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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살, 여전히 취업준비생…"여긴 어디? 난 누구?"

전쟁터 같은 취업시장, 고스펙·경영대·인턴도 울상
용돈 받는 것도 서러운데 공기업 '역차별'에 또 한숨

(서울=뉴스1) 사건팀 | 2014-10-23 14:02 송고 | 2014-10-23 18:59 최종수정
'2014 대구·경북 강소기업·청년 채용박람회'가 지난달 30일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개최돼 입사지원자들이 길게 줄을 서서 면접을 기다리고 있다. (이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합니다) © News1 정훈진 기자
'2014 대구·경북 강소기업·청년 채용박람회'가 지난달 30일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개최돼 입사지원자들이 길게 줄을 서서 면접을 기다리고 있다. (이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합니다) © News1 정훈진 기자

취업준비생 김모(28)씨는 요즘 공부를 할 때면 "여긴 어디? 난 누구?"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대학 졸업 후 공무원 준비를 하던 자신이 어느덧 IT업체 취업을 목표로 C언어(시스템 기술언어)를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가 진로를 바꾼 것은 지난 6월 공무원시험을 치른 뒤다. 수험생활을 시작한지 2년6개월 만이다. 조금 더 준비하면 될 것도 같았지만 그동안 경제적으로 신세를 진 부모님에게 차마 "1년만 더"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IT업체가 자신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지만 나이 30을 코 앞에 둔 그에게 이런 위안은 사치에 불과하다. 요즘 그의 머리 속에는 당장 중소기업에 들어가 경력을 쌓아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다. 대기업은 뒷전으로 밀린지 한참이다.

    

김씨는 "유독 나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업계 특성 때문에 빨리 취업이 안되면 어떻게 하나 불안하고 초조하다"며 "주말에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도 알아보고 있지만 이조차 당장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 장남으로서 집안에 죄송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김씨를 비롯한 대졸 취업재수생은 현재 50만명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올해 48만명이 추가로 취업시장에 뛰어들어 100만여명의 청년들이 일자리를 놓고 경쟁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반기 취업시즌을 앞두고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려워진 취업시장과 청년들의 취업준비 백태를 들여다봤다. 

    

◇ "인턴서 바로 정규직 될 줄 알았는데…" 1년째 구직에 '초조' 

지난해 8월 서울 소재 여대를 졸업한 이모(26·여)씨는 패션회사에서 무역 일을 하는 게 꿈이다. 경력직을 많이 뽑는 추세라 실무경험을 쌓기 위해 외국계 회사 인턴도 했다.

    

하지만 이씨는 남들이 다 갖춘 학점, 토익점수 등 기본 스펙과 여러 차례의 인턴 경험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간 취업시장에서 계속 낙방했다. 최종면접까지 간 적도 많았지만 합격 소식은 듣지 못했다.

    

이씨는 요즘 국내 한 패션회사에서 인턴을 하다 정규직 전환을 위한 시험을 보고 있다. 처음 인턴으로 일할 땐 당연히 정규직 전환이 될 줄 알았는데 회사는 세 번의 면접을 거쳐 소수자를 선발하겠다고 말했다.

    

'을'의 입장인 인턴은 회사의 방침을 따를 수밖에 없다. 첫 번째 면접을 보고 2주째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이씨는 혹시나 자신이 탈락한 건 아닌지 초조한 마음이다.

    

맏딸인 이씨는 마냥 취업준비만을 할 수 없어 10개월간 영어강사를 하며 돈을 모았다. 하지만 매달 학원비, 생활비 등으로 들어가는 돈 때문에 해외취업을 대비해 모아 놓은 1000만원이 바닥났다.

    

이씨는 "부모님이 은퇴하시고 나만 바라보는 것 같아 압박감도 많이 든다"며 "집에서 충분하게 지원받으며 취업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속상하기도 하고 취업기간이 늦어져 죄송하기도 하다"고 말끝을 흐렸다.

    

이씨는 틈틈이 공장에서 라벨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으로 용돈을 쓴다. 어학연수도 다녀왔고 대학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이러고 있어야 하나 싶은 생각에 눈물이 날 때도 많다.

    

이씨는 "처음에는 뭔가 큰 걸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으로 야심차게 취업시장에 뛰어들었는데 이제 많이 지친다"며 "하지만 남들보다 조금 늦게 가는 거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지난 22일 경동대학교 취업사관교육센터는 교내 4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심층 모의면접을 실시했다. (경동대 제공. 이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합니다) 2014.10.22/뉴스1 © News1
지난 22일 경동대학교 취업사관교육센터는 교내 4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심층 모의면접을 실시했다. (경동대 제공. 이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합니다) 2014.10.22/뉴스1 © News1

◇ "부모님 노후자금 빌려쓰는 느낌"…늦어지는 취업, 늘어가는 부담감 

취업연령이 올라가면서 서른 가까이 되도록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받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취업준비생 박모(29)씨는 이번 달에도 지방에 계신 부모님께 연락을 드려 30만원을 받았다. 그는 "워낙 자기소개서를 많이 쓰는 데다 언제가 인적성시험일지, 면접일지 모른다"며 "준비해야하는 시간도 있고 마음도 불안해 아르바이트를 할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박씨는 평소 아르바이트를 통해 빠듯하게 생활해왔지만 취업시즌이 시작되면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자기소개서 작성과 인적성시험·면접 준비에 모든 시간을 쏟아 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부모님의 노후자금을 빌려 쓰는 느낌"이라면서 "'언젠가 갚아야지, 언제 갚을 수 있을까'하는 마음도 든다"고 토로했다.

    

취업준비생 배모(27)씨는 "워낙 취업이 어려우니 집안이 어려운 친구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라도 일단 들어가려고 한다"며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사회가 원망스러울 것 같다"고 말했다.

    

◇ '고스펙' 취업준비생 "중소기업은 아까워"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A(30)씨. A씨는 학점은 물론 영어성적, 해외연수 경험, 자격증 등을 보유한 이른바 '고스펙'이다. 남부럽지 않은 실력으로 졸업 후 2년째 대기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취업에 실패했다.

    

첫해에는 대기업 시험, 면접 전형 등을 배우고 다듬는 시간이라 여겼지만 2년째 최종관문에서 번번이 미끄러지다보니 A씨 마음은 조급해졌다.

    

A씨와 같은 고스펙 보유자가 여전히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에 주변사람도 의아해한다. 부모님과 친구들은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려보면 어떻겠냐고 종종 권유를 한다.

    

하지만 A씨의 마음은 확고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때까지 공부하고 준비해온 것들이 너무도 허무할 것 같다'는 것이다.

    

급여부터 후생복리, 주변 평판, 훗날 이직 가능성 등을 염두한다면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것은 이래저래 손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지난 19일 서울 장충동 동국대학교에서 진행된 SK그룹의 인적성시험 SKCT(SK종합역량평가)에 응시한 취업준비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합니다)/뉴스1 © News1
지난 19일 서울 장충동 동국대학교에서 진행된 SK그룹의 인적성시험 SKCT(SK종합역량평가)에 응시한 취업준비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합니다)/뉴스1 © News1

◇ "아! 잘 나가던 경영대마저" 

K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이모(27)씨는 최근 들어 웃는 날이 별로 없다고 털어놨다. 이번 학기가 졸업학기여서 졸업과 취업을 해야 하지만 서류전형에서 번번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남들 다 하는대로 공채가 뜬 기업에 원서를 모두 냈다. 50여곳은 될 것"이라며 "그런데 필기까지 합격해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한 곳은 고작 2곳 뿐"이라고 말했다.

    

대학입학 당시 '취직이 잘 될 것'이라는 기대로 경영학과에 원서를 냈지만 현실은 달랐다. 군 제대 후 취업 불안감에 1년 동안 휴학계를 내고 행정고시를 준비하기도 했다. 행정고시마저 떨어지자 다시 학교에 돌아와 취업준비를 하고 있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았다.

    

이씨는 "1학기부터 준비했지만 사기업은 계속 떨어졌고 믿을 곳은 공기업 뿐이에요. 절박함이 없어서 계속 떨어진 건지도 모르겠네요"라며 "주변을 둘러봐도 '경영학과가 취업이 잘 된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라고 말했다.

    

또 "경영학과라고 해도 이제 예전처럼 무조건 취업시켜주는 분위기가 아니니 인사관리면 인사관리, 재무관리면 재무관리 등 특정 분야를 정해서 취업을 준비하라는 조언을 들었다"며 "하지만 취업준비생 입장에서 그런 걸 가릴 수 있나, 일단 무작정 준비하고 뜨는 대로 쓰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얼마 전 책을 보니 한 사립대는 한 학교 인원의 25%가 경영학과 학생이라더라"며 "경영학과 학생들이 너무 많아 우리끼리 경쟁도 너무 치열하다"고 덧붙였다.

    

◇지방이전 공기업 역차별 논란 

공기업 채용시장도 시끄럽다. 지방 이전에 따른 '역차별' 논란이 대표적이다.

    

내년 9월 강원 원주로 옮겨갈 예정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올해 채용에서 지역인재를 우대하겠다고 밝혔다. 충북혁신도시로 이전하는 한국가스안전공사도 마찬가지다.

    

이를 놓고 인터넷 카페 '공준모' 등지에서는 비판이 잇따른다. 지방이전을 이유만으로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이들을 역차별한다는 것이다.

관련법에 따르면 공공기관 등은 전체 채용인원의 35% 이상을 지역인재로 뽑아야 한다. 다만 이전 지역의 대학생을 우대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공공기관 취업을 준비하는 김모(25)씨는 "특정 지역 수험생들을 우대하는 것은 명백한 특혜"라고 말했다.

    

채용과정에서도 서울 출신 수험생들의 고행은 계속된다. 2시간여의 필기시험을 보기 위해 왕복 대여섯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면접날엔 새벽에 메이크업을 받은 뒤 첫 차를 타고 간다. 지방 혁신도시 인근에는 이렇다할 숙박시설도, 메이크업을 받을 곳도 없는 탓이다.

    

이를 놓고 그동안 차별받았던 지방 수험생들이 이제야 제대로 대접받는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광주광역시에서 대학을 졸업한 이모(28)씨는 "지역 수험생들이 서울로 가는 고충을 토로할 땐 당연하게 취급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재현 김수완 박응진 오경묵 구교운 성도현)




pej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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