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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속으로]"IMF도 넘겼는데"…'줄폐업 위기' 포천가구단지 가보니

가구 매장 줄줄이 업종전환… "세금폭탄과 수익악화 못 견디겠다"
6만원 아동용옷장 마진 3000원도 안돼…"품질· 가격 믿어달라"

(서울=뉴스1) 양종곤 기자 | 2015-02-27 08:00 송고

포천가구단지는 가구 매장이 문을 닫고 의류 매장이 빠르게 늘고 있다. © News1
포천가구단지는 가구 매장이 문을 닫고 의류 매장이 빠르게 늘고 있다. © News1
지난 25일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에 위치한 포천가구단지. 43번 국도를 경계로 수십여 개 가구 매장이 위치해 있다. 하지만 경기 북부 최대 가구 유통 단지란 수식어가 무색할만큼 가구 매장을 찾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폐업과 도산의 위기라는 그늘이 짙게 내려있었다.

◇ "가구 제조는 분업…한 공장 문 닫으면 피해 번저"
단지에서 가장 큰 가구 유통회사로 꼽히는 전국가구도매창고는 지난해 10월 부도를 내고 회생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 회사는 내달부터 시작되는 채권단과 협의가 잘 마무리되면 회생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구도매창고 관계자는 "단지 내 사람들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며 "회생은 문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구도매창고와 같은 유통회사는 제조공장과 소비자를 이어주는 중요한 판매고리다. 제조공장은 자체적으로 배달할 수 있는 자금과 인력이 부족해 유통회사에 납품한다. 유통회사는 납품받은 제품을 모아 매장으로 넘긴다.

하지만 도매창고 직원들은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2300평 1,2층 매장에는 10여 년전만 해도 제조공장이 납품받은 가구들로 가득했다. 현재는 300평 정도만 납품 가구로 채우고 나머지 공간은 전시장으로 꾸며 직접 판매에 나섰다.
제조공장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단지에는 700여 개 가구공장이 있다. 200여 곳이 사업자등록을 하지 못할만큼 대부분 영세업체다. 공장 내 직원이 10명이 넘는 곳은 드물다.

30년째 단지 내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A씨는 "언제 문을 닫을 지 모르겠다"며 "단지 사람들은 대부분 살려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때 A씨의 회사는 직원이 8명이었지만 월급을 줄 여력이 없어 3명으로 줄였다. 다른 공장은 외국인 근로자까지 채용하고 있다. 이들의 월급은 120만원. 20년 이상 숙련된 한국 근로자 월급도 200만원을 넘지 못하고 있다.

단지는 최근 두 번째 위기를 맞았다. 첫 번째는 1997년 IMF 위기였다. 당시 단지 내 80% 업체가 부도를 냈다. 경기 악화가 주 원인이었지만 가구 생산방식도 한몫했다. 가구 완제품을 만들 수 있는 대규모 공장은 거의 없다. 여러 공장이 부품을 각각 만들어 조립하는 방식이다. 한 공장의 부도가 다른 회사 부도를 낳는 구조인 셈이다. 두 번째 위기는 '세금폭탄'이다.

A씨는 "정부가 2013년 이후 부산, 대구 등에 위치한 10여 곳 유통회사에 강도높은 세무조사를 실시했고 공장에서 거둬들이는 세금 규모를 늘렸다"며 "세금을 내고 나면 수익으로 돌아오는 게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온라인에서 워낙 가구가 저렴하게 판매돼 제품에 부가세를 붙일 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포천가구단지 내 대부분 제조공장은 직원이 10명을 넘지 않는 영세업체다. © News1
포천가구단지 내 대부분 제조공장은 직원이 10명을 넘지 않는 영세업체다. © News1

◇ "직원 1인 3역…가족까지 매장에서 일해"

단지 내 가구 사업자들은 '사장'이란 이름을 반납한지 오래다. 포천가구사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사장과 직원은 1인 3역, 4역을 한다"며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2시까지 자재 준비하고 배달까지 직접 나선다"고 말했다.

가구 매장도 마찬가지다. 매장은 가게를 지키는 직원이나 사장, 배달 직원 등 최소 3명이 필요한데 수익 규모가 줄어 가게세를 내고 나면 인건비를 맞추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단지에는 부인 등 가족이 함께 나와 일하는 곳이 적지 않다.

단지 내 사업자가 수익을 내기 위해 필사적이다.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방식은 일명 '막장 가구' 생산이다. 가구는 A급, B급, C급으로 나뉘는데 가격이 가장 저렴한 C급 가구를 칭하는 은어가 막장 가구다.

도매창고 관계자는 "예를 들어 높이가 2미터 가량되는 아동용 옷장의 A급 가구는 15만원에 납품되는데 가격이 비싸 소비자에게 팔 수 없다"며 "어쩔 수 없이 가격대가 낮은 6만원 대 막장 가구를 만들고 있다"고 털어놨다.

일반적으로 가구의 마진은 거의 없다고 이들은 하소연한다. 제조공장이 6만원짜리 가구에 붙이는 마진은 2000~3000원에 불과하다. 제조공장 업황이 악화됐지만 일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감을 따낼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A씨는 "최근 도급 순위 100위권 내에 든 한 건설회사로부터 가구납품 의뢰가 들어왔다"며 "5개 업체가 뭉쳐서 하려고 했다가 결국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건설사는 대금을 어음으로 주려고 했는데 어음을 받으면 모두 위험질 수 밖에 없다"며 "최근 어려운 동업자들이 많다보니 현금을 받지 않으면 일을 시작하기가 망설여진다"고 덧붙였다.

공장은 온라인 판매 사업자와 거래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은 온라인 판매 사업자를 '떴다방'으로 비유하고 있다. 대량으로 물량을 주문했다가 막판에 가서 소량만 구입하거나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 팔지 못한 물량을 덤핑으로 넘긴 뒤 문을 닫은 공장이 상당수라는 전언이다.

또 단지에서는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의 변형된 판매 방식이 일반화됐다. 브랜드 회사와 계약을 맺고 브랜드를 사다가 제품에 붙이는 것. 합법적인 방식이지만 비브랜드 회사가 자체 브랜드를 키워 성장할 수 없는 구조다. 계속 영세업체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가구업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단지는 총 4개 단지로 나뉘는데 2단지의 가구매장은 대부분 의류매장으로 '간판'을 바꿨다.

A씨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광고와 마케팅을 할 수 있는 한샘, 퍼시스 등 브랜드 가구회사만 남게될 것"이라며 "'가구는 마진을 많이 붙이기 때문에 가격을 깎아야 한다'는 속설은 몇 십년 전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 브랜드 회사 제품을 우리 손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다"라며 "가구 가격과 품질을 믿고 구매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ggm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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