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이나 독일처럼 자타가 공인하는 축구 강국들은 월드컵에 임할 때 첫 경기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이 지향하는 곳은 가장 마지막 무대(결승전)이므로 전체적인 리듬이 대회 중후반에 가서야 최고조에 이를 수 있도록 조절한다는 뜻이다.

우승 후보로 꼽히는 팀들이 대회 초반 크고 작은 위기에 처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주저앉으면 이변의 희생양이 되기도 하지만, 극복하면 자신들이 바라는 곳까지 향하게 된다. 경기를 거듭하면서 선수들의 손발이 맞아떨어지며 더 강한 팀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여러모로 장점이 있다. 정점에 있다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발전해나가는 것을 선수들 스스로 느끼면서 강한 자신감을 동반하게 된다. 이미 초반에 어려움을 넘었기에 위기에 대처하는 내성도 자연스레 갖추게 된다. 그들을 바라보는 상대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이런 흐름이 ‘강팀’의 조건이다. 그 강팀의 향기가 ‘2015 AFC 아시안컵’에 출전하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팀에게서 느껴지고 있다.

대회 초반 악재도 많았고 경기력도 좋지 않았던 한국대표팀이 호주 아시안컵 결승에 올랐다. 마치 강팀처럼, 경기를 거듭할수록 경쾌해지고 있다. 55년 한을 풀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았다. © News1 DB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26일(이하 한국시간) 호주 시드니 스타디움서 열린 이라크와의 호주 아시안컵 4강에서 2-0으로 승리를 거두고 결승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전반 20분 신데렐라 이정협이 결승 골을 넣었고 후반 5분 그간 마음고생이 많았던 센터백 김영권이 추가 골을 넣었다. 27년 만에 마지막 무대에 올라 55년 만에 챔피언에 도전하게 됐다.

부러 포커스를 나중에 맞춘 것은 아니지만, 마치 강팀처럼 경기를 거듭하면서 경쾌해지고 있는 슈틸리케호다. 돌아보니 크고 작은 악재들이 굉장히 많았다.

출발하기 전부터 꼬였다. 슈틸리케 감독이 가장 쓰고 싶은 공격수였던 이동국과 김신욱이 모두 부상을 당했다. 박주영은 좀처럼 예전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숨은 원석이었고 결과적으로 신데렐라가 되고 있으나 상주상무의 백업 자원인 무명의 이정협을 원톱 자원으로 뽑아야할 때는 코칭스태프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대회 중에도 답답한 일이 많았다.

조별예선 1~3차전 멤버가 계속 바뀌었다. 원치 않는 변화였다. 부상자가 많았다. 예상치 못한 감기 바이러스에도 시달렸다. 슈틸리케 감독은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닌 선수를 기용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청용과 구자철이라는 핵심 플레이어는 아예 대회를 중도하차했다. 이쯤이면 최악에 가깝다.

조별예선의 내용이 썩 좋은 것도 아니었다. 오만과 쿠웨이트라는 팀을 상대로 적잖은 실점 기회를 내주면서 단 1골 뽑는 것에 그치던 경기력은 우려감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쿠웨이트와의 2차전이 끝난 뒤 “우리는 더 이상 우승 후보가 아니다”라던 슈틸리케의 발언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한다는 스스로를 향한 채찍질이었다.

그렇게 흔들리던 슈틸리케호는 개최국 호주와의 조별예선 3차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내 불안하던 수비가 안정되기 시작했다. 우즈벡과의 8강전에서는 실종됐던 투지가 되살아나며 한국 축구 특유의 근성을 다시 보았다. 에이스 손흥민이 2골을 넣었다는 것도 고무적인 일이었다. 차츰차츰 못하던 것을 보완하고 잘하는 것을 더 다듬던 한국대표팀은 이라크와의 4강전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아직까지 수비에서 다소의 불안함을 보였으나, 전체적으로는 박수가 아깝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모두가 잘했다. 앞선 경기들에서는 기성용이나 손흥민, 김진현 등 특정 선수들의 돋보이는 활약이 팀을 구했던 인상이 있었다. 하지만 이라크전은 ‘팀’의 승리였다. 각자가 맡은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해내며 비로소 아시아의 강호다운 모습을 보였다.

마치 강팀처럼 경기를 거듭하면서 강해지고 있다. 예선 1차전부터 이라크와의 4강까지, 나중 경기가 지난 것보다 나았다.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한 슈틸리케호 앞에 이제 마지막 무대만이 남아 있다. 지금의 경쾌한 흐름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 55년 케케묵은 한을 풀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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