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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아베 총리가 ‘과거사’ 사과 않는 이유

영화 ‘언브로큰’ 못 다한 원작 이야기..한국인 이야기도
“가해자 아닌, 전쟁의 ‘광기’ 희생자”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서울=뉴스1) 윤태형 기자 | 2015-01-16 01:01 송고 | 2015-01-18 09:21 최종수정
영화 '언브로큰'의 실제 주인공 루이 잠페리니© AFP=뉴스1 2014.07.03/뉴스1 © News1
영화 '언브로큰'의 실제 주인공 루이 잠페리니© AFP=뉴스1 2014.07.03/뉴스1 © News1

일본 극우단체의 상영보이콧, 안젤리나 졸리의 입국금지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영화 ‘언브로큰’이 우리 극장가에서 종영을 맞고 있다.

    

열아홉 살의 미국 최연소 올림픽 육상 국가대표, 제2차 세계대전 참전, 47일간 태평양 표류, 850일 간의 지옥 같았던 포로생활…‘언브로큰’은 이탈리아계 미국인 루이 잠페리니(1917~2014)의 기적 같은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긴 휴먼스토리다.

    

한 때 ‘씨비스킷’이란 경주마를 통해 시련에 빠진 ‘루저(loser)’들의 감동적인 ‘승리 스토리’를 전해 영미권 평단의 극찬을 받았던 로라 힐렌브랜드가 쓴 ‘언브로큰(unbroken)’이 원작이다. 힐렌브랜드가 쓴 ‘씨비스킷’과 ‘언브로큰’은 합쳐서 1000만부가 팔려나갔다.

    

무엇보다 영화 ‘언브로큰’은 원작에 충실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오모리 수용소와 나오에츠 수용소에서 ‘새(Bird)’라고 불리는 수용소장 와타나베의 모진 학대장면이 그대로 그려졌다. 올림픽 출전 선수라는 과거가 와타나베의 표적이 된 것이다.

    

죽검으로 의식을 잃을 때까지 얻어맞고, 200여명에 달하는 동료 포로들을 시켜 한 대씩 잠페리니에게 주먹을 날리는 장면에선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었다. 미군의 전황 정보를 모았다는 이유로 양손 손톱이 다 뽑힌 피츠제럴드 중령은 수용소장을 죽여 버리겠다는 잠페리니에게 “살아남는 게 진짜 복수야”라고 건네는 장면도 감동적이다.

    

“참을 수 있다면, 이겨낼 수 있어(If you can take it, you can make it)”이란 메시지도 분명했다. 결국, ‘인내’를 주제로 한 감동 휴먼스토리는 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영화에서 소화하지 못했던 더 중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포로수용소 내 갖은 악행으로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도조 히데키와 같은 A급 전범이 된 와타나베가 독백하는 장면이다.

    

1945년 8월15일 일본 패전선언 직후 잠적했던 와타나베는 자신을 포함한 A급 전범 17명이 8년 전 미 군정청으로부터 사면을 받은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 한 고백이다.

    

작가 힐렌브랜드는 “와타나베는 잠적을 결정하면서 자신에게 죄가 있는 지 의문을 가졌다. 결국,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게 아니라 ‘사악하고, 말도 안 되고, 광기어린 전쟁’에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결국 그는 자신을 전쟁의 희생자로 여겼다”고 묘사했다.

    

와타나베는 1956년 “나는 죄가 없다는 사실에 완벽한 해방과 자유의 기쁨을 크게 느꼈다”고 고백했다고 작가는 전했다. 

    

작가는 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조부 일화도 공개했다.

    

“1948년 12월24일 맥아더 장군의 A급 전범 17명에 대한 ‘크리스마스 대사면’이 있었다. 전범들은 풀려났고 이 중 일부는 성공을 거뒀다. 수백 명의 중국인과 한국인들을 강제노역으로 징집해 전범으로 법정에 섰던 기시 노부스케는 1957년 총리가 됐다”

    

또 원작 ‘언브로큰’에서는 영화에서 포함되지 않은 종군위안부, 사이판에서 죽임당한 한인 징집노역자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일본군 장교는 포로를 바라보며 미국 군인들은 성욕을 어떻게 푸는지 물었다. (잠페리니는) 풀지 않고 정신력에 의지한다고 말했다. 장교는 흥미롭다는 듯이 일본군은 병사들에게 여자들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는 수천에 달하는 중국·한국·인도네시아·필리핀 여자들을 언급하는 것이었다. 일본군은 이들을 납치해 강제로 성노예로 만들었다”

    

“같은 달, 미군은 사이판 인근 티니안섬을 노렸다. 그곳에서 일본군은 한국인 5000명을 징집해 강제로 노역을 시키고 있었다. 일본군은 미군이 침공할 경우 한국인들이 적국인 미군에 합류할 것이 두려워 전원을 살해한다는 정책을 갖고 있었다. 일본군은 한국인 5000명 모두를 살해했다”

    

작가는 또한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전쟁의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A급 전범들의 위패를 신사에 영치하고 참배를 하고 있다고 고발한다.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1068명의 전범들은 이후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에 영치됐다. 야스쿠니 신사는 황제를 위해 죽은 사람들을 기념하는 곳이다” 

    

작가는 원작 ‘언브로큰’이 나오기까지 7년 동안에 걸친 자료수집, 인터뷰, 고증, 집필, 수정을 반복했다고 고백했다. 총 75차례에 걸친 인터뷰를 위해 수천 개의 질의를 만들어 수정, 보완한 ‘각고의 역작’이라는 느낌이다.     

    

원작 ‘언브로큰’은 47일간의 사투, 850여 일 간의 가혹했던 포로생활을 이겨낸 ‘인간승리’의 감동을 넘어, 현재의 일본을 이해하는 단상(斷想)을 제공한다. “혹시, 일본이 가해자가 아닌 ‘광기어린 전쟁’의 희생자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birako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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