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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0억 지켜내고 정규직…우리銀 '미생'의 스토리

베스트 애널리스트 출신 강윤흠 차장…떼일 뻔한 모뉴엘 부실여신 모두 회수

(서울=뉴스1) 배성민 기자, 송기영 기자 | 2015-01-30 19:56 송고 | 2015-02-01 22:44 최종수정
1월24일 열린 우리은행 경영전략회의에서의 모뉴엘 관련 여신관리 시상식. 가운데가 이광구 우리은행장, 왼쪽 첫번째가 이상조 부부장, 오른쪽은 강윤흠 차장 © News1
1월24일 열린 우리은행 경영전략회의에서의 모뉴엘 관련 여신관리 시상식. 가운데가 이광구 우리은행장, 왼쪽 첫번째가 이상조 부부장, 오른쪽은 강윤흠 차장 © News1
‘IT업계가 주목하던, 증권사 베스트 애널리스트’ ‘계약직에서 정규직 전환에 기뻐하는 은행원’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같은 인물이다. 모뉴엘 부실여신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으로 알려진 우리은행 강윤흠 차장 얘기다.

그는 모뉴엘에 떼일 뻔한 850억원의 우리은행 여신을 고스란히 지켜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쳇말로 떴다. 하지만 그는 이에 앞서 10여년 전에도 증권사의 IT업종 베스트 애널리스트(투자분석가)로 각광받았던 화려한 때가 있었다. 증권업 전반의 불황과 더불어 지금은 존재 자체가 유야무야됐지만 애널리스트가 되는 길이 험했고 그중 으뜸이라는 베스트 애널리스트는 ‘별 중의 별’처럼 각광받던 때가 불과 몇 년 전이다.

베스트 애널리스트가 추천한 종목에는 개인과 기관투자가 모두 너나없이 몰렸고 건조한 리포트 대신 세세한 설명이라도 들으려는 이가 줄을 섰었다. 반도체, LCD 업종을 분석하던 강윤흠 애널리스트는 2005 ~ 2006년 전후로 몇 년간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꼽혔다.

지금도 증권명가로 꼽히는 대우증권과 NH투자증권을 거친 그는 이공계 출신이 아니라는 장점을 살려 투자자의 눈높이에 맞춘 보고서를 내는 것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디스플레이 업황의 조기 반등론을 제시했고 LCD 경기가 생각보다 좋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설파해 적중시켰다. 관련 회사들에서는 다른 애널리스트보다 그를 먼저 찾아 회사에 대해 설명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뜨거운 햇빛 못지 않은 그늘도 있었다. 조선주 등 전통 제조업체가 부각되고 금융위기 등이 겹치면서 그가 맡은 IT 업종이 소외주가 된 것. 증권업 전반이 침체에 빠진 것도 직업에 대한 회의가 일게 하는 요인이었다.

몸담고 있던 증권사를 한차례 옮긴데 이어 우리은행으로 자리를 옮겼다. 애널리스트도 대개 계약직이었던 만큼 은행에서 ‘전문 계약직’으로 받아주겠다는 것에도 거부감이 없었다. 그의 부서는 은행내 산업분석팀으로 특정기업에 대한 대출 여부를 결정하는 심사부에서 업황이나 회사 전망 등을 물어오면 답해주는 거였다. 담보나 매출처럼 은행이 중시하던 눈에 보이는 수치 외에 회사의 평판이나 성장성을 가늠해주는 게 그의 몫이었다.

2012년 10월 문제의 기업 모뉴엘에 대한 심사부의 평가 의뢰가 들어왔다. 850억원의 대출이 나간 상황에서 더 돈을 빌려줘도 될까에 대한 판단이었다. 매출실적과 전망 등 서류는 완벽했지만 뭔가 미심쩍어 모뉴엘이 자사 제품을 판다고 소개한 해외 쇼핑몰 등을 뒤졌다. 하지만 모뉴엘 제품은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었다. 납품 증빙 등 관련 서류를 요구해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차일피일 미뤘다.

강 차장은 조심스레 여신 회수를 권했다. 은행 심사부는 뜻밖의 조언에 고심하다 일리가 있다고 보고 받아들였다. 1억 예금보다 1000만원 대출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은행으로서는 850억 여신회수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2년여 뒤 모뉴엘은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우리은행은 모뉴엘 관련 여신에 한푼도 손해를 보지 않은 곳으로 떴다. 그의 당찬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준 심사부 선배(이상조 부부장)는 부지점장으로 발탁됐고 그도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았다.

이광구 행장은 1월 24일 경영전략회의에서 “포상금 300만원과 함께, 이른 시일 내 정규직 전환을 약속드립니다”라며 상장과 함께 강 차장에게 악수를 청했다.

전문계약직 은행원으로 변신한 베스트 애널리스트는 이렇게 정규직 은행 차장이 됐다. 하지만 세간에서 보는 것처럼 완생이 된 미생이 아니다. 증권사 RA(리서치 보조)부터 시작해 혹독한 훈련을 거쳐 최고의 베스트가 된 그였다. 

강 차장은 은행원으로서의 승진 못지 않게 증권업(금융투자업)의 부활도 꿈꾼다. 20대에 직장 생활을 시작한 곳인데다 대학을 나와 사회에서 만나 첫 친구들도 거기에 있는 탓이다. ‘을 중에 을’인 탓에 증권맨(드라마 미생에도 나왔다)으로 불리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은행원이 된 그의 꿈은 또 있다. 그만의 예리한 시각으로 역동적인 자본시장에 기여할 수 있다는 희망 바로 그것이다.


ba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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