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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앞에서 눈물 쏟은 워킹맘 간호사 "이제는…"

<뉴스1-고용노동부 공동기획> 근로시간 줄이고 행복 더하기②
만성 인력부족·높은 이직률·잦은 노사분쟁 보건의료업계 새 희망

(서울=뉴스1) 한종수 기자 | 2014-11-25 18:29 송고 | 2014-11-26 10:24 최종수정
전북 익산의 연세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 © News1
전북 익산의 연세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 © News1

전북 익산의 연세요양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워킹맘 김윤주(32·가명)씨는 1년 전 서러웠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핑 돈다.
20개월 갓 지난 둘째 딸 아이는 엄마를 못 알아보기 일쑤였다. 야간 당직 근무를 마치고 친정 집에 돌아온 윤주씨가 아이에게 손을 내밀면 딸 아이는 외할머니를 꼭 붙잡고 울며 난리를 쳤다.

"매월 야간근로를 18일씩 하기 일쑤고 쉬는 날엔 자느라 바빠서 아이를 돌볼 겨를이 없었죠. 친정엄마한테 아이를 맡기곤 했는데 아이가 엄마를 못 알아보는지 내게 오려고 하지 않더라고요. 눈물을 왈칵 쏟았어요 그때…."

일을 그만두자는 생각은 하루에도 몇 번. 하지만 빠듯한 맞벌이 살림에 두 아이를 키우려면 그럴 수는 없었다. 어느 날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병원이 급여를 보전하면서 열악한 근무 환경을 확 바꾼다는 것이다.

병원 업무 특성과 직무 분석을 토대로 설계한 교대제 개편 전과 후. © News1
병원 업무 특성과 직무 분석을 토대로 설계한 교대제 개편 전과 후. © News1

◇우수 인력 확보·경쟁력 강화…임금 100% 보전 속 교대제 개편
연세요양병원은 1997년 개원 후 준종합병원으로 꾸준히 성장했다. 의료서비스 수준은 높았지만 만성적인 인력난과 장시간 고된 업무로 병원을 그만두는 근로자들이 많아 인사노무 관리에 어려움이 컸다.

게다가 지역 내 동종 병원이 여러 곳 생기면서 무한경쟁에 따른 고난은 배가 됐다. 우수 인력을 확보하고 내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근로자들의 삶의 질과 자기계발을 보장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을 단축해야 했다.

연세요양병원 의료진과 간호사. © News1

하루 12시간씩 교대 근무하는 요양보호사와 하루 12~13시간 오래 근무하는 조리직의 경우 근무자의 신체적 부담과 피로도가 컸고 노동법에 저촉되는 문제도 생겼다. 그래서 빼내 든 카드가 교대제 개편이다.

연세요양병원은 병원 특성을 고려해 조리직은 신규 인원을 늘려 초과 근로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1일 2교대로 바꾸고, 요양보호사도 인력 10여명을 채용해 3조2교대(4근2휴) 형태로 전환했다. 특히 근로자들의 소망이던 보상휴가제도를 만들어 휴무 시간도 보장했다.

하지만 임금 하락에 대한 거부감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다행이 병원 측에서 기존 임금수준으로 100% 보전을 결정하면서 걸림돌이 제거됐다. 인접 병원과 인력 충원 경쟁에서 이기고 재직 근로자들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한 최선의 결정인 셈이다.

최근 윤주씨는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늘었다. 휴무일이 늘어나니 피곤과 스트레스가 사라졌다. "예전처럼 고된 업무를 계속했더라면 오래 못 버텼을 것 같다. 지금은 일·육아 모두 능히 해낼 자신이 생겼다"는 그는 더 이상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장시간 근로 개선…직원에 대한 투자이자 병원 발전의 디딤돌

열악한 근로문화를 개선하자는 분위기는 보건의료 분야에서 거세다.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평균 근로시간은 감소하는 추세인데 반해 보건의료 분야는 점차 증가하면서 인력 부족과 이직 현상이 심화한 탓이다.
 

나은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 © News1

다행히 근로시간 단축을 직원들에 대한 투자이자 병원 발전의 디딤돌로 생각하는 의식이 높아지는 등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장시간 근로 문화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은 여러 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최근 전북 전주시에 있는 나은요양병원도 임금 감액 없이 교대제를 개편해 이직률을 크게 떨어뜨려 안정된 직장이자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으로 자리매김하면서 호감도와 업무능력을 높였다는 평가다.

이보다 앞서 전북 전주의 효사랑전주요양병원과 경기 남양주의 메디피아산부인과도 2년 전 장시간 근로개편을 통해 근로자들이 일과 가정 모두에 충실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최근엔 좋아진 근무환경이 입소문이 나면서 병원에 취직하려는 지원자가 늘기도 했다.

장시간 근로개선 컨설팅을 담당하는 노사발전재단의 한 관계자는 "이들 병원은 교대제 전환 후 근로자들의 근무 환경이 눈에 띄게 달려졌고 업무 집중도와 효율도 향상되면서 근로자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싶은 병원으로 자리잡았다"고 평가했다.

불과 1~2년 전만 하더라도 불규칙하고 열악한 근무로 인한 건강 문제와 직업 불만족이 업무 효율을 떨어뜨려 의료사고의 원인이 되는 등 여러 문제점이 노출됐지만 이런 악순환은 이들 병원들에겐 옛말이 되어버렸다.

전주효사랑병원 간호사가 환자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 News1
전주효사랑병원 간호사가 환자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 News1

◇인력난·이직 걱정 vs 업무능률·서비스질 향상…병원의 선택은?

만성적인 인력부족과 높은 이직률, 심지어 잦은 노사 분쟁으로 바람 잘날 없는 보건의료 업계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장시간 근로 개선'이 좋은 해답이라고 조언한다.

보건학계 한 관계자는 "국내 간호사 면허 소지자는 31만여명이지만 실제 근무자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데 이는 국가적인 큰 낭비"라며 "일하는 기쁨, 건강한 가족 형성 등을 위한 일터 만들기에 이제 병원들이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장시간 근로 개선은 개인 능력개발, 생산적 여가활동로 이어지면서 삶의 질을 높이고 가족가치를 복원할 수 있는 계기"며 "근무 효율화에다 고품질 의료서비스로 이어지면 경쟁력까지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택은 병원 경영진에게 달렸다. 만성적인 인력난·이직·노사분규 등에 시달리며 경영난까지 몰고 오는 악순환에 빠질 것인지, 열악한 근로 문화를 개선해 업무능률과 서비스 질을 높여 사랑받는 병원으로 거듭날 것인지 말이다.


jep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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