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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누구…대선 패배 극복하고 제1야당 대표로

(서울=뉴스1) 진동영 기자 | 2015-02-08 18:26 송고
문재인 신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2015.2.8/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문재인 신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2015.2.8/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의원이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당 대표로 선출됐다.

지난 2012년 12월 새정치연합의 전신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나서 패배했지만 2년2개월여 만에 당 대표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상 여야를 통틀어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 중 한 명인 문 의원은 이번 당선으로 다음 대권 행보에도 탄력을 받게 됐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던 문 의원은 노 전대통령의 서거 후 정치권과 거리를 뒀다. 그러다 지난 2012년 4·11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 19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3년 만에 당의 수장으로 자리잡게 됐다.

◇양날의 칼 '친노' 수장…노무현과의 인연

문 의원은 친노(친노무현)계의 수장 격이다. 스스로 '친노'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계파적 성격은 부인하고 있다. 당내 최대 계파로 자리잡은 친노는 그에게 무기이자 독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문 의원과 노 전대통령의 인연은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 제22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문 의원은 민주화운동 참여 경력 탓에 판사 임용이 거부되고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 그 때 사시 동기인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소개로 노 전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노 전 대통령과 합동법률사무소를 시작한 문 의원은 본격적인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부산·경남 변호사 모임 대표,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등을 지내고 인권·시국·노동 사건을 맡아 처리하면서 법조계에서 이름을 쌓았다.

인권변호사 활동에 전념한 문 의원에 비해 노 전대통령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 시위를 주도하면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노 전대통령은 1988년 4월 13대 총선에 승리해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지만 문 의원은 그대로 율사로 남았다.

한동안 변호사 생활에 전념하던 문 의원은 2002년 대선에 뛰어든 노 전대통령의 요청을 받고 대선후보 부산 선거대책본부장으로 다시 힘을 보탰다. 치열했던 대선을 결국 승리한 후에는 청와대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지내면서 청와대 핵심 권력으로 떠올랐다.

정치 경험이 비교적 짧은 문 의원은 정적들의 '경험 부족' 공세를 이 당시의 국정 경험으로 맞섰다. 국정운영 중심에서 살아있는 권력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문 후보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반면 청와대 5년을 모두 함께 한 문 의원이 참여정부를 둘러싼 모든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한계도 갖게 됐다.

'왕수석'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엄격한 자기 절제로 특별한 문제 없이 청와대 보좌 업무를 마친 문 의원은 다시 법무법인 부산의 변호사로 돌아갔다. 하지만 2009년 5월 노 전대통령의 투신 사건이 벌어지면서 다시 정치적 격랑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노 전대통령의 상을 책임진 문 의원은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정치권과 거리를 둬왔지만 매 선거 때마다 '역할론'에 시달렸다. 한사코 정계 진출을 마다하던 문 의원에게 야권의 요구는 계속됐고, 결국 문 의원은 2012년 4·11 총선을 통해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대세론'을 형성하면서 당내 대권주자였던 손학규·정세균·김두관 후보 등을 꺾고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까지 나섰다.

문 의원의 정치적 고비마다 상대방이 계속 걸고 넘어진 부분이 바로 문 의원의 '친노 계파'다.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과 이번 전대 등 많은 경쟁 과정에서 계파 논쟁에 말려들었다. 문 의원이 이번 전대 공약으로 '계파 문제 해소'를 선언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가난·투쟁 속 성장기…정직·원칙 중시

문 의원은 1953년 1월24일 경남 거제도의 시골 농가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 작전 때 이곳에 정착한 실향민의 아들이다. 부친의 장사 실패 후 모친의 연탄 배달을 도우며 생계를 꾸려나갔지만 가난을 헤어나지 못했다.

문 의원 스스로 "가능하면 혼자서 해결하는 것, 힘들게 보여도 일단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고 부딪혀 보는 것, 이런 자세가 자립심과 독립심을 키우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가난이 내게 준 선물"이라고 밝힐 정도로 가난을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삼았다.

그는 가난한 가운데서도 부산의 명문 경남중·고와 경희대 법학과를 졸업하며 공부를 계속했다. 그 가운데 책읽기에 몰입하면서 사회의식을 길렀다. '경상도 남자' 다운 성격으로 고등학교 재학 때는 술, 담배를 하는 등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때 별명이 '문제아'였다.

재수 끝에 경희대 법대에 진학한 문 의원은 1972년 유신 반대 운동에 적극 뛰어들었다. 문 의원은 유신 반대 학내시위를 주동한 일로 구속과 제적, 강제징집을 당했다. 겨우 석방이 됐더니 하루 만에 입영통지서가 날아왔다. 문 의원의 강인한 이미지를 보탠 '특전사' 시절이 이때다.

이후 1978년 2월 입대 31개월 만에 제대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곧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아픔을 겪었다. 여기서 느낀 회한으로 문 의원은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했고 이듬해 사법고시 1차 시험을 합격했다. 학내 시위와 공부를 병행하던 그는 1980년 2차 시험까지 합격했다. 계엄령 위반으로 군사재판에 회부됐던 문 의원은 합격 소식을 경찰서 유치장에서 들었다.

사법연수원 시절에는 7년 연애를 해 온 김정숙 여사와 결혼해 가정을 이뤘다. 연수원에서는 고 조영래 변호사와 박원순 서울시장, 박시환 전 대법관,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 박병대 대법관 등 쟁쟁한 경쟁자들과의 경쟁 속에서 차석을 차지하는 등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

문 의원은 원칙을 중시하는 올곧은 태도를 갖고 있다. 스스로 "남들이 융통성 없다고 할 만큼 정직과 원칙을 중시한다"고 할 정도다. 이같은 성격 탓에 오해를 사기도 했다. 청와대 재직 시절에는 동창회 모임 뿐 아니라 가족 모임에도 잘 안나갔다고 한다. 문 의원은 "선거를 치르면서 그런 일들의 오해를 푸느라 고생했다"고도 했다. 다소 진지한 성격 탓에 유머 등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프로필

1953년 1월 24일 경남 거제도 피난민 수용서에서 출생(음력 1952년생)

1965년 부산남항초등학교, 1968년 경남중학교, 1971년 경남고등학교 졸업

1972년 경희대학교 법대 입학(재수, 후기로 입학해 4년 장학금)

1975년 경희대 총학생회장이던 강삼재를 대신해 총학생회 총무부장으로 집회 주도하다 4월 11일 집회 때 구속, 서대문 구치소 수감,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 선고받고 풀려남.

1975년 8월 육군 강제징집 39향토보병사단 훈련소 거쳐 특전사령부 예하 제 1공수특전여단 제 3대대 수중폭파요원으로 복무.

훈련병 특수전 훈련을 마치고 정병주 특전사령관으로부터 폭파과정 최우수 표창, 자대배치 이후 전두환 여단장으로부터 화생방 최우수표창

1978년 2월 육군병장 (특전사령부 제1공수 특전여단) 만기제대

1980년 경희대학교 법대 졸업, 제22회 사법고시 합격

1981년 김정숙씨와 결혼(슬하에 1남 1녀)

1982년 사법연수원 차석으로 수료(법무부장관상수상). 시위 전력으로 판사임용 좌절

1982년 노무현 변호사와 합동법률사무소 시작

1984년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법학과 강사

1985년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1987년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부산 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위원(부산 지사장)

1995년 법무법인 부산 설립

1996년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민주사회를 위한 부산-경남 변호사 모임대표

2002년 노무현 대통령후보 부산 선거대책본부장

2003년 2월~2004년 2월 청와대 민정수석

2004년 5월~2005년 1월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2005년 1월~2006년 5월 청와대 민정수석

2007년~3월~2008년 2월 청와대 비서실장

2007년 8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회 위원장

2009년 5월 고(故)노무현 前대통령 국민장의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

2010년 8월~2012년 5월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2011년 혁신과 통합 상임공동대표

2011년 6월 14일 자신의 저서 문재인의 운명 발간

2012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2012년 1월 9일 SBS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 출연, 대선 주자 지지율 급등

2012년 4월 11일 19대 국회의원 총선거 당선(부산 사상)

2012년 6월 17일 대통령 선거 출마선언

2012년 7월 30일 민주통합당 제 18대 대통령 후보선출을 위한 예비경선 통과 본경선 진출

2012년 9월 16일 민주통합당 제 18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

2015년 2월 8일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로 선출




chin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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