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 경제 >

"규제완화 호소해야하는데..어..의원님 다가셨네"

증권업계 규제 개혁 '절규'에도 정부·국회는 '호통'만…

(서울=뉴스1) 이지예 기자 | 2014-10-21 18:36 송고
 2014.10.17/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2014.10.17/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보이지 않는 규제를 과감하게 풀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입법활동이 신속히 이뤄져야 하는데..어.. 오늘 참석한 의원님들 다 가셨네"
국정감사 기간인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한국개발연구원(KDI)·금융투자협회 공동 심포지엄'은 금융규제 완화를 둘러싼 업계와 정부·정치권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을 여실히 보여주는 자리였다.

'고령화 저성장 시대, 금융투자산업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는 350명이 넘는 업계 종사자들이 참가해 만원을 이뤘다. 좌석이 부족해 구석에 자리를 잡거나 아예 서서 발표를 지켜보는 이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주최사인 금투협 측에서도 예상치 못한 성황에 놀라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행사에는 금융정책을 소관하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금융당국 관계자, 증권·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가 여럿 함께하기로 했다. 정부와 정치권, 업계 주요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한 자리에서 가감없이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자주 있지 않다.

금융투자업계는 이를 의식한 듯 규제완화의 목소리를 높였다. 박종수 금투협 회장은 정치·당국자들을 앞에 두고 5분 남짓한 개회사를 하면서 "업계의 어려움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으로 비용 절감, 신규 비즈니스 발굴 등 자구적 노력을 하지만 턱이 높다"며 "빠른 실행 위주의 규제 개선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정치권과 당국의 반응은 호응과 거리가 멀었다. 정우택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 정무위 여야 간사인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과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날 '축사'에서 업계의 고충을 이해한다면서도 투자자 신뢰 회복이 '먼저'라고 선을 그었다.

이들 의원은 "금융투자업의 기본은 위험을 감수하고 책임을 본인이 지는 것으로 관련 정책의 핵심은 국민 소비자의 자산을 보호하는 것이 돼야 한다", "투자의 자기책임 원칙을 관철하려면 회계 투명성, 신용평가 객관성, 불완전판매 문제 해소로 고객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거기다 '정무위 3인방'은 업계에 '자기 반성'이라는 과제를 던져놓고 개회 30여분 만에 급히 자리를 떴다. 잠시 뒤 국회에서 열리는 정무위 국정감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자리하기로 한 정무위 소속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과 신제윤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개별 일정으로 얼굴을 비추지 못했다. 신 위원장이 축사를 대신해 전한 문서에는 "관련 규제개혁을 속도감 있고 과감하게 추진해 나가겠다"는 형식적인 인사가 담겼다. 

결국 행사는 패널로 남은 이현철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을 제외하면 업계와 학회 인사만 가득한 '반쪽자리' 토론장이 되고 말았다. 이어진 세션에서는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 강신우 한화자산운용 대표이사, 길재욱 한국증권학회 회장 등이 '금융투자산업의 발전 방향'을 놓고 각자의 구상을 풀어놨다. KDI의 설문조사에서 국내 증권사의 55%가 '증권업에 대한 규제'를 우리나라 증권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한 것처럼 해법은 하나같이 '규제 완화'로 모아졌다.

금융당국은 규제완화에 대한 데시벨 높은 요구에 직설적인 말로 불쾌함을 표시했다. 이현철 국장은 발언 차례가 되자 운용사의 영업용순자본비율(NCR) 완화부터 증시 가격제한폭 확대까지 올들어 추진된 규제 개혁 조처를 하나하나 열거했다. 이어 "외국에 있다가 한국에 와서 근무하는 이들에게 서울의 업계 환경이 런던, 뉴욕과 비교해 다른 것이 정부규제 뿐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국내 규제가 국제적으로 볼 때 수준이 지나쳐 산업이 약화됐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요구대로 규제를 풀어줬더니 증권사 직원이 자기명의 계좌로 불법거래를 하다 걸리는 등 업계의 부주의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토론은 "정부가 노력하고 있으니 업계도 창의력을 발휘해 달라"는 김빠진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이날 세미나를 본 박래신 한국밸류자산운용 대표이사는 금융산업 이해관계자들의 인식 간극이 큰 것에 대해 '결혼을 앞둔 한 남자를 둘러싼 고부 간의 갈등'과 같다고 비유했다. 

이날 심포지엄은 업계와 학계 위주의 열띤 토론이 장장 4시간 가까이 이어지면서 종료 시간을 30분이나 넘겨서야 끝이 났다. 연단 바로 앞 중앙에 정부·당국자들을 위해 마련된 귀빈석은 주인을 잃은 채 진즉 덩그러니 비어 있었다.


ezyeah@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