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냄새'에 시민 코잡는 서울 상징 '은행나무', 어찌하오리까

서울시, 2017년까지 은행 안 열리는 '수나무' 교체 시범사업 계획 발표
25개 구청, 암나무 파악 미비…교체 예산, 사후 활용 방안도 잘 마련해야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2014-09-22 16:30 송고
은행나무가 도심에서 인간과 아름답게 공존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2014.09.22/뉴스1 © News1


#추석 연휴, 김모(가명)씨는 지방에 계신 어머니를 뵙고 올라오는 길에 얼굴을 붉혔다. 평소 깔끔한 성격의 김씨는 어머니가 뒷산에서 주워놓은 은행을 가져가라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어머니는 힘들게 모은 은행을 김씨가 가져가지 않는다고 하자 서운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씨는 그래도 3~4시간을 운전하는 동안 차 안에 퍼지는 은행냄새를 견딜 자신이 없었다. 

가을이면 황금빛 단풍을 뽐내며 우리들의 '눈'에 훌륭한 선물이 되는 은행나무. 하지만 암나무에서 열리는 열매, 바로 '은행'의 고약한 냄새로 '코'에게는 골칫거리다.


은행 열매는 기침과 천식은 물론, 야뇨증 치료에 도움이 돼 식용으로도 쓰이지만 가을철 길 위에 떨어진 잘 익은 은행을 잘못 밟았다가는 종일 곤혹스럽다.


은행나무는 도시 공해와 병충해에 강하다. 여기에다 수명이 길다는 특성이 있어 가로수로 인기가 좋다. 특히 거목으로 성장하는 은행나무는 수도 서울의 무한한 발전이라는 상징성과 맞물리며 지난 1971년 4월3일 서울시 시목(市木)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가을에 열렸던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9월20일~10월5일)과 1988년 서울올림픽(9월17일~10월2일) 기간 동안 은행나무의 아름다운 '단풍'으로 서울을 치장하기 위해 더 많이 심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2013년 기준 서울시 내 가로수 28만4498주 중 은행나무는 약 40%인 11만4198주로 가장 많다. 이 중 열매가 열리는 암나무는 2만6000여주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25개 구청 중 은행나무는 송파구(1만2868주), 강남구(8160주), 노원구(6543주)에 많이 식재돼있다. 영등포구(5921구), 강동구(5702주), 종로구(5505주) 등 대부분의 구청에서는 비슷한 분포를 보인다. 은행나무가 가장 적은 곳은 성동구(1159주), 광진구(1698주) 등이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신사역 '가로수길'에서도 은행나무는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 있다.


늘 우리 곁에 있는 만큼 냄새로 인한 민원은 해마다 끊이질 않는다. 이에 서울시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시는 가을철 악취의 주원인인 은행나무 열매를 줄이기 위해 오는 2017년까지 암은행나무를 열매가 열리지 않는 수은행나무로 바꿔서 심는 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지난 4월 발표했다.


당장 올해부터 은행열매로 인한 악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울 시민들은 올해까지 별수 없이 악취를 견뎌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은행이 열리는 암나무가 심어져 있는 위치를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있다. 외관상 쉽게 암·수를 구별하기 어려워 실제 열매가 열리는 여름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러면서 은행은 올해도 고스란히 열렸다.


현재 종로구와 영등포구 등을 제외하고는 암나무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서울시는 이달 중으로 은행이 열리는 암나무에 표시작업을 시작해, 10월 중순까지는 표시작업을 다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계획대로라면 나무교체는 악취가 다 사라진 이후인 11월이 돼서야 시행된다.


대신 시는 은행열매 채취가동반을 활용해, 민원이 들어오는 지역을 중심으로 열매가 떨어지기 전 조기 채취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도 크레인 차량을 빌려야 하는 문제여서 매일 이뤄지지는 않고 하루 종일 작업이 가능한 양이 찼을 경우에만 진행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또 있다. 어느 지역의 암나무를 먼저 교체하느냐다. 땅에 떨어져 터져버린 은행으로 인한 악취를 참지 못하고 은행나무를 치워달라고 요구하는 주민들의 민원은 구청별로 엇비슷한 상황이다.


서울시는 4대문 안 도심지역과 민원다발지역의 가로수를 대상으로 암수나무 비율을 고려해 순서를 정해 교체해 나간다는 원칙을 세웠다.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 출입구, 횡단보도 주변처럼 나무 교체 사업 효과가 크게 느껴지는 곳 등을 우선순위에 올리겠다는 것이다.


시 관계자는 "4대문 안이 우선일지, 민원이 집중되는 곳이 우선일지는 조사를 시켜본 후 결정될 것"이라며 "이에 따른 나무 교체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로수의 관리주체는 각 구청이지만 결국 서울시의 가로수 조례를 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나무 교체비용을 두고 시와 각 구청 간 갈등이 생길 소지도 있다. 구청들은 현재 구 예산으로만 은행나무를 교체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교체된 암나무는 어떻게 될까. 서울시는 크기가 작은 은행나무는 민원이 적은 지역에 옮겨 심는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암나무를 이전시킬 터를 마련하는 것도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반발한다면 쉽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나무가 크다면 옮겨 심는 것도 어려워 활용방안은 애매하다.


이에 따라 교체된 암나무의 구체적인 사후 처리 방안 마련도 시급하다.


김은식 국민대 산림환경시스템학과 교수는 "냄새로 인한 민원이 들어오지 않을 만한 부지에 교체된 암나무를 활용, 가로수길을 조성하는 등 또 다른 명소로 만들어내는 방식이 있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나무의 열매는 자라나는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기에 도심을 벗어난다면 중금속 노출의 위험도 줄어들어 식용으로 공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 교수는 "현재 식재된 암나무를 교체할만한 크기의 수나무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지도 잘 따져 도시 미관을 해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옮겨심는 것이 불가능한 나무의 경우, 가구 등으로 제작할 수 있는 방안 등도 고려해봐야 한다" 덧붙였다.


한편, 서울시는 해마다 사전 채취된 은행 약 4000㎏ 분량을 구청별 복지관, 노인정 또는 푸드마켓 등에 무상 공급하고 있다.


'두 얼굴'을 가진 은행이 도심과 아름답게 공존하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 




cho84@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