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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터치]기업시장의 '큰손' 국민연금의 '소탐대실'

삼성중공업-엔지니어링 차익 노린 주식매수청구, 합병무산에 주가만 하락
기업 영향력 갈수록 높아질 듯...단기차익보다 기업의 장기성장 배려해야

(서울=뉴스1) 최명용 기자 | 2014-11-21 16:46 송고 | 2014-11-21 18:20 최종수정
국민연금공단 © News1 2014.11.17/뉴스1 © News1


"100세 시대 동반자, 평생월급 국민연금"
국민연금이 내걸고 있는 표어다. '차근차근 준비하고 차곡차곡 쌓다보면 노후가 행복해질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최근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꼭 필요한 제도라는 인식은 갖고 있지만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따른다. 국민연금을 낼 바엔 차라리 그 돈으로 개인이 자금을 운용하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국민연금 수익률은 전세계 6대 연기금 중 꼴찌다.

어쨌든 운용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자본시장에서 국민연금의 파워는 갈수록 막강해지고 있다. 국민연금의 규모는 455조원으로 글로벌 4대 연기금으로 꼽힌다. 명실공히 국내외 금융시장의 '큰손'이다. 국내 상장기업들의 지분을 평균 6.4% 확보하고 있고, 2020년에 이르면 이 지분율이 8.7%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2040년엔 자산규모가 2400조원까지 늘어날 것이므로, 국민연금의 주식시장 지배력은 더 커질 것이 자명하다.

시장지배력이 커지는 만큼 '입김'도 세질 것이다. 최근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을 무산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민연금은 두 회사의 합병을 반대하고 나섰고, 그 결과 주식매수청구가 몰려들었다. 이 자금을 감당할 수 없게 된 두 회사는 합병을 '없던 걸로' 했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은 합병을 통해 부실을 해소하고 육상플랜트와 해상플랜트 사업을 병행해 시너지를 낼 계획이었다. 국민연금은 이같은 합병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혔고 주식매수청구권까지 행사했다.
삼성중공업은 당초 9500억원어치 약 15%, 삼성엔지니어링은 4100억원 규모 약 16%의 주식매수청구권이 접수되면 합병을 해제한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삼성중공업 지분은 5.91%,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은 6.59% 수준으로 이 중 상당 규모가 주식매수청구권으로 나왔다. 주식매수청구권 신청 규모는 삼성중공업 9235억원, 삼성엔지니어링 7063억원으로 집계됐다. 국민연금 외에 펀드나 개인 투자자도 다수 주식매수청구권을 접수했지만 결국 국민연금이 합병 무산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합병 무산과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많아진 데엔 주가 약세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삼성중공업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한인 17일 종가 2만5750원에 거래됐고 삼성엔지니어링은 6만8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반면 삼성중공업 주식매수청구 가격은 2만7003원, 삼성엔지니어링은 6만5349원으로 정해져 있었다.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사고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삼성중공업은 주당 1250원, 삼성엔지니어링은 4500원 가량을 이익볼 수 있다. 일반적인 펀드나 개인 투자자라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게 합리적이고 당연한 결론이다.

국민연금도 이같은 선택을 했다. 주가차익을 노리고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결과적으로 국민연금은 합병을 무산시키고 주식차익은 얻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이 무산된 뒤 두 회사 주가는 더 크게 하락했다. 합병이 무산됐다고 발표한 19일 삼성중공업은 주가는 6.3%, 삼성엔지니어링 주가는 9.3% 하락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반등을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21일 종가는 삼성중공업 2만3550원, 삼성엔지니어링 5만2300원이다. 

증시에선 두 회사의 합병 무산이 기업가치에 부정적이라고 판단한 셈이다. 삼성중공업과 엔지니어링이 합병할 경우 육상 해상플랜트 부문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삼성중공업이 시행착오를 겪었던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설계 능력과 시너지를 낼 수 있고 삼성엔지니어링은 재무구조를 개선하면서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복잡해지는 플랜트 발주 시장에서 육상과 해상을 연계한 경쟁력 있는 수주도 가능했다. 장기적으로 두 회사의 기업가치는 더 올라갔을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의 합병 반대로 이같은 시너지는 장기 과제로 남게 됐다. 향후 사업적 협업을 하거나 부문별로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기업가치 제고는 느려지는 게 불가피하다.

시장 영향력이 절대적인 국민연금이라면 조금은 다른 판단을 내려야 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영향력을 보여주고 기업 길들이기엔 성공했지만 수익률 제고와 장기 투자성과란 면에선 놓친 게 더 크다. 

국민연금은 최근 기업들이 배당을 늘리도록 하고 주주총회 임원 선임 반대 의사를 표하기도 하는 등 주주권 행사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기업들에게 배당을 늘리도록 하면 당장은 국민연금의 수익률 개선엔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의 장기 성장성을 담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배당만 했다면 장기성과는 더 떨어질 뿐이다. 

국민연금의 규모가 더 커지면 이같은 움직임은 더 강해질 전망이다. 2040년 자산규모 2400조를 확보하면 상장 기업 대다수의 대주주를 국민연금이 차지할 수 있다. 국민연금이 이처럼 단기 차익에만 방점을 두고 의사 결정을 한다면 대한민국 기업들의 미래 성장성은 담보하기 힘들다. 

국민연금은 내세운 표어처럼 100세 시대를 대비하는 연금이다. 자산운용의 판단 잣대도 100년 앞을 내다보는 게 맞다. 최소한 기업의 중장기 성장성에 대해선 담보해주고 주주권을 행사하는 게 맞지 않을까. 


xp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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