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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병칼럼]'어른'이 필요하다..KB금융 수장의 조건

(서울=뉴스1) 강호병 경제부장 | 2014-09-18 14:43 송고 | 2014-09-18 19:24 최종수정
© News1
우리사회에서 갈등조정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은 '어른'이었다. 형제·자식·친척들간에 크고 작은 싸움이 생겨 씨끄러울때 '어른'이 불러 호통도 치고 타이르기도 해서 수습해왔다.  여기서 당사자는 어른이 한마디 하면 웬만하면 수그리는 자세를 가졌던 게 사실이다.  아마 농경시절 대가족 살림에 유교적 장유유서가 더해져 생긴 전통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사회에서 '어른'이 사라졌다. 가정사이든 국가대사이든 뭐든 사회 곳곳에서 분란이 생겨도 '양보해라. 뭘 그리 싸우느냐..'라고 말발이 설 어른은 찾기 힘들다. 또 있다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갈등이 조정되지 않은채 끝까지 간다. 우리사회의 현재 비극이 여기에 있다. 
금융으로 눈을 돌려보면 KB금융의 비극이 딱 이거라는 생각이다. 등단하는 최고리더가 계속 감독당국에 찍혀나가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어른이 생길 여지가 없었다. 

주전산기 교체 문제를 둘러싼 회장·행장·이사회·감사의 집안싸움은 내부승계가 전통이 돼 온 신한금융이나 하나금융 등 다른 그룹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한솥밥 먹으면서 산전수전 겪으며 실적과 리더십면에서 인정을 받고 직원들의 귀감이 된 사람이 수장에 앉으니 자연히 그 앞에 조심하게 되는 것이다. 평소 모셔온 분이 최고리더에 올랐는데 어느 누가 분란을 쉽게 일으킬 수 있겠는가. 신한금융도 큰 분란이 있었으나 곧 바로섰다.

정치바람타기는 우리금융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요즘 분위기는 다르다. 그러나 내부출신의 정통 뱅커로서 직원과 고락을 함께한 이순우 우리금융회장이 행장을 겸임하며 잡음없이 회사를 잘 꾸려가고 있다. 남다른 친화력을 고려하면 그를 '큰 형님'같다고 느끼지 않는게 이상하다.
특히 금융지주사 '회장'은 '어른' 역할이 중요하다. 그것이 금융지주사의 '맛'이고 가치다. 이들 그룹의 전현직 회장은 그 역할을 해왔다.  일부에서 이참에 금융지주사를 없애자는 얘기도 나오지만 그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금융그룹에서 생긴 일은 운영의 문제였지 제도의 문제는 아니었다. 차가 문제가 아니라 운전을 잘못했다는 것이다.

억세게 운이 없게도 KB금융은 다른 그룹처럼 내부승계와 어른 전통을 세우지 못했다. 한마디로 정치권과 모피아의 밥이었다. 명망가가 오면 전문성이 없었고 전문가가 등단하면 무게감있는 리더십을 펼치지 못했다. 

매번 최고리더가 잡음속에 바뀌니 밑에 사람까지 성할 리 없었다. 괜찮은 인물이 실력을 인정받아 올라가도 수장 교체바람에 같이 날라가기 일쑤였다. 바람잘 날 없다보니 인물이 있어도 언론의 주목을 못받았다. 솔직히 전현직 내부인사 중 행장은 몰라도 회장감으로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다. 이는 후임 수장을 뽑아야할 KB금융의 딜레마다. 

KB금융사태가 회장을 당국과 이사회가 나서 억지로 떼어내는 모양새로 일단락된 것이 정말 안타깝다. 임영록 전 회장은 관료출신이나 나름 뜻을 가지고 잘 해보려했다. 그러나 불운인지 부덕의 소치인지는 모르나 일이 꼬일대로 꼬인채 극단적 선택으로 갔다.

이제 KB는 새판을 짜야한다. 이런 비극을 없애기 위해 후임 회장은 정말 잘 뽑아야한다. 성품이나 경륜, 능력 어느면으로 보나 어른급 인물로 직원들에게 통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무게있는 정통 뱅커를 뽑아야한다는 생각이다.  포트폴리오면에서 국민은행 비중이 KB금융의 80~90%라서다. 은행일이 단순한 것 같지만 속은 복잡하다. 섬세한 전문성과 함께 고객과 직원에 대한 투철한 관계관리가 필요한 분야다. 내부인은 아닐 지라도 은행일을 깊이 해본 사람이라야 한껏 상처입은 국민은행 직원들에 위로가 되고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비은행쪽으로 경험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KB금융이 금융그룹 답기 위해 보험과 증권 등 비은행쪽으로 치고 나가는게 숙제여서다. 증권이 분명 금융의 캐시카우지만 은행과 달라 잘못하면 삐걱대기 일쑤다. 당장 LIG손해보험 인수건도 마무리해야하고 또 현대증권이 됐건 대우증권이 됐건 무조건 증권사를 사야한다.

같은 값이면 내부 어른이면 좋겠지만 여의치 않으니 그룹밖에서도 회장감을 모셔올 수 있어야한다는 생각이다.  관피아는 무조건 배제돼야하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내부인선을 무리하게 고집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번 인선은 KB금융에서 내부승계로 가는 과도기로 보는게 옳다.  KB금융 처지가 지금 그렇다.

회장이 행장을 겸임하느냐 아니냐도 너무 집착할 사안이 아니다. 행장을 따로 두더라도 회장이 자신과 가장 잘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을 고르도록 하면된다. 역시 운영의 문제로 어느 한쪽이 좋다 나쁘다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사실 행장은 그룹 최고리더가 아닌 운영자다. 외부의 신망있는 뱅커출신 회장과 내부 출신 행장 구도도 생각해볼 만 하다. 비은행쪽으로 외형을 키워야 하는 KB금융입장에서 회장·행장 겸임구도가 맞지 않다는 지적도 설득력이 있다. 어쨌든 여러 상황을 고려해 선택하면 된다.

지금 국민은행은 노동조합이 3개나 된다. 참으로 기묘하다. 그만큼 조직통합이 느슨했다는 얘기다. 이는 회장이나 행장이나 전문성 못지않게 합리적 성품을 바탕으로 갈등조정력과 소통능력이 뛰어나야 함을 의미한다. 최근 사건으로 난파선이 된 KB금융을 수습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노동조합과 머리를 맛대고 조정해본 경험이 있으면 더욱 좋다. 

끝으로 아름다운 인선을 위해 정치권과 정부, KB금융 직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정치권이나 정부의 경우 이번에는 누굴 뽑든지 필요한 인물기준에 따라 이사회가 냉정하게 뽑도록 놔두라는 것이다. 아마 원하는 사람 밀어넣고 싶어 근질거릴 것이다. 눈 질끈 감고 이사회가 선의의 심사를 거쳐 최고 적임자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뽑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한다. 이는 뽑았던 회장을 당국의 고강도 압박속에 다시 잘라내는 비극을 피할 수 없었던 KB금융 이사회가 마음의 부담을 더는 일이기도 하다.

노동조합을 포함, KB금융 직원에게는 정치권·정부 입김 배제를 전제로 이사회가 뽑은 사람을 수용해달라고 제안해본다. 이사회가 뽑은 사람이 뱅커출신 외부인사라도 낙하산으로 보지 말고 밀어주는게 어떠냐는 것이다. 정말이지 또 인선된 사람출근을 노동조합이 저지하는 일은 이번엔 안봤으면 하는 바램이다. 어차피 이 사람은 다음 승계를 내부로 가도록 사다리를 만들어야하는 원천적 임무가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KB금융이 바로서는 일이다. 그게 모두의 손에 달렸다.


tiger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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