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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0] "월세 딸 집에 사는 독립유공자 후손도 있어"

3대 항일운동가 후손 권영좌씨 "조상 독립운동을 원망도 했다"
"정부의 부족한 지원, 가슴 아파"
"친일재산 몰수한 기금으로 광복회관 새로 지으려해"지적도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2014-12-31 21:59 송고 | 2015-01-02 09:14 최종수정
증조부부터 아버지까지 3대가 독립유공자인 권영좌씨가 12월30일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4.12.30/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증조부부터 아버지까지 3대가 독립유공자인 권영좌씨가 12월30일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4.12.30/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암흑'(暗黑·어둡고 캄캄함 또는 암담하고 비참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증조할아버지부터 아버지까지 3대가 항일 의병운동에 나선 애국지사의 후손 권영좌(95)씨는 자신의 유년시절을 '암흑'이라고 표현했다. 광복 70년을 맞아 뉴스1이 찾아가 만난 권씨는 '암흑'이라는 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역사가 주는 엄중한 교훈을 되새기게 했다. 


증조할아버지(권인규), 할아버지(권종해), 아버지(권기수)가 일제의 침탈, 내정 간섭과 만행에 맞서 의병활동을 펼쳤기에 권씨는 늘 일본의 감시 속에 살아야 했다.


"일본군은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어요. 그들은 끄나풀을 보내 무엇이라도 찾으려고 했고, 그들의 괴롭힘 속에서 살아야 했어요. 암흑이었죠.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독립운동을 하다 투옥됐던 권씨 아버지는 권씨가 태어난 지 2년만인 1922년 옥중에서 순국했다. 권씨는 고향 강원도 강릉을 떠나 충청·경상도 등 깊은 산 속을 떠돌아야만 했다. 일제의 눈을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그만큼 고난의 시간이 이어졌다.


1945년 8월15일. 마침내 광복이 됐고 정부는 권씨 선조들의 공훈을 기려 독립유공자로 인정했다. 그러나 빛나는 훈장의 느낌과는 달리 어느덧 상수(上壽·100세)를 바라보는 권씨는 아직 암흑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 했다.


그는 "친일세력 후손과 달리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구랍 30일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살아가고 있는 권씨를 광진구에 위치한 자택에서 만났다.


거실 가장 잘 보이는 벽면엔 독립훈장이 표창장과 함께 나란히 걸려 있었다.


처음 기자와 마주한 권씨는 준비라도 한 듯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는 "역사라는 것은 과거와 현재, 미래다. 불변의 진리다. 그런데 우리나라 현대사가 너무 엉터리다. 역사는 부끄러운 것, 잘못된 것, 잘한 것도 다 인정할 때 바로 서는 것"이라며 "역사를 모르면 과오를 범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 역사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은 목숨, 재산은 물론 후손들까지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모두 산화했다"며 "반면 친일세력 후손은 호의호식 하고 있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권씨는 "독립운동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오늘날이 있는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은 자신이 느낀 아픔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며 "하지만 광복 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국가의 기본 정신이 짓밟혔다"고 힘주어 말했다.


권씨가 역사를 강조한 것은 지금 현재 자신들이 처한 현실, 곧 '오늘의 역사'을 잘 기억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실제 권씨는 과거의 아픔을 지금까지 느끼고 있었다.


권씨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36년 일제치하에서 말할 수 없이 위축된 생활을 했다. 많이 배우지 못하다보니 능력도 없는 것이다"며 "조금 배웠다 하는 사람들은 개인 욕심 채우느라 바쁘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분들의 후손은 미래가 없는 것으로 생각되기까지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자기 부모 시대부터 느낀 위축감을 현재까지 가지고 있다"며 "그래서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렵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가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대하는 태도에 적잖은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경제적인 부분이 그랬다. 하지만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권씨는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다. 이제는 3, 4대가 아니라 사실상 4, 5대까지 배우지 못한다. 가진 것이 없어 후손들이 잘나가는 집안과 혼인도 못 하는 세상이다"며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는 지원하는 데 너무 인색하다"고 했다.


그는 현재 한 독립유공자 후손 부부는 살집이 없어 월세 사는 딸의 집에서 함께 산다고 했다. 


또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이던 독립유공자 후손이 연금을 받게 되면서 수급비보다 적은 금액을 받게되자, 불만을 터트린 일도 있다고 했다.


권씨는 "연금 하나로 생활이 어려운 수준이다. 훈격이 높은 사람은 연금 금액이 많겠지만, 가족들이 달린 후손들은 전혀 생활이 안 된다"고 했다.


아울러 "평생을 고생하면서 자식도 제대로 못 가르치고 했는데 현재 연금도 한집안에서 여러 사람이 아니라 1명만 받게 돼 있다"며 "정부에서 독립유공자 유족에게 너무나 잘못한다고 생각이 든다. 인색한 정부가 유가족들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권영좌씨. © News1 허경 기자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권영좌씨. © News1 허경 기자

권씨는 이같은 이유로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태어난 것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고 했다. 이는 청산되지 않은 당시 친일세력과 정부에 대한 원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경제적인 문제는 물론 모든 것이 힘들 때는 다 원망스럽다. 더욱이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하는 것을 보면 차라리 우리 조상이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랬다면 나도 많이 배웠을 것 아닌가. 난 (당시)소학교도 나오지 못했다. '나도 많이 배웠다면 국회의원, 대통령 못하라는 법이 있겠는가' 그런 생각도 많이 한다"며 "지금도 하고 있다. 여기에 내 자식까지 많이 가르치지 못하는 아픔이 있다"고 덧붙였다.


또 "항일투쟁 당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아직도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며 "이같은 작업도 후손이 직접 증거를 첨부해 신청해야 한다. 세월이 점차 흘러가면서 후손들도 나이를 먹어간다. 정부가 나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고 강조했다.


권씨는 특히 친일재산환수작업에 대한 정부의 대책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는 지난 2006년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운 독립유공자 후손 등을 지원하기 위해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을 몰수해 기금을 조성했다.


권씨는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쓰게 돼 있으나 정부가 묵혀두고 줄 생각을 안 한다"며 "오히려 기금 중 450억원을 투입해 광복회관을 새로 짓는 데 사용하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역사성이 있는 광복회관을 허물어 새 건물을 짓고, 건물 소유권마저 광복회가 아닌 보훈처와 함께 가지게 된다면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우려도 있다"고 했다.


1시간 넘게 이어진 대화에서 권씨는 '역사'를 수차례 강조했다.


역사를 알아야 결국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똑같은 사례가 생겼을 때 잘 대비할 수 있다는 독립유공자 후손의 간곡한 당부였다.




cho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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