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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에 5천만원이…‘얼굴없는 기부천사’ 또 오셨네

전주서 15년째 불우이웃돕기 뭉칫돈, 까치, 고물상주인 등…"세상은 아직 따뜻해"
택시운전으로 모은 돈 기부한 부산 노부부 "우린 연금이면 충분해"
11년간 매년 추석때 쌀 50~200포 놓고간 대구 '키다리 아저씨'는 하늘나라
8년간 군청 주사의 도움 받은 노부부 "더욱 더 힘 내 살아야겠다" 편지글
전주시는 2008년 '얼굴없는 기부천사' 기념비 세워

(서울=뉴스1)전국부 특별취재팀 | 2015-01-04 10:01 송고 | 2015-01-04 13:14 최종수정
편집자주 연말연시를 훈훈하게 하는 사연들이 있다. 밀려드는 기부의 물결이 그것이다. 특히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기부천사들은 사회의 귀감이 되고있다. 뉴스1이 전국의 '얼굴없는 기부천사'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지난달 29일 오후 전북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에서 얼굴없는 천사가 두고 간 성금을 센터 직원들이 세고 있다.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는 2000년부터 시작돼 15년간 총 397,301,750원 이다. 2014.12.29/뉴스1 © News1 김대웅 기자
지난달 29일 오후 전북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에서 얼굴없는 천사가 두고 간 성금을 센터 직원들이 세고 있다.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는 2000년부터 시작돼 15년간 총 397,301,750원 이다. 2014.12.29/뉴스1 © News1 김대웅 기자

지난해 12월29일 전주시 완산구 노송동 주민센터에는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시간이 없으니 동사무소 인근 세탁소 옆 자동차 뒤에 A4 종이박스를 놓았으니 빨리 가져가세요.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주시고요.“

‘얼굴없는 천사’는 이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의 말대로 세탁소 옆 자동차 뒤에는 5만원권 지폐와 동전이 든 종이박스가 놓여 있었다. 종이박스 안에는 돈과 함께 '소년소녀가장 여러분, 힘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글이 적힌 종이도 있었다. 이날 그가 두고 간 돈은 모두 5030만4390원.

이 기부자는 2000년 4월 58만4000원을 기탁한 것을 시작으로 15년째 매년 선행을 베풀어왔다. 지난해까지 3억4699만7360원을 기탁했고, 이번까지 15년 동안 총 3억9730만1750원을 동주민센터 근처에 두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 돈을 놓은 곳을 알리거나 다른 사람을 통해 돈을 놓고 갔다.

이날 전화를 받은 노송동 직원 임나경 씨는 "40대 중후반의 남성 목소리로 들렸으며, 전화번호는 발신전화 제한표시가 떠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익명의 기부자를 전주시민들은 '얼굴 없는 천사'라고 부른다. 시는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을 기리기 위해 2009년 12월 기념비를 세웠다. 노송동 일대 주민들은 '천사'를 의미하는 10월4일을 '천사의 날'로 지정해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을 돕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주의 극단 '창작극회'는 이달 12일부터 28일까지 '천사는 바이러스'라는 공연으로 이 기부자의 선행을 무대 위에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많게는 10년이 넘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을 실천하는 '얼굴없는 천사'들이 전국에서 널리 감동을 전하고 있다.

◇죽음도 알리지 않은 대구 '키다리 아저씨'

대구의 ‘수성구청 키다리 아저씨’도 빼놓을 수없는 지역 유명인사다.

2003년부터 2013년까지 11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추석이 다가올 때면 대구 수성구청에 쌀 기부해 온 ‘키다리 아저씨’. 20kg 500포로 시작해 지난해까지 10kg 2000포 등 11년간 4억원 가량을 기부했다.

‘키다리 아저씨’는 한사코 신상을 알리기를 사양하는 탓에 수성구청에서 붙여준 이름이다. 성이 박씨이고 평안남도가 고향. 6.25전정때 부산에 머물다 대구에 정착한 뒤 양복지 도매상을 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키다리 아저씨’는 지난해 봄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뒤늦게 전해졌다. 시민들은 끝까지 이름없는 선행을 지킨 아저씨의 죽음에 숙연했다.

부산 해운대구 반송2동 주민센터에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9년째 ‘사랑의 동전 소리’가 들린다.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사랑의 ‘동전 천사’ 때문이다.

지난해 23일 오후 1시30분께 반송 2동 주민센터에는 ‘동전 천사’가 어김없이 나타났다. 주민센터 측은 이 ‘천사’가 복사용지 두 상자에 동전을 가득 담아 민원대에 얹어두고 홀연히 사라졌다고 전했다.

상자에는 ‘구겨지고 녹슬고 때 묻은 돈, 좋은 곳에 쓸 수 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라는 손글씨 메모와 함께 115만5000여원의 동전이 가득 담겨 있었다.

직원에 따르면 허름한 녹색점퍼를 입은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고개 숙여 일하던 직원의 어깨를 두 번 톡톡 쳤다. 이어서 말없이 손가락으로 박스를 가리켰고 박스를 열어본 직원이 그가 ‘동전천사’임을 알고는 급하게 뒤따라갔으나 사라지고 없었다. ‘동전천사’는 180㎝ 정도 큰 키에 마른 체격이었다.

주민센터 직원들은 매년 크리스마스 전후로 동전을 기부하는 익명의 기부자를 ‘동전천사’라 불러왔다. 반송2동 이승용 동장은 “동전천사가 올해도 찾아줄지 내심 기다렸다”며 “기부금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소중히 쓰겠다”고 감사를 표한 뒤 동전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했다.

인천 남구의 한 익명의 기부천사는 지난해 추석에 백미 10kg짜리 100포를 구청에 기부했다. 지난해 설을 앞둔 1월 24일에도 백미 10㎏짜리 100포가 전달됐다.

남구청은 5년째 명절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백미 100포를 같은 사람이 보내는 것으로 보고있다. 이럴 경우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7번 기부를 한 셈이 된다. 5년간 명절에 배달된 쌀의 양을 합하면 6950㎏에 이른다. 이 얼굴 없는 기부천사는 쌀 포대에 ‘즐겁고 행복한 설 명절을 보내시기 바랍니다’라는 쪽지만 남기고 있다.   

지난해 12월29일 익명의 기부자가 서울 성동구 금호4가동 주민센터에 전달한 108만원 현금과 손편지.(성동구 제공)© News1

서울 성동구 금호4가동 주민센터는 2년전부터 설이면 찾아오는 '까치'를 기다린다. 지난해 12월 29일 오후에는 2층 민원실에 한 남자가 만원짜리 지폐와 편지가 들어 있는 종이상자를 전달하고는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사라졌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데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을 확인 할 수 없었다.   

'날씨가 매우 차갑습니다. 독거노인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적힌 손 편지가 유일한 흔적이다. 상자 안에는 2013년처럼 만원짜리 지폐 108장이 담겨져 있었다.

금호4가동 황인혁 주무관은 “ 작년에는 편지 말미에 ‘이름없는 까치’ 라고 쓰여져 있었다. 올해는 이름은 빠졌지만 글씨체도 같고 내용도 똑 같다”며 “작년 이름없는 까치 그분이 확실한 것 같다“고 말했다.

◇농사지어 모은 돈 이웃 독거노인 위해 쾌척

꼭 여유가 있어서 남을 돕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팍팍한 삶과 맞서면서도 더 어려운 이웃의 손을 잡는 진짜 ‘천사 중의 천사’들도 있다.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에서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한 70대 노부부는 한 달에 받는 40만원 연금으로 생활하면서도 한푼 두푼 모은 1000만원을 선뜻 불우이웃을 위해 써달라고 내놓았다.

지난해 12월27일 오전 10시 해운대구 반여1동 주민센터에 허름한 차림새의 70대 할머니가 들어왔다. 낡은 스카프와 솜털 패딩을 입은 할머니는 평범한 민원인처럼 보였다. 누구도 이 할머니가 5만 원짜리 200장을 묶은 돈다발을 주민센터 접수대에 올려놓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이 돈을 반여동 주민들을 위해 잘 써 주세요”라고 말하고는 뒤돌아 나갔다. 놀란 직원이 뛰어 나와 할머니를 붙잡고 억지로 말을 붙였다. 할머니는 더듬거리며 "우리 양반이 택시를 오래 몰았는데 그렇게 모은 돈이야. 둘이 상의해서 기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직원은 할머니의 주소를 물었고, 할머니는 주변 주택에 산다고만 했다. 반여동 일대에 낡은 집들이 많이 모여 있다. 할머니 부부 역시 넉넉한 형편이 아님이 분명하다.

할머니의 형편이 좋아 보이지 않아 이 직원은 재차 "이렇게 큰돈을 주셔도 돼요?"라고 물었다. 할머니는 "매달 연금 40만 원이 나오는데 그거면 우리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직원은 끝까지 이름을 가르쳐 달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할아버지한테 혼나"라는 말만 남기고 직원을 뿌리치고 갈 길을 갔다.

반여1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총총걸음으로 걸어가시는 할머니의 구부정한 등이 그렇게 커 보일 수 없었다"며 "진짜 부자는 마음이 넉넉한 사람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해운대구청은 '얼굴 없는 노부부 천사'가 기탁한 1000만원과 직원들이 모금한 돈을 모아 공동모금회를 통해 주변 어려운 이웃들의 지원에 쓸 예정이다.

전북 장수군 장계면에 4년째 이웃돕기 성금을 기탁하고 있는 한 '얼굴없는 천사'는 올해도 성금 95만원을 면사무소에 기탁했다. 이 기부천사는 연말이면 "A고물상에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맡겨 놓는다"는 전화 한통만 남기고 자취를 감추고 있다.

A고물상 주인은 “(돈을 맡긴 분이)1년간 폐품을 모아 처분한 돈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놓고 있는데 올해는 폐품가격이 하락해 많은 금액을 기부할 수 없다며 굉장히 미안해했다”면서 “자신의 신분을 절대 밝히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고 밝혔다.  장계면은 기탁된 성금을 관내 저소득 및 독거노인 등 5가구에 연탄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울산 남구 신정2동 주민센터에도 지난해 10월 22일 익명의 60대 할머니가 찾아와 현금 500만원을 기부했다.

할머니는 “외롭게 살고 있는 독거노인들을 보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그 분들을 위해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이제서야 실천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할머니도 혼자 외롭게 살고 있는 독거노인이었으며 기부한 500만원은 평생 농사를 지어서 모은 돈이었다.

광주시 서구 금호1동에서 홀로 살다 간암으로 투병 중이던 최모 노인(75)이 10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40만 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매달 노인연금 20만 원과 생계 급여 28만 원으로 생활해온 최씨는 그동안 아낀 40만 원을 성금으로 전했다.

강원 양구군의회 직원이 8년간 남들 모르게 노부부에게 선행을 베푼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눈길을 끌고 있다. 사연의 주인공은 양구군의회 지방운전 주사 원종배씨(55)로 8년간 뇌병변을 앓고 있는 김종권(75)·최윤애(60)씨 부부에게 8년째 연탄 1000장과 쌀, 고기 등을 보내주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도움을 받자 최씨는 11일 원씨의 선행을 널리 알리고자 양구군청에 이 같은 내용의 편지를 들고오면서 세상에 전해지게 됐다. (사진제공=양구군) 2014.12.12/뉴스1 2014.12.12/뉴스1 © News1 황준 기자

남몰래 8년째 기부활동을 해온 ‘얼굴없는 천사’가 뜻하지 않게 얼굴을 드러내게 된 경우도 있다.

뇌병변장애를 가진 김종권(75)·최윤애(60)씨 부부는 올 겨울에도 어김없이 도움을 받자 원씨의 선행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직접 쓴 편지를 강원도 양구군청에 들고왔다.

부부는 편지에서 “자살도 여러 번 생각을 했으나 도와주시는 원종배님 생각에 더욱 더 힘을 내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이 글을 대통령님이 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편지 하나로 세상에 알려진 양구군의회 원종배(55) 주사는 연탄 1000장과 쌀, 고기 등을 노인 부부에게 8년째 기부해오고 있다.

이 소식을 들은 지역주민 이병용(26)씨는 “남을 돕는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8년간 했다는 것이 대단하다. 다른 사람들도 귀감을 받아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다면 따뜻한 겨울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장우성(서울)·주영민(인천)·신효재(강원)·남궁형진(충북세종)·박영문(대전충남)·박효익(전북)·윤용민(광주전남)·배준수(대구경북)·조창훈(울산)·김완식(부산경남)·이상민(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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