의 갑질 아닐까.

◇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판자촌은 대부분은 불법으로 지어진 가건물들이라 주인이 철거요청을 하는 즉시 철거해야 하고, 그렇다면 주민들은 오갈 데 없는 홈리스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게다가 지주들은 현재 리조트를 더 건설할 계획중이어서 많은 주민들은 불안한 나날 속에 하루하루를 생활하고 있다. 이렇게 원주민으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더러는 외국인에게 더 큰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주민들이지만 그들의 표정은 언제나 밝다. 현지에서 오랫동안 자원봉사자로 일해 온 한 선교사는 오히려 그것이 더 가슴 아프다고 했다. 또한 그가 현재 예배를 드리는 지역 중 한 곳 역시 이러한 불행을 피해가지 못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저개발은 본래적인 것이다. 하지만 개발을 할지 말지 그 여부에 대해서는 외부에서가 아닌 엄연히 그 국민들 내부에서 결정해야 하고, 수혜자도 내부에서의 충족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이렇게 지속적인 관광위주의 산업만 육성하다보면 그야말로 나라 전체가 다른 나라를 위한 편의만을 제공하는 것과 진배없다.  

현재 이곳의 고급 리조트들에 속하는 대부분이 중국인들의 자본이며, 더러는 한국인도 끼어있다. 해마다 이런 리조트나 상가 건물들이 하나, 둘 판자촌을 비집고 들어선다. 증축을 하고 혹은 새로운 단지를 형성하며 자신들의 성지를 넓혀간다. 그러나 주변 판잣집들이 갑자기 콘크리트 건물로 승격되거나, 버젓한 주택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마 5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이곳의 판자촌은 그냥 판자촌일 것이다.


kirimi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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