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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톡·茶Talk] 박정자 "극장 통째로 표 사줄 기업 없나요?"

"어려운 연극인, 연습비 제도 있어야…건강 허락할 때까지 '19 그리고 80' 공연하고 싶다"

(서울=뉴스1) 염지은 기자 | 2014-10-21 12:59 송고 | 2014-10-21 17:20 최종수정
오는 31일부터 국립극장에서 공연되는 '단테의 신곡'에서 프란체스카를 연기하는 배우 박정자씨. © News1
오는 31일부터 국립극장에서 공연되는 '단테의 신곡'에서 프란체스카를 연기하는 배우 박정자씨. © News1

"오늘 너무 기분이 좋아요. 점심때 네 사람이 밥을 먹었는데 세 사람이 연극 '단테의 신곡' 팀 도시락을 맡기로 했어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거지요. 그래서 살맛 나요. 하하…" 

지난 주말 오후 대학로에서 만난 연극계의 대모 박정자씨(73)는 후배들에게 점심 도시락을 제공하겠다고 나선 지인들이 있다며 신이 났다. 

그는 서울공연예술대축제(SPAF) 폐막작인 러시아 연극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를 보기 위해 아르코예술극장에 가는 길에 차 한잔을 놓고 기자와 만났다. 맨 얼굴의 그는 사진 찍기를 원하지 않았다.

가난한 연극인들을 위해 도시락 후원에 나서준 이들은 김영재 사진 작가, 박찬숙 전 의원, 권옥귀 본 화랑 대표다. 이들을 일일이 거명하며 감사의 뜻을 전한 그는 연극하는 후배들의 어려움을 안타까와하면서 출연료 외에 '연습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연극인복지재단에 따르면 연극인이 연극 창작 활동을 통해 받는 한 달 수입은 2008년 기준 평균 36만원이다. 연극인 중 62%가 다른 일로 생계비를 번다. 
그는 연습비 없는 후배들이 배를 곯을까 싶어 가끔 도시락이나 빵을 사들고 연습장을 찾는다. 때론 지인들에게 도시락 후원을 부탁하기도 한다. "광에서 인심 난나고, 음식업을 하는 기업들이 가난한 연극인들을 위해 도시락 후원을 많이 해주면 좋겠어요." 

연극인들의 어려움으로 시작한 그와의 대화는 예정된 30분을 넘어 2시간이나 이어졌다. "정말 할 얘기가 많다"며 특별히 묻지 않아도 이런 저런 얘기를 계속 쏟아냈다. 인터뷰 내내 어려운 연극인들을 걱정하는 그의 모습은 새끼를 챙기는 어미새 같았다. 

"연극인들이 고정 수입이 없어 참 가난해요. 쥐꼬리만한 출연료 주면서 '연습비'는 책정이 안돼 있어요. 젊은 친구들이 밤 10시까지 매일 치열하게 연습을 하며 에너지를 쓰는데 '연습비'는 따로 있어야 밥도 먹고 신발이라도 사 신을 것 아니에요. 옷이 빵구가 나는데." 

연극인들의 장례식장에 조화 하나 못보내는 서글픔도 토로했다. "연극인 누가 죽으면 연극인복지재단 조기(弔旗를) 보내요. 꽃도 못 보내. 그런 걸로 돈을 낭비하면 안되니까. 최근 어느 장례식장에 가서 1회용 컵과 숟가락, 젓가락, 냅킨에 기업 후원 로고가 박힌 것을 봤는데 너무 부러웠어요. 요즘 연극인을 위한 그런 스폰서를 구하고 있어요. 그런 걸로나마 장례식장에서 위로를 받으면 내 남편이, 내 아내가, 내 할아버지가 연극인이었다는게 자랑스럽지 않겠어요? 빌어먹을 4대 보험, 그게 있으면 유가족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될까." 

기사를 통해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은 이들도 많다. "최근에 가장 고마운 사람이 정몽준 전 의원이에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20억원을 기부하면서 그중 2억원을 연극인복지재단에 주라고 지정했어요. 연극인복지재단이 2005년 만들어진 후 벌써 6억원이나 후원해 주셨네요. 또 하나 기쁜 소식은 이번에 새로 온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복권기금에서 1억2000만원을 보내줬어요. 정말 큰 힘을 받아요." 

그는 요즘 아이돌 스타 못지 않게 가장 바쁜 연극배우다. 

25일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후원을 위한 낭독콘서트에 이어 오는 31일 개막하는 '단테의 신곡'과 11월27일부터 공연되는 '나는 너다'에 연이어 출연한다. 내년 1월부터는 그의 일생의 대작 '19 그리고 80' 공연이 기다리고 있다. 

서예박물관 낭독콘서트는 예술의전당 서예 담당 부장의 진실성에 감동해서, 연극 '나는 너다'는 자매처럼 지내는 윤석화씨의 4년만의 컴백작이라서 노 개런티로 출연하기로 했다. 

하지만 어디를 가나 최고 연장자 선배가 돼버린 그는 후배들을 위해 공연 티켓을 팔아줄 일이 걱정이다. 

"'단테의 신곡'은 하루 공연을 어느 기업에서 극장 객석 전체를 통으로 사서 보기로 했어요. 나도 선배가 돼서 표를 팔아줘야 하는데. 누구라도 알면 100장이든 200장이든 읍소하고 팔 것 같은데 내가 넉살이 없어 말을 못 꺼내. 극장을 통으로 사주면 제가 파티도 열어 드려요. 이것 좀 제일 크게 써서 좋은 소식을 주세요." 

쟁쟁한 정·재계 인사들을 많이 알면서도 연극 티켓을 사달라는 말을 못해 애를 태우던 그는 인터뷰를 빌어 기업들에게 연극 관람을 부탁했다. 

"크게 바라는 것도 아니에요. 함께 가자는 거지요. 아휴 내가 오늘 막 호소를 하네. 나 이렇게 구질구질 안했으면…" 




senajy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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