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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 국외유출문화재 첫 환수 주체 '조선총독부'?

무자비한 약탈에 국내외 비난 여론 거세자 생색내기용 지시
'환수 100년' 9958점 귀환…아직도 15만6160점 나라 밖에

(서울=뉴스1) 박태정 기자 | 2015-01-09 18:48 송고
/뉴스1 © News1


일본 오사카로 불법 반출됐다 1915년 국내로 회수된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이 국외 유출 문화재의 첫 환수 기록을 장식하고 있는 건 아이러니다.

현재 경북궁 국립고궁박물관 앞뜰에 전시돼 있는 지광국사탑이 원래 있던 원주 법천사 터에서 경복궁으로 옮겨진 건 일제강점기 때였다. 이후 1912년 일본 오사카로 반출됐다가 당시 조선총독부의 반환 지시에 따라 되돌아 올 수 있었다.

불법 매매를 통해 여러 일본인을 거쳐 일본으로 옮겨진 지광국사탑에 대해 조선총독부는 "국유지 내에 있는 폐사지의 유물이니 반환하라"며 직접 운송비까지 지불하며 회수했다.

조선 침략 이후 수많은 문화재를 대놓고 약탈해간 일제의 이 같은 예외적인 조치는 조선총독부가 보기에도 지나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강임산 조사연구팀장은 "문화재 약탈과 불법 반출에 대한 국내외의 비난이 거세지자 이를 잠재울 조치가 필요해 생색내기 식으로 몇점을 돌려놓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광복 70주년이 되는 올해가 '문화재 환수 100년'으로 기록되는 건 일제에 의한 식민지 문화재 약탈이 얼마나 극심했는 지를 보여주는 역설이기도 하다.

지광국사탑은 조선총독부가 식민통치 5년 간의 치적과 조선의 발전상을 과시하기 위해 1915년 개최한 박람회인 조선물산공진회에 전시되는 치욕을 당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포탄을 맞아 파손돼 방치됐다가 1958년 시멘트로 겨우 복원됐지만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경복궁에서 용산으로 이전할 때 옮기다가 훼손될 우려가 커 지금 자리에 남겨져 있다.

1918년 일본 도쿄에서 어렵게 귀환한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국보 제86호)도 조선총독부가 국내외 여론의 힘을 못이겨 마지못해 반환조치한 경우다.

1907년 1월 20일 순종의 결혼식에 참여하기 위해 특사로 파견된 일본의 궁내대신 다나카 마쓰이키는 "고종 황제가 기념으로 하사한 것이다"고 거짓으로 꾸며 같은해 2월 4일 경천사지 십층석탑을 강제로 훔쳐 자신의 집인 도쿄로 가져갔다.

이 같은 소식이 '대한매일신보' 3월 7일자에 전해지면서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자 국내는 물론 해외 여론과 일본인들 사이에서조차 비난의 소리가 높아졌다.

식민통치에 앞장섰던 데라우치 통감조차 잘못을 지적하며 반환을 요구했지만 꿈쩍하지 않던 다나카는 1916년 하세가와가 새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반환 여론이 다시 일자 마지못해 반환을 결정해 1918년 11월 15일에서야 서울로 돌아왔다.

해체와 운반 과정을 반복하며 복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처를 입은 경천사지 십층석탑은 해체된 상태로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방치됐다가 해방을 맞았고 1960년에서야 시멘트로 복원돼 1962년 국보로 지정됐다.

1995년까지 경복궁 내 옛 조선총독부박물관이던 전통공예관 앞에 있던 경천사지 십층석탑은 환경오염 피해에 안전성 문제까지 제기돼 10년 동안 복원작업을 거쳐 2005년 개관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1층 실내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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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간송 전형필 선생이 일본에서 신윤복의 '혜원전신첩'(국보 제135호)을 구입하기도 했지만 일제시대 국외로 유출된 문화재를 환수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광복 후 20년 동안에도 한국전쟁 중 미군 병사가 미국으로 가져갔던 조선 중·후기 왕족의 장식·호신용 '삼인검'(三寅劍)을 미국 정부가 1954년 반환한 것을 빼면 마땅한 문화재 환수 기록이 없었다.

국외 유출 문화재의 환수에 있어서는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에 따라 일본이 1400여 점을 반환하면서 문화재 반환 운동에 큰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외 반출 문화재가 정부간 협정을 통해 돌려받은 사례로는 가장 큰 규모였지만 반환 내용은 굴욕적이었다고 평가받은 한일협정 만큼이나 제한적이었다.

우리는 한국전쟁과 정치 불안정 등을 겪으면서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와 배상, 피해 복구와 약탈 문화재 환수 등 주권국가로서의 당연한 요구를 강력하게 하지 못했다.

1958년 제4차 한일회담에서 문화재 반환 문제를 공식 거론하며 1962년 6차 회담에서 청구 목록을 제출했지만 일본은 모두 정당한 수단에 의한 입수물이나 개인 소유물이라 '반환'할 수 없고 일부를 '기증'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반환'이라는 말 속에 약탈과 불법 반출이라는 범죄 행위를 인정한다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한일협정을 통해 환수한 문화재는 고고미술품 544점, 전적 852책, 체신 품목 36점을 포함해 모두 1432점이다.

결국 '인도'라는 모호한 용어로 반환된 문화재는 질보다는 숫자에만 치중해 당초 우리 정부가 청구한 문화재 가운데는 채 3분의 1도 돌아오지 않았다. 북한 지역에서 출토된 문화재들 역시 대부분 반환 대상에서 제외됐다.

일제시대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수집한 이른바 '오구라 컬렉션'도 반환을 요구했지만 개인 재산이라는 이유로 반환을 거부했다.

오구라의 수집품은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된 1100여점 등 공식 확인된 것만 2200여점에 달하고 개인적으로 은닉한 유물을 더하면 4000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2014년 8월 현재 국외로 유출된 문화재는 15만6000여점에 달한다. 그 중 일본에 있는 문화재가 6만7000여점으로 43%에 이른다.

유출 경로를 모두 확인할 수 없지만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전쟁이나 나라의 혼란기에 약탈당한 것으로 드러난 경우가 상당수다.

특히 일본에 유출된 문화재 대다수는 일제강점기 시절 총독부를 비롯한 권력기관이 강탈하거나 오구라컬렉션처럼 도굴이나 도난 당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사실 국외 유출 문화재가 공공기관 사이의 정식 절차를 거쳐 고국으로 돌아온 예는 많지 않다.

1970년 유네스코가 '문화재의 불법적인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 수단에 관한 협약'을 채택했지만 권고적인 성격이라 국제 규정에 의해 반환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외규장각 의궤 297권이 2011년 5년 단위로 갱신하는 대여 형식으로 일괄 양도된 것이 성과라면 성과다.

1993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한국의 고속철도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방한하면서 '수빈휘경원원소도감의궤'를 반환한 것을 계기로 시작된 외규장각 의궤 반환은 반환협상 20년 만에, 약탈 14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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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 문화재는 정부의 협상보다는 민간의 노력으로 되돌아온 경우가 많다. 외규장각 의궤 반환도 1975년 프랑스국립도서관 직원으로 일하던 박병선 박사가 도서관 별관 창고에서 의궤를 찾아내지 못했다면 존재조차 확인하지 못했을 터였다.

1987년 지금은 작고한 조창수 여사가 미국에서 반환한 고종어보 등 93점의 문화재는 민간의 노력으로 환수된 대표적인 경우다.

일제시대 유학생으로 미국에 와서 정착해 스미스소니언자연사박물관에서 아시아스페셜리스트로 근무하던 조 여사는 1987년 미국 경매시장에 고종, 순종, 명성황후의 어보가 포함돼 있다는 걸 듣고 교포들과 직접 구입에 나서기로 했다.

음악회와 자선의 밤 같은 모금 행사를 열어 구입 자금을 모은 조 여사는 고종어보를 포함한 유물 93점을 인수해 같은해 6월 16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1996년 일본 야마구치현립대학이 경남대학교박물관에 기증한 데라우치문고 한국 관계 자료 1995점은 교섭을 통해 소장자의 기증으로 돌아온 경우다.

데라우치문고 반환은 국사편찬위원회가 먼저 제보를 받았지만 야마구치현립대학과 학술 교류 협정을 추진 중이었던 경남대가 1996년 개교 50주년 기념사업으로 교섭을 진행해 조건 없이 기증하는 형식으로 98종 135책 1995점을 돌려받았다.

다수의 문화재가 반입된 것은 한일협정 체결에 따른 1400여점 반환 이후 처음이었다.

2005년 11월에는 일본 도쿄 고서점가 경매에 나온 '김시민 선무공신교지'(보물 제1476호)를 낙찰받은 고서적상이 다시 판매할 움직임을 보이자 시민단체인 문화연대가 주축이 돼 모금운동을 벌여 공신교지를 되찾아 오기도 했다.

1905년 러일전쟁을 위해 북진하던 일본군이 상관에게 전리품으로 바쳐 일본 도쿄 야스쿠니신사에 전시된 '북관대첩비'가 반출 100년 만인 2005년 10월 20일 귀환한 건 민관협력의 성과였다.

북관대첩비에 기록된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정문부 후손의 반환 요청과 우리 정부 공식 요청 등 여러차례의 반환요청에도 일본 정부는 "북관대첩비 원소재지가 북한인데다 신사가 보유한 물건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거부했다.

야스쿠니신사는 "남북이 통일되면 돌려주겠다"고도 했다. 끈질긴 반환요청에도 꿈쩍하지 않던 일본이지만 2005년 3월 28일 남북한의 불교계 대표가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 공동으로 반환을 요청하자 거부할 명분이 사라졌다.

이어 6월 20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북관대첩비 반환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서 북관대첩비는 제자리를 떠난 지 100년 만에, 반환운동을 시작한 지 27년 만에 고국으로 되돌아 왔다.

남한에서 정밀한 보존 처리를 마친 북관대첩비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경복궁 관내에 전시되다 한 해 뒤인 2006년 3월 1일 북한으로 보내졌고 같은 달 26일 본래 위치인 함경도 옛 길주 땅인 김책시 임명동에 세워졌다.

일제시대 도쿄대로 반출됐던 오대산고본 조선왕조실록 47책이 2006년 국내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불법 약탈에 대한 증거를 들이 밀어 법정 소송 압박으로 성공한 사례다.

1914년 조선총독부로부터 도쿄대로 반출된 오대산고본 실록은 2004년 일본에 머물던 혜문 스님이 도쿄대 도서관 귀중본 서고에 소장된 사실을 알게되고 조사 결과 불법 반출을 확인해 환수위원회를 만들어 반환 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여러 차례의 반환 요청과 협상에도 도쿄대가 반환에 소극적이자 환수위원회는 법정 논리로 도쿄대를 압박했고 문화재 약탈자로 지목받는 것에 부담을 느긴 도쿄대의 서울대 기증을 이끌어냈다.

이후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는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로 재조직돼 일본 궁내청이 소장하고 있던 조선왕실의궤 반환운동에 나서 환수 성공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이토 히로부미가 규장각 도서를 일본으로 반출해갔다는 사실이 1965년 서울대중앙도서관에서 발견된 1911년 4월 서류철에서 확인됐지만 궁내청 소장 도서 환수는 지지부진했다.

그러던 차에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 활동을 계기로 정부부처도 협력해 도서 반환 문제를 검토하고 국회도 반환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자 일본 간 나오토 총리는 한일강제합병 100년이 되는 해인 2010년 반환 의사를 밝혔다.

같은해 11월 APEC 정상회의에서 '한일도서협정'이 체결됐고 2011년 12월 조선왕실의궤 81종 167책과 이토 히로부미 반출 규장각 도서 66종 938책 등 150종 1205책이 돌아왔다.

한일협정으로 1432점이 반환된 이래 일본으로부터의 최대 규모의 문화재 반환이었다. 특히 한일협정 이후 정체에 빠진 정부 주도 문화재 반환이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한국전쟁 와중인 1951년 미국으로 불법 반출된 호조태환권 인쇄 원판이 62년 만인 2013년 9월 3일 한국정부로 공식 반환됐다. 호조태환권은 조선정부가 고종 29년(1892) 근대적 화폐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발행한 신화폐 교환증서다.

지난해 4월 25일에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 방한에 맞춰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반출됐던 대한제국 국세와 고종 어보 등 인과 9장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를 계기로 문화재청은 지난해 7월 22일 미국 워싱턴DC에서 미국 국토안보부(DHS) 소속 이민관세청(ICE)과 '한미 문화재 환수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해 미국으로 불법 반출된 문화재 환수를 위한 공식 창구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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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외 소재 문화재는 지난해 8월 1일 기준으로 15만6160점에 이르고 환수된 문화재는 10개 국 9958점에 불과하다.

물론 나라 밖에 있는 모든 문화재가 약탈이나 도굴 같이 불법적으로 가져간 것은 아니다. 공식적인 거래를 통하거나 과거 외교적인 절차를 거쳐 반출된 경우도 있다.

또 국외소재 문화재 상당수는 자료나 설문조사를 통해 확인된 것이어서 실제 조사를 가면 중국이나 일본 문화재로 밝혀지거나 아시아 문화재에 우리 문화재가 뒤섞여 있는 경우도 있어 수치가 정확하지는 않다.

2012년 7월 설립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합법적으로 반출된 문화재는 현지에서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돕고 불법이나 부당하게 유출된 문화재는 환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민간 차원의 문화재 환수 운동도 광범위하고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때마침 광복 70주년이자 한일수교 50주년이 되는 올해는 국외소재 문화재 환수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일각에서는 오구라 콜렉션을 돌려받을 기회라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한일 관계가 얼어붙은 데다 일본 정부는 되레 도난당해 한국에 머물고 있는 대마도 고려 불상을 반환하라고 요구하고 있어 정치·외교적 환수 여건은 어느때보다 험난하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안휘준 이사장은 "광복 70주년이자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한일 문화재 관계의 돌파구가 마련되기를 소망한다"면서 "하지만 양국의 정치·외교 관계가 풀려야 하는 만큼 큰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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