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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통진당 해산되던 날, 박 대통령에 전달된 ‘감동 바이러스’

박 대통령을 감동시킨 ‘작은 자’들의 나눔

(서울=뉴스1) 윤태형 기자 | 2014-12-23 11:03 송고 | 2014-12-23 11:07 최종수정
박근혜 대통령. © News1 2014.12.22/뉴스1 © News1

지난 19일 헌법재판소의 통일진보당 해체결정에 국민적 이목이 쏠리던 시간, 청와대에서는 '2014년 국민추천포상' 수여식이 있었다.

이날 수여식에는 국민훈장 4명, 국민포장 7명, 대통령표창 16명, 국무총리표창 13명 등 모두 40명이 수상했는데, 특히 위안부피해자, 환경미화원,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나눔을 실천한 사연들이 전해지면서 '통진당 정국'으로 얼어붙은 청와대에 온기를 전했다.
시작할 당시만 해도 이날 행사는 여는 시상식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수상자들에게 포상한 뒤, 간담회를 진행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 사회엔 아직도 소외되고 어려운 분들이 많다"면서 "자발적인 봉사와 헌신으로 국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시고 함께 사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고 계신 여러분이야말로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분들이다"고 치하했다.

이어 지난 5월 장성 노인요양병원 화재 당시 홀로 불을 끄다 사망한 간호조무사 고(故) 김귀남씨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 희생과 나눔을 실천한 수상자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여기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우리 시대의 등불과도 같은 분들이라고 생각한다"는 인사말을 전했다.
이때까지는 박 대통령의 메시지는 대(對)국민 연설같이 담담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잠시 후 수상자들의 사연이 전해지면서 간담회가 열린 청와대 곳곳에 '감동 바이러스'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먼저 국민포장 수상자인 황임숙(77)씨가 자신을 소개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도서녹음을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이었다. 50대에 찾아온 우울증에 힘들어했을 때, 조카의 권유로 한국시각장애자복지회에서 녹음도서 봉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평소 좋아하던 책을 실컷 읽으며 장애인들과, 봉사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처음 시작한 봉사활동이었다. 녹음실 시설이 좋지 않아 여름엔 아이스 팩을 발에 대고, 겨울엔 담요에 전기방석까지 동원됐다. 폭설이 내려 버스가 끊기기도 하고, 봉사에만 빠져있는 황씨에 가족들이 서운해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젠 복지관에서 '황임숙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명인사가 됐고, 감사의 점자편지를 건네는 팬들도 생겼다. 물론 남편과 자식들은 가장 큰 후원자가 됐다.

황씨는 이날 박 대통령 앞에서 "지금 돌이켜 보니 그때부터가 저의 제2의 인생의 출발점이 된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가 정말 즐거웠습니다. 저의 목소리로 녹음한 책을 잘 읽었다고 격려해 주시고 고마워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오히려 제가 더 행복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조금 도와드리러 갔다가 제가 더 많은 것을 받은 시간들이었다"고 소회를 털어놨다.

국무총리상을 받은 한정자(90)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매달 40여만원의 정부지원금으로 홀로 생활하고 있다.

지난 2월 한 씨는 수서동 주민센터에 한 통의 전화를 걸어 "꼭 줄 것이 있다"면서 방문을 청했다. 직원들이 할머니가 거주하는 임대아파트를 방문하자,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오래된 보따리를 내놨다.

그 보따리에는 돌반지, 금목걸어, 금덩어리까지 크고 작은 금이 가득했다. 한 씨가 젊은 시절 동대문 미용실에서 일하고 정부지원금을 아껴 60년간 모은 시가 5800만원에 달하는 금 330돈이었다.

전 재산을 내놓고 생활이 어렵지 않겠냐는 걱정스런 직원의 말에 돈 쓸 일이 없다고 했다. 한 씨는 실제로 한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않고 두꺼운 이불과 전기장판으로 추위를 견디고 전기와 물도 꼭 필요한 만큼만 쓴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나도 나라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나도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나"고 담담하게 말했다고 한다.

국민포장을 수상한 김복득(96)씨는 최고령 위안부 생존자다. 경남 통영에서 조카 소유 슬라브 주택에서 살고 있는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위안부 문제의 진상을 밝히고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고 싶다. 그래야 한 맺힌 내 삶이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라고 말하곤 한다.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인권운동에 활발한 활동을 해온 그는 "하나, 둘 떠나다 보니 이제 몇 명 남지 않았다. 나도 건강이 좋지 않고, 누군가는 이 활동을 이어나가줘야 할 텐데 걱정이 많이 된다"며 위안부 피해자 추모비건립과 경남 위안부역사관 건립기금으로 2200만원을 지원했다.

또 지난 3년간 꾸준히 김 씨의 집을 방문해 집안일을 거들고 말벗도 되어준 여학생들이 다니는 경남 통영여고에 그동안 정부지원금을 아껴 모아온 2000만원을 기부했다. 김 씨는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무엇보다 컸어요. 어린 학생들이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줬죠"라며 감사를 표했다. 

이밖에 23년간 주말마다 장애인 나들이 봉사를 해온 환경미화원, 자식을 잃고 그 모교에 35년간 73억을 기부한 '목장할머니', 지난 17년간 총 1억원 상당의 꽃을 기부해온 '착한화원 주인' 등 올해의 국민추천포상 40명의 사연들이 소개됐다.

박 대통령은 이날 수상자들의 사연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간담회를 마치면서 "한 분 한 분의 말씀에 많은 감동을 느꼈다. 감동어린 이야기를 통한 행복바이러스가 아주 큰 전파력을 가지고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면서 "동기부여가 되어 여러분의 선행과 사랑 나눔이 우리 사회를 더욱 따뜻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퍼져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감동 바이러스'가 박 대통령을 전염시켰고, 이날 청와대의 주인은 박 대통령이 아닌 바로 이들 '나눔 실천자'로 느껴졌다. 또, 문서가 아닌 직접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경청하고 생각과 마음을 읽고, 느끼고 감동하는 게 '열린 소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birako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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