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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대의 정가산책]朴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 딜레마

#{서봉대} 블로거 | 2014-12-18 11:18 송고 | 2014-12-18 11:41 최종수정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을 그토록 신뢰하는 이유는 뭘까?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보좌진이었던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 정호성 제 1 부속·안봉근 제 2 부속 비서관)이 자신의 비서실장 출신이었던 정윤회씨와 함께 정부 인사 등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이를 거듭 일축하면서 이들에 대한 '무한 신뢰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모습은 박 대통령의 용인술(用人術)과도 맞물려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2014.12.15/뉴스1 © News1

박 대통령은 무엇보다 신뢰관계를 중요시한다.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측근의 배신으로 목숨을 잃었고 사후에도 신군부 세력에 의해 비난받는 것 등을 보면서 깊은 배신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것도 20대라는 젊은 나이에 겪은 일들이었으며 정치권으로 들어오기전까지 오랜 기간동안 칩거생활도 해야 했다.  

이때문인듯 박 대통령은 외로움도 많이 느끼는 것 같았다.

재선의원이었을 때 기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감기 걸린 자신을 염려하는 말을 듣고는 눈시울을 붉혔던 적도 있었다.
젊은 시절 '배신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칩거생활까지 했던 박 대통령에겐 '믿을만한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게 오래된 인식으로 자리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인식이 자신의 보좌진에게 더욱 의존하도록 했으며 결과적으로 이들이 '문고리 3인방'으로 까지 불리게 했던 근인(根因)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은 1998년 국회의원으로 첫 당선됐을 때의 보좌진을 단 한번도 교체하지 않았을 정도로 신뢰해왔고 청와대 비서관으로까지 발탁했다. 통상적인 '의원-보좌진 관계'를 넘어 가족같은 모습까지 엿보였다.

박 대통령이 재선 의원이었던 2002년 자택 오픈하우스행사를 가졌을 때도 그랬다. 당시 행사는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부총재이자 당내 대선후보 경선주자로 부상되고 있을 때, 서울 삼성동 자택을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한 것이었다.

현장에 갔던 후배기자에 따르면 "보좌진 부인들이 함께 모여 음식을 준비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가족행사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2004년 당대표로 외부 행사에 참석, 연설을 해야할 때였다.

당료들이 행사에 앞서 A4용지 몇장 분량으로 연설문을 만들어 의원실로 보냈는데 보좌진이 한 장으로, 그것도 손바닥 크기로 압축했고 박 대통령은 그것을 보며 연설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의 의중과 연설방식 등을 꿰뚫고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박 대통령에게 충직한, 가족같은 비서였고 실무능력에서도 신뢰감을 줬던 것이다.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14일 밤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서 고소인 자격으로 검찰조사를 마치고 귀가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4.12.14/뉴스1 © News1 한재호 기자

하지만 당 대표로 위상이 바뀌었음에도 박 대통령이 이전의 참모운영 방식을 고수해나갔던 게 문제점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주요 보고나 대표 면담 일정 등은 대표실 참모가 아니라 여전히 의원실 보좌진을 거치도록 했던 것이다.

때문에 중앙당사 대표실에 있던 당료출신의 참모들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고 의원들까지 이들 보좌진에게 더욱 의존하게 됨으로써 당내 비판이 제기됐던 것이다.

이같은 비판은 대선을 치르면서 더욱 고조될 수 밖에 없었다.

2012년 대선때 보좌진이 선거캠프에서 후보 일정 ·메시지· 정책 등을 맡으며 후보 주변을 사실상 둘러싸게 되면서 빚어졌다. 주요 정책 등을 보고하기 위해 후보를 면담하려고 해도 이들을 통해야만 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선캠프 관계자는 "게다가 대선 때였던 만큼 캠프에 참여한 정치인들 입장에선 후보에게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어느 때보다 생색을 내고 싶었을 것이고 눈도장도 찍고 싶었을 것인데 이런 기회가 보좌진에 의해 번번이 막히게 되면서 비판이 더욱 거세졌던 측면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결국 소통문제가 불거졌고 이들에 대한 2선 퇴진 요구로 이어졌다.

당시 대선때 새누리당 비대위원 출신의 일부 인사들은 "박 후보가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주변 실세 측근들에게 포위돼 충언에 대한 수용과 협의를 위한 소통이 차단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후보의 일정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비서진도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같은 상황과 맞물려 이들 보좌진을 겨냥해 '십상시(十常侍)'라는 비난도 들리기 시작했다. 실무 보좌진이 후보를 업고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등의 지적이었다.

십상시란 이들을 주축으로 이들과 가까운 몇몇 보좌관 등이 가세한 그룹을 지칭한 것이었으며 대선캠프에서 실무책임자들로 뛰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인수위원 후보군에 대한 막바지 검증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인수위 행정실에 배속된 박근혜 당선인의 최측근 안봉근 비서관이 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인수위는 주말까지 후속 인선 작업을 마무리 한 뒤 다음 주부터 공식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2013.1.3/뉴스1 © News1

보좌진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의존도는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용인술때문에 더욱 커졌을 수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경우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였을 때 사무총장을, 2007년 대선후보 경선땐 박근혜 후보 측의 총괄조직본부장을 맡는 등 친박계의 좌장(2인자)역할을 했으나 이명박 정부때 박 대통령 뜻에 맞서 원내대표 출마를 강행하는 등 정치적 위상을 강화하려 하자 친박계에서 쫒겨났다. 특히 정부 측의 세종시 수정안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자 박 대통령은 "친박계에 좌장은 없다"는 말로 내쳤던 것이다.

나아가 박 대통령과 다른 입장을 보이거나 쓴 소리를 한 경우, 혹은 튀는 행동을 한 정치인들도 눈밖에 나기 일쑤였다.

친박계 한 의원은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으로선 정치적인 셈법에 능한 정치인들과 달리, 보좌진은 충직한 참모로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때문에 더욱 의지하게 됐을 듯하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보좌진에 대한 2선 후퇴요구가 있었을 당시 언론과의 간담회에서 "내부 권력간 자리다툼이 있는 게 정치권 특징"이라는 쪽으로 상황을 정리한 데서도 엿볼 수 있다.

현 정부 출범이후 청와대에서도 이들 3명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의존도에는 변함이 없는 것같다. 그래서 대선캠프때처럼 불통문제도 계속 지적되고 있다.

수석비서관들조차 대통령 면담이 어렵고, 보고해야 할 경우엔 이들 보좌진을 거쳐 간접보고한 뒤 그 결과를 통보받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권력의 생리상 자연스레 3인방쪽으로 힘이 쏠리게 됐을 것이다.

결국 의원→당대표→대선후보→대통령 등으로 그 역할과 위상이 바뀌어져 왔음에도 참모시스템의 골격은 그대로였던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들에게 그만큼 깊이 의존해왔던 셈이다. 1998년 의원으로 첫 당선된 이후 17년째다.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 © News1

때문에 이번 의혹파문과 관련해 문고리 3인방을 교체해야 한다는 여론이 잇따르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박 대통령의 용인술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한 말이다.

게다가 이번 파문과정에서 박 대통령은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으로부터 사실상 '배신'당한 것으로도 비쳐져 '아픈 과거 기억'을 다시 떠올릴 지도 모른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청와대 집무실로 장관인 그를 불러 수첩을 꺼낸 뒤 문화부 국·과장을 거명하며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며사실상 교체를 지시했다는 언론보도에 대해 유 전 장관은 "대충 정확한 정황 이야기”라고 확인해줌으로써 박 대통령을 궁지로 내몰았던 것이다. 이는 박 대통령이 비선실세로 꼽히는 정윤회 씨의 딸 승마 국가대표 특혜발탁 논란과 관련해 정씨 부부의 부탁을 받고 문체부 국·과장 인사에 간여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할 수 있는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경우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에 변화의 여지는 좁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여론이 그 어느때보다 박 대통령에게 싸늘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지난 8∼12일 여론조사 결과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1주일전에 비해 6.6%p나 하락한 39.7%를 기록했던 것이다(표본오차, 95%신뢰수준에 ±2.0%p). 대통령 취임이후 최저 수준이기도 했다.

국정운영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일주일만에 6.3%p나 상승, 52.1%가 됐다. 국민들중 절반 이상이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의미다.

앞서 여론조사 전문기관 디오피니언이 지난 30일 실시한 조사에선 국정개입 의혹에 대해 55.8%가 "사실일 것"이라고 답했다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5%p).

이런 여론을 등에 업고 야당도 특검과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선실세 국정농단·청와대 외압규탄 비상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14.12.17/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박 대통령으로선 국정개입의혹 파문을 근거없는 것으로 일축하고만 있기엔 고단한 상황에 처해있다. 의혹 문건의 진위여부와는 별도로 국정운영방식을 바꾸는 정치적 결단을 놓고 고민할 수도 있다.

문고리 3인방을 지킬 것인가, 정치적 결단을 할 것인가.

박 대통령은 지금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려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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