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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박지성과는 또 다른 형태의 '돌연변이'

실패보다 성공을 먼저 생각하는 ‘건강한 욕심’

(서울=뉴스1스포츠) 임성일 기자 | 2014-08-20 15:44 송고 | 2014-08-20 19:06 최종수정

많은 축구인들은 “대한민국 축구 선수들의 큰 단점은 적극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공격수라면 어느 정도 욕심도 있어야하는데 우리 선수들은 너무 소극적이다”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면서 “성공했을 때보다 실패나 실수를 먼저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어려서부터 ‘강박관념’ 속에서 축구를 배웠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축구를 즐기지 못하고, 실수 이후 감독이나 동료들의 타박에 대한 부담 속에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소극적인 플레이가 몸에 배었다는 뜻인데, 많은 축구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과감한 패스를 지양하게 되고, 개인기를 앞세운 드리블 돌파를 꺼리며, 자신이 해결해야할 찬스 시에도 동료를 찾는 불필요한 행동들이 나오는 배경이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으나 아직까지도 ‘건강한 욕심’은 한국 선수들에게 부족한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레버쿠젠의 22살 에이스로 거듭나고 있는 손흥민은 ‘돌연변이’에 가깝다.

레버쿠젠의 손흥민은 대한민국 축구 풍토에서 나오기 힘든 '돌연변이'에 가깝다. '건강한 욕심'을 가진 공격수다. 박지성이 떠난 이후 새로운 '돌연변이'가 한국 축구를 기쁘게 하고 있다. © News1 DB
레버쿠젠의 손흥민은 대한민국 축구 풍토에서 나오기 힘든 '돌연변이'에 가깝다. '건강한 욕심'을 가진 공격수다. 박지성이 떠난 이후 새로운 '돌연변이'가 한국 축구를 기쁘게 하고 있다. © News1 DB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이 20일 오전(한국시간) 덴마크 코펜하겐의 파르켄 경기장에서 열린 코펜하겐과의 2014-15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면서 3-2 승리의 주역이 됐다. 손흥민의 커리어 첫 챔피언스리그 득점이 팀을 ‘꿈의 무대’에 한발 더 다가가게 하는 중요한 골이 됐다.

원체 주눅이라는 것은 모르는 손흥민이지만,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를 경험하며 확실히 자신감이 배가된 모습이었다. 도통 긴장을 모르는 두둑한 배짱으로 팀 공격을 이끌었다. 레버쿠젠의 공격은 손흥민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평가는 결코 팔이 안으로 굽은 분석이 아니다.

플레이에 건강한 욕심이 가득했다. 기회가 주어지면 지체 없이 슈팅으로 연결하려 노력했다. 전반 31분 벨라라미가 두 번째 득점을 성공시켰을 때 그리 기뻐하지 않던 손흥민의 모습은 웃음을 짓게 할 정도로 ‘욕심’이 보였다. 손흥민을 마크하던 수비수의 등을 맞고 떨어진 것을 벨라라미가 슈팅으로 연결한 장면이었는데, 자신이 넣을 수도 있었다는 것에 대한 씁쓸함이 뒷모습에서 느껴졌다. 과한 해석은 아니다.

간접(?) 도움의 아쉬움을 가슴에 담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손흥민은 기어이 이날 최고의 골을 직접 터뜨렸다. 전반 42분, 수비수 2명 사이를 절묘한 타이밍에 빠져나가면서 칼하노글루의 패스를 받은 손흥민은 과감하고도 침착한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했다. 공의 진행방향을 그대로 살리던 슈팅은, 대범하고도 정교했다. 손흥민의 수준은 확실히 업그레이드됐다.

월드컵을 통해서도 손흥민의 배짱은 확인을 했다. 지난 6월23일 알제리와의 브라질 월드컵 조별예선 2차전에서 전반에만 3골을 내줬을 때 홍명보 감독을 비롯한 선수들의 표정은 '망연자실'이었다. 하지만 손흥민만은 오기가 가득한 울상이었다.

그 울분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표출한 것은 손흥민이 유일했다. 후반 5분 만에 만회골을 터뜨린 손흥민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발이 얼어붙은 형님들을 깨우면서 고군분투했다. 최악의 경기에서 축구 팬들을 위로해준 유일한 희망이었다.

대한민국 풍토에서 이런 유형의 공격수가 나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지난달 30일 레버쿠젠과 평가전을 치른 FC서울의 최용수 감독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며 손흥민을 극찬했다. 긍정적인 뜻에서, 이쯤이면 돌연변이다.

한국 축구는 최근 귀한 ‘돌연변이’ 한 명을 잃었다. 은퇴한 박지성에 대한 이야기다. 한 축구인은 “축구를 했던 사람이면 확실히 느낄 것이다. 지성이처럼 뛰는 것은 너무 힘들다. 정말 심장이 사람의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혀를 내둘렀다. ‘두 개의 심장’이라는 찬사와 같은 맥락인데, 박지성 역시 ‘돌연변이’에 가까웠다.

하지만 유형이 다르다. 박지성은 성실과 헌신으로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돌연변이라면 손흥민은 한국 축구의 토양에서 나오기 힘든 ‘욕심 DNA’를 가지고 태어난 돌연변이 쯤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확실한 것은, 유럽의 중심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플레이어를 또 만나고 있다는 믿기 힘든 반가움이다.




lastun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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