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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압박에 자살한 근로자…대법, 업무상 재해 판결

"회사에서 구조조정하면 영어 못하는 내가 1순위"…사회 평균인 스트레스 이상

(서울=뉴스1) 전성무 기자 | 2015-01-29 18:11 송고 | 2015-01-30 08:36 최종수정
© News1
 

서울의 한 명문 사립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A씨는 1990년 1월 토목직 사원으로 D사에 입사해 19년 동안 근무했다.

입사 14년 만인 2004년 차장으로 승진한 뒤 수년 동안 국내 토목건설 현장에서 시공업무 등을 담당했다.


그러나 A씨는 2008년 7월 회사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회사가 영어를 못하는 A씨에게 느닷없이 쿠웨이트 정유시설공사현장 시공팀장으로 파견근무 인사 발령을 낸 것이다.


쿠웨이트에서 근무할 경우 영어로 회의를 진행해야 해 큰 부담감을 느낀 A씨는 3개월 동안 꾸준히 영어공부를 했지만 실력이 늘기는커녕 자신감만 잃어갔다.


그러다 A씨는 2008년 10월6일부터 같은달 15일까지 쿠웨이트 공사현장에 출장을 다녀온 뒤 도저히 해외 파견근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회사에 파견근무 철회를 요청했다.


회사는 A씨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2009년 1월1일자로 서울 신도림동 사무실에서 여의도 본사로 발령 냈다.


A씨는 본사로 출근하기 전 아내 나모(48)씨에게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하면 아마 내가 1순위일 것이다. 영어도 못해 해외파견도 못나가는 내가 앞으로 부하직원들 앞에 어떻게 서야 될지 몰라 죽고 싶다"며 처지를 비관했다.


결국 우울증을 앓게 된 A씨는 본사 근무 예정일을 3일 앞둔 2008년 12월29일 오후 회사 본사 건물 10층 옥상에서 동료직원 2명과 담배를 피우며 대화하던 중 갑자기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 재해에 따른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요청했다가 거부당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1, 2심은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른 판단을 내렸다. 영어를 못하는 근로자가 해외 파견근무가 결정돼 스트레스를 받아오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봤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나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A씨가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두려움에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후 우울증이 유발돼 자살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며 "원심은 업무상 재해에서의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len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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