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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선원들, 승객구조 포기했던 것으로 보인다"(종합2보)

[세월호참사] 전문가 자문단 위원들 광주지법 증인 출석

(광주=뉴스1) 김호 기자 | 2014-09-23 18:20 송고 | 2014-09-23 21:29 최종수정
세월호 사고 당시 이준석(68) 선장과 선원들이 조타실이나 기관부 복도에 모인 것은 승객 구조를 포기한 모습으로 보인다는 전문가 판단이 나왔다.

이 전문가는 선장이나 기관장의 승객구조 지시가 없었더라도 나머지 선원들의 구조 의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광주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임정엽)는 23일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준석 선장과 선원 등 15명에 대한 제17회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증인으로는 세월호 사고 초기 검경 합동수사본부에 도움을 준 11명의 전문가 자문위원들인 한국해양대학교 이윤철(50) 교수와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김영모(41) 교수가 출석했다. 이 교수는 항해사 등 7년여 승선경력이 있는 해사법학 전문가다.

이 교수는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이 사고 직후부터 퇴선할 때까지 조타실이나 기관부 선실 복도에 모여 대기했던 점에 대해 "비상배치표에 따른 위치에서 퇴선을 준비하고 여객을 대피시켰어야 한다. 한군데 모였다는 것은 그런 상황(승객 구조)을 포기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일부 선원들은 '강한 위계질서상 선장이나 기관장의 명령이 없어서 승객 구조활동을 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지휘명령이 없으면 구조할 수 없는 것인가"라는 검사의 물음에 "(명령이 없어도) 일반 선원들도 구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국제협약, 법규와 규정 등은 선장에게만 모든 책임을 부과하는 게 아니라 모든 선원들이 (승객구조) 책임을 다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며 이 같이 답변했다. 이번 참사의 책임이 선장이나 기관장이 아닌 모든 선원에게 있다는 의미다.

그는 기관부 선원들이 3층 복도에 모여 승객 구조활동은 하지 않고 해경에 구조되길 기다린 데 대해 "비상배치표에 따른 (각자의) 위치에서 명령이 내려오길 기다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타실의 선원들이 "선장이 제대로 지휘하지 못했다"며 책임을 떠넘기는 데 대해서는 "차상위 계급자인 1등항해사 등이 (승객구조)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관리급(1항사 등) 선원들이 의사결정을 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이 교수는 비상상황시 선장의 지시가 없었다고 해서 나머지 선원들이 승객들을 구조해야 할 의무가 면제되는 것이 아니라며 검찰의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증언을 했다.

사고 해상인 병풍도 인근 해상이 '좁은 수로(협수로)'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국제해사기구(IMO) 국제협약 등에 명확한 정의는 없다"면서도 여러 사정을 고려할 때 좁은 수로로 봐야 한다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밝혔다.

이 교수는 "지리학적으로 폭 몇마일 이내만 좁은 수로라고 규정하진 않는다"며 "(폭은 물론) 수심, 조류, 선박 통행량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고 해상이 좁은 수로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견해를 바탕으로 "맹골수도 진입 후 병풍도 끝을 통과할 때까지 약 20분정도가 소요된다. (세월호 사고 당시 실제로는) 16분이 걸렸는데 이 시간 동안 선장이 직접 지휘하고 변침점에서 완벽히 변침 후 3등항해사에게 조타를 맡겼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해상의 관행이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한국해양수산연구원 교재의 '퇴선갑판으로 대피시 선내에 남은 여객이나 승무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선장, 기관장, 1항사, 사무장 등은 최종적으로 수색해야 한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선원들의 혐의인 살인, 유기치사의 피해자 범위에 승객뿐 아니라 남은 승무원들도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이 교수에 이어 증인석에 앉은 김 교수는 "많은 여객선 사고에서 사고의 (최종) 책임이 있는 선장은 일시적으로 공황상태에 빠진다. 이때 차상급자 선원은 선장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조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항공기에서도 부기장이 기장에게 조언을 할 수 있듯이 선원이 선장에게 조언을 할 수 있다. 특히 세월호 사고의 경우 선원들이 조타실에 모였으니 그 중 누구라도 조언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99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앞바다에서 발생한 선박 좌초 사고를 언급하며 세월호 선원들의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1991년 사고 당시 (도망간) 선장이 아닌 오히려 사무장이 나서 571명 전원을 해상에서 구조하기도 했다"며 선원들의 역할에 대해 언급했다.

김 교수는 카페리는 다른 선박과 달리 일단 침수되면 대부분 원상태로 회복이 불가능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선장과 선원들이 조기에 퇴선을 위한 준비에 나섰다면 많은 인명을 구조할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날 이 교수가 사고 해상인 병풍도 인근을 '좁은 수로'라고 본 것과 달리 김 교수는 좁은 수로는 아니지만 선장의 재선의무가 있는 항로라는 데 동의했다.


kim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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