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우리마당 사건' 트라우마?…김기종, 극단 행동들

[美대사 테러] 일본대사 테러·청와대 앞 분신 등…한·미 전쟁연습 규탄 활동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2015-03-05 18:49 송고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주최 조찬 강연을 준비 중이던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씨가 범행 직후 참석자들에 의해 제압되고 있다. (문화일보 제공) 2015.3.5/뉴스1 © News1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주최 조찬 강연을 준비 중이던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 김기종씨가 범행 직후 참석자들에 의해 제압되고 있다. (문화일보 제공) 2015.3.5/뉴스1 © News1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게 5일 흉기를 휘두른 현행범 김기종(55)씨의 인생역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씨는 문화운동단체인 '우리마당'의 대표간사로 과거 1980년대 '우리마당 사건'으로 트라우마가 생겨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분신을 시도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주한 일본대사를 향해 시멘트 조각을 던지는 등의 극단적인 행동을 하고 한·미 전쟁연습을 규탄하며 1인 시위 벌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 '우리마당 사건' 트라우마 때문?…"극단적 민족주의자"

    

김씨는 2007년 10월19일 청와대 앞에서 우리마당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분신을 시도해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

    

김씨가 진상규명을 요구한 사건은 우리마당이 남북공동행사인 '통일문화큰잔치'를 준비하던 1988년 8월17일 새벽 4시쯤 서대문구 창천동 소재 우리마당 사무실에서 벌어진 괴사건이다.

    

괴한 4명이 출입문 자물쇠를 뜯고 침입해 바닥에서 잠을 자고 있던 대학생 1명을 각목으로 때려 실신시킨 뒤 여대생을 성폭행하고 달아났다.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 사건의 진상조사와 법률지원을 자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일각에서는 정보사령부에 의해 범행이 이뤄졌다는 주장까지 나왔지만 사건의 진상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김씨가 노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인 2007년 분신을 시도했던 것도 노 전 대통령으로 인해 진실규명은 커녕 오히려 사실이 은폐됐다는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김씨는 결국 우리마당 사건 이후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의 대학교 후배인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개인적으로 돌출적으로 행동한 양상이 있어서 주변 분들이 개인에 대한 걱정을 해왔다"며 "분신하고도 오랫동안 병원에서 건강상 문제가 없는지 걱정했는데 갑자기 오늘 이런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어 "80학번인 김씨가 학교를 다닐 때는 NL(민족해방·자주파), PD(민중민주·평등파) 이런 것 자체가 없었다"며 "내가 볼 때는 극단적 민족주의자 같다"고 덧붙였다.

    

◇ 일본대사 향해 시멘트 조각 던지고 박원순 서울시장에 질문공세도

    

이후 김씨는 각종 극단적인 행동들로 주목 받았다.

    

2010년 7월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일 공동번영'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한 시게이에 도시노리 전임 주한일본대사를 향해 가로·세로 6~7㎝ 크기의 시멘트 조각을 던진 혐의(외국사절 폭행 등)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김씨는 시게이에 대사가 강연을 마친 후 방청객으로부터 질문을 받기 시작하자 "내가 보낸 편지는 받았냐, 왜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하느냐"고 질문했다.

    

하지만 시게이에 대사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자 유인물을 전달하러 갑자기 행사장 앞쪽으로 나갔고 진행요원들이 저지하자 결국 시멘트 조각을 던지는 범행을 저질렀다.

    

김씨는 법정에서도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 "시멘트 조각을 던진 행위는 외국사절폭행 혐의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등 주장을 계속 펼쳤다.

    

즉 "일본이 부당한 독도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해 피습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또 "강연이 끝난 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대사의 의견을 묻고 토론을 전개한 것은 강연회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업무방해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해 2월13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대문구 신촌번영회 정기총회를 찾아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 지정'과 관련해 질의응답을 하는 과정에서는 김씨가 질문을 계속하는 바람에 관계자들이 그의 마이크를 뺏으려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

    

◇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한·미 전쟁연습' 규탄 1인 시위

    

우리마당 블로그에 따르면 김씨는 1978년 광주 금호고등학교, 1984년 성균관대 법학과 등을 졸업했다.

    

이후 1995년 숭실대 통일정책대학원에서 '남한사회 통일문화운동의 과제'를 주제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1997~2007년 성공회대 외래교수로 재직했다.

    

그동안 김씨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한·미 전쟁연습을 규탄하는 1인 시위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블로그 소개글에서 '싫어하는 것'(dislikes) 목록에 1905년 '카스라-태프트 조약', '미국·일본X들 때문에 둘로 나뉘어진 38선' 등을 올렸다.

    

'소원 목록'(wish list)에는 '남북이 공동국호로 COREA를 사용, 단일기를 흔들며 아리랑이 울려퍼졌으면, 그렇게 되면 통일이 성큼 다가오겠지'라는 글을 담았다.

    

김씨는 2006년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동료 6명과 함께 본적을 경북 울릉군 독도리 38번지로 옮기고 '독도지킴이'를 만들었다.

    

독도 예술제, 독도 우리말 이름짓기 행사 등을 열며 독도사랑운동을 계속해온 김씨는 지난해 책 '독도와 우리, 그리고 2010년'을 펴내기도 했다.

    

김씨는 2001년 민주평화통일회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됐으며 2002년에는 통일부 통일교육위원으로 활동한 경력도 있다.

    

◇ 리퍼트 대사에 과도 휘둘러 테러…"전쟁 훈련 반대"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42분쯤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1층 세종홀 내에서 리퍼트 대사가 김씨의 공격을 받았다.

    

리퍼트 대사는 김씨가 휘두른 25㎝ 길이의 과도에 오른쪽 얼굴부위, 왼쪽 손목 등에 부상을 입고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안정을 취하고 있다.

    

리퍼트 대사는 이날 오전 7시30분부터 세종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주최 조찬강연회에 참석해 헤드테이블에 앉아 강의를 준비 중이었다.

    

현장에서 붙잡힌 김씨는 경호원 등으로부터 제압 당하는 과정에서 오른쪽 발목에 골절상을 입었고 현재 종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김씨는 "전쟁 훈련 반대"를 외치며 경찰에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에서는 "남북화해 분위기를 막는 군사 훈련에 항의하기 위해 범행을 했다"고 진술했다.




pej86@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