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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공책]지금 당신은 설경구 일생일대 무대를 보고 계십니다

(서울=뉴스1스포츠) 장아름 기자 | 2014-10-25 13:05 송고 | 2014-10-26 09:38 최종수정

스타니슬라프스키의 학설에 따르면 메소드 연기는 연기자가 배역 그 자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물의 특징을 단순히 스크린에 ‘형상화’하는 것이 아닌, 캐릭터를 ‘내면화’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메소드 연기인 셈이다. 배우들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체득한 것들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인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고로 메소드 연기는 연기자의 대상 관찰 능력, 그리고 풍부한 상상력이 요구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영화 ‘나의 독재자’(감독 이해준)는 설경구의 메소드 연기로 진한 감동을 선사하는 영화다. 설경구는 자신이 진짜 김일성이라 믿는 아버지 성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성근은 무대 위 주인공을 꿈꾸지만 현실은 잡일만 도맡아 하고 있는 무명배우다. 그런 그가 난생 처음 무대에 주연으로 설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김일성이라는 배역에 모든 것을 쏟아 붓게 되면서 스스로를 진짜 김일성이라고 믿게 되기에 이른다.

오는 30일 개봉되는 영화 ´나의 독재자´가 설경구의 열연으로 예비 관객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 영화 ´나의 독재자´ 스틸
오는 30일 개봉되는 영화 ´나의 독재자´가 설경구의 열연으로 예비 관객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 영화 ´나의 독재자´ 스틸

‘나의 독재자’는 1972년 남북정상회담 리허설을 위해 김일성 대역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팩트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단 하나의 팩트를 바탕으로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 영화의 주된 과제였다. 이해준 감독은 팩트 위에 부자관계의 이야기로 스크린을 채우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이 모든 이야기를 함께 해줄 배우의 열연이 필요했다. 설경구는 감독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줄 단 하나의 배우였다.

설경구의 메소드 연기는 극 초반부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극 중 성근이 첫 무대를 위해 거울을 보며 광대로 분장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카메라가 이 장면을 오래 비추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긴다. 생애 첫 무대에 서는 기회를 잡은 성근의 설레는 감정과 두렵고 떨리는 심정이 동시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를 광대 분장으로 덮는 성근의 모습에서 묻어나는 진한 페이소스는 인물의 사연에 깊이 집중하기 전부터 진한 울림을 준다.

광대의 비애는 온통 진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성근의 모습에서 감정 전달력을 극대화한다. 성근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대사를 잊어먹고, 연극을 망치게 되는데 이때 성근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어린 아들 태식의 표정과 관객석을 아득히 바라보는 성근의 모습이 교차되며 현장의 숨 막히는 공기를 사실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유려한 카메라 워킹은 설경구의 메소드 연기를 마주하게 하고, 화이트 아웃 효과 편집은 극적인 순간에 힘을 더한다.

무엇보다 영화는 성근이 스스로를 김일성 배역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관객에게 납득시켜야 한다는 과제가 있었다. 설경구의 디테일한 연기가 켜켜이 쌓여 완전한 설득력을 갖추게 된다. 허교수(이병준 분)로부터 연기수업을 받는 과정에서 홀로 상황극을 연출하거나, 완벽한 김일성을 연기하기 위해 미친 듯이 살을 찌우고 뒷목에 혹을 만들기 위해 쉴 새 없이 목을 긁어대는 등의 과정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관객은 결국 점점 히스테릭해지는 성근에게 완전히 몰입할 수밖에 없게 된다.


배우 설경구가 오는 30일 개봉되는 영화 '나의 독재자'에서 김일성 역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무명 배우 성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 영화 ´나의 독재자´ 스틸
배우 설경구가 오는 30일 개봉되는 영화 '나의 독재자'에서 김일성 역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무명 배우 성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 영화 ´나의 독재자´ 스틸

엄밀히 말하면 극 중 성근의 역할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배우로서의 성근의 모습과 아버지로서의 성근의 모습으로 나눠졌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역할이 유기적으로 비쳐지는 까닭은 성근의 모든 행위가 아들의, 아들에 의한, 아들을 위한 연극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성근의 모습 역시 일종의 복선처럼 다가온다. 캐릭터를 내면화하는 과정이 없었다면 이같은 디테일한 연기가 불가능했을 터다. 설경구의 치밀한 캐릭터 분석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는 연기였다.

‘나의 독재자’는 성근의 일생일대의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설경구의 무대 자체를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게 만든다. 영화가 크게 1막, 2막 구성으로 구분되고 성근의 연극이 또 하나의 무대를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다. 물론 작품의 만듦새도 훌륭하지만, 작품의 의도를 설경구의 연기가 대부분 뒷받침해주고 있는 만큼 그의 메소드 연기가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할 수 있겠다. 분명 설경구 필모그래피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이 되는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는 30일 개봉.


aluem_ch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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