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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정산이라도 해 봤으면" 속 타는 취업준비생들

졸업철 다가오자 부담감 더해…"경쟁자만 늘 텐데"
취업문 좁아질수록 '첫 직장' 포기 못해…中企 풍선효과 "글쎄"

(서울=뉴스1) 사건팀 | 2015-01-23 17:51 송고 | 2015-01-23 22:20 최종수정
2015.01.23/뉴스1 © News1
2015.01.23/뉴스1 © News1
연말정산 결과 20·30대 미혼 직장인들의 세금 부담이 늘어난다는 불만이 높지만 그마저도 '남의 일'인 취업준비생들은 속만 태우고 있다.

누구 못지않은 열정으로 달려왔다고 자부하지만 번번이 돌아오는 것은 "함께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정중한 거절 통보다.
사법시험에서 수차례 고배를 마시고 고향에 내려가 취업준비 중인 신모(30)씨는 "동기나 선후배들은 검사나 변호사가 됐는데 친하게 지내던 이들에게 연락하기도 겸연쩍다"며 "연말정산에 대해 말이 많지만 서류 통과도 간절한 처지에서는 부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특히 대학들의 졸업철이 가까워지자 나이가 어린 경쟁자들이 늘어날 생각에 '장수생'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대인기피증은 예삿일이 되었고 정신적·신체적 이상증세까지 동반하기도 한다.
1년째 졸업유예 중인 김모(28)씨의 생활수칙은 '가족들보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이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며 집에서 생활하는 처지가 죄스러워 최대한 마주칠 기회를 줄이기 위해서다.

내색하는 가족들은 없지만 스스로가 부끄러운 기분에 가족들이 자고 있을 때 귀가하고 가족들이 모두 출근한 이후에 일어난다.

김씨는 "집에 있는 것이 싫다"며 "하루 종일 PC방에 있으면서 자소서를 쓰고 토익 강의를 본다. 스트레스는 게임을 하면서 푼다"고 말했다.

공인회계사 시험을 앞둔 김모(25)씨는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김씨는 "예민한 성격이라 수험기간 내내 잠을 못 자고 있다"면서 "국내에서는 수면유도제를 팔지 않아 해외 사이트까지 수소문해 구입했다"고 말했다.

또 "시험준비를 하다 보니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며 "20대 중반 나이에 사회와 단절됐다는 느낌이 든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모(29·여)씨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우울증 자가진단 테스트를 해 본다.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고 싶지만 그마저도 용기가 나지 않는다. 진료기록이 남아 혹시나 취업에 불리한 일이 있을까봐서다.

이씨는 "온갖 권리를 포기하고 사는 데 익숙해졌지만 병원도 마음대로 못 가는 현실에 울고만 싶다"며 "우선 작은 기회라도 잡아서 빨리 악순환의 늪을 빠져나가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취업시장 찬바람 얘기야 하루이틀이 아니라지만 이들에게 나아지는 점은 와닿는 게 없다.

부모님께 신세지는 게 싫어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들도 '경쟁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고 "아예 불효자가 되자"며 돌아서는 일이 늘고 있다.

김모(28·여)씨는 지난해 7급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진 뒤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김씨는 "경쟁이 갈수록 심해져 공부에만 몰두해야 했다"며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조금이나마 부모님께 지우는 부담을 덜기 위해 김씨는 학원을 다니는 대신 주말마다 학원에서 제공하는 무료 모의고사에 참여하고 있다.

전남 순천이 고향인 조모(27)씨는 2013년 8월 서울의 한 대학을 졸업했지만 서울에서 직장을 잡고 싶어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다.

특별한 수입이 없지만 부모님의 도움으로 지난해 7월부터 신촌의 원룸에 거주하고 있다. 조씨는 "시험을 보러 다니기에 교통편이 좋기도 하고 대학가다 보니 물가나 정보 수집 면에서 장점이 많다"며" 무엇보다도 서울 어디에 있는 회사에 합격할지 모르니 서울을 떠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취업준비기간이 길수록 눈높이를 낮추기도 쉽지가 않다는 것이 이들의 사정이다.

권모(26·여)씨는 콘텐츠업계 기획자를 꿈꾼다. 대학 졸업 후 6개월 간 인턴을 한 경력도 있다.

현재 중소기업 한 곳에서 합격 통보를 받은 상태지만 막상 갈 곳이 생겨도 고민이다. 채용 진행 중인 대기업 준비에 지장을 줄까봐서다. 원하던 일을 하는 건 같아도 출발선이 크게 달라진다는 주변 선배들의 조언을 무시하기가 어렵다.

권씨는 "준비 중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연봉 차이가 최소 500만원이고 첫 연봉을 기준으로 다음 연봉이 결정된다고 듣기도 했다"며 "들인 노력을 생각하면 작은 회사는 들어가기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홍모(30)씨는 대학원 졸업 후 1년 동안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고학력이라는 자신감에 석사 출신을 우대하는 연구원이나 전공 분야에서 평소 가고 싶던 기업들에만 원서를 넣었다.

하지만 줄줄이 돌아온 것은 서류탈락 통보였다. 하반기에는 닥치는 대로 원서를 넣었지만 최종 면접에서 고배를 마셨다.

경기 파주의 시골집에 내려가 있는 홍씨는 "절박한 마음으로 우선 취업을 해야 할 것 같다"며 "아직은 원하는 일을 하고 싶지만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서울 노량진에서 소방공무원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김모(25)씨는 아침 6시면 강의실에 자리를 잡는다.

김씨는 "지방대생의 어려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며 "하늘의 별 따기라 해도 지방 중소기업에 가느니 그나마 신분이 보장되는 공무원을 포기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류보람·권혁준·김일창·양새롬·윤수희·정재민 기자)


pad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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